로이앤틱 신영문 대표
생활 취미로 시작한 앤티크(antique) 수집이 유수한 전문가의 길 걷게 해
어릴 적 시골의 들꽃들 꺾어다 온 집안 장식하던 소녀의 아름다운 진화
성남 부근 청계산 아래 조용한 마을, 금토동에 한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단순한 철제 당초문양이 유리와 함께 장식된 묵직한 갈색의 나무문을 열면, 순간 18세기 영국 한 저택의 아늑하고 고풍스런 공간으로 타임슬립(Time-slip)한 느낌을 받게 된다. 주로 유럽에서 공수해 온 앤티크 가구들이 커다란 창으로 함빡 들어온 늦봄의 투명하고 화사한 햇살을 받아 고가구 특유의 윤택함으로 한층 빛난다. 로열 풍의 찻잔에 홍차라도 마시게 되면 그야말로 한가하고 교양 있는 귀족이 된 듯한 분위기에 푹 빠진다. 이 공간을 우아한 안주인의 품위로 지키고 있는 사람, 30년 가까이에 이르는 감식가의 눈을 가진 ‘로이앤틱’의 신영문 대표다.
시간의 조용한 응시가 깃들인 앤티크의 일대 향연
‘로이앤틱’가게 안에는 누구라도 탐낼만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오크나무로 만든 옷장과 찻잔 장식장, 무쇠 난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연인들의 소풍 풍경이 그려진 빅토리아풍 장의자,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넓은 정찬용 탁자, 산딸기 나뭇잎이 그려진 버건디(Burgundy)색상의 접시와 찻잔들, 청동 장식품, 유명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그림이 그려진 장식 접시들, 크리스털 샹들리에... 각자 놓인 위치에서 조용하게 동시에 알맞은 존재감을 품으며 응대한다.
짧은 순간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영국의 18세기 솦오페라(Soap-opera) 풍의 소설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여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살고 있는 소박한 오두막(cottage)의 방이나 고압적인 미스터 다아시의 고모인 캐서린 부인의 대저택 응접실에 와 있는 기분 좋은 착각을 느낀다.
이 많은 앤티크 속에서 신영문 대표가 그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웃고 있다. 온화한 표정과 소녀풍의 깔끔한 옷을 차려입은 그녀는 배경 속으로 들어가 앉아 있는 듯하다. 방문객을 맞는 목소리는 더 없이 상냥하고 웃음소리 또한 낭랑하다.
“결혼을 하고 제가 사는 집을 꾸미려고 조금씩 쇼핑을 하던 안목이 쌓이다보니 결국 전문 앤티크 상점을 열었네요. 그런데 제 앤티크 취미의 연원을 찾다보면 그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요. 시골의 들과 산을 보며 자란 저의 정서와 일상에 조금이라도 더 풍부한 감성으로 살기를 바라셨던 저의 아버지 덕택이 아니었던가 싶어요.”
집안을 온통 꽃으로 장식하던 밀양 소녀
경남 밀양에서 양조장집과 과수원집 딸로 자란 신영문 대표의 소녀시절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전원풍의 삶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정말 착하기만 한 소녀로 자랐어요. 중학교 수학여행 때 처음으로 서울에 왔는데 그때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구나.....’ 하고 느낄 정도로 정말 아무 걱정 없이 들로 산으로 다닌 시절이었어요. 제가 혜택 받은 것 중 가장 고마운 점은 어릴 적 시골에서 마음과 물질 모두 풍요롭게 자랐다는 거예요. 밀양에 중산이라고 있는데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그 산으로 꽃을 따려 다녔어요.”
그렇단다. 그녀는 산에 핀 들꽃과 산꽃들을 보는 족족 꺾거나 따가져 와 집안을 온통 꽃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냥 화병에 얌전히 꽂는 것이 아니라 마당의 절구에도 한 다발, 고무신에도 몇 송이, 심지어 옷깃에도 꼽고 다녔다고 한다.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그렇게 꽃을 좋아했다. 작은 들꽃은 줄기에 힘이 없어 밤송이에 일일이 꼽아 놓기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신영문 대표가 이러한 취미를 갖게 된 연유에는 역시 생활의 아취를 즐길 줄 아는 그녀의 부친 덕이었다.
“정작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읍내에 나가 예쁜 그릇을 사오셨어요. 달리아나 장미 같은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조화들을 사 오셔서 식탁을 장식하기도 하시고, 밥상을 차려도 색상을 중요시하셨어요. 겨울에는 색을 낼 수 없으니 계란이나 감물로 색을 내시기도 했어요.”
딸부자인 그녀의 부친은 여자는 꽃을 보고 자라야 한다며 농가 마당에 농작물 대신 꽃을 심었다. 한 여름 외출 할 때에는 반드시 우산을 드는 멋쟁이이기도 하셨다. 기억에 선명한 또 한 장면은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집에만 기거하시던 부친이 사랑채에 흔들의자를 사다놓고는 거기에 앉아 깔끔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시간을 견디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흔들의자가 ‘지금으로 치면 앤티크가 아니었나‘ 하고 신영문 대표는 추억한다.
신영문 대표의 정서를 형성한 어릴 적의 기억은 담담한 수채와나 수필 풍으로 표현해도 좋을 만큼 부럽기까지 하다. 그녀는 할아버지를 따라가 맑은 도랑에서 물고기를 잡고 길가에 핀 들꽃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녀는 할아버지를 ‘사람을 극진하게 대하는 분’으로 기억한다. 항상 미소를 짓는 얼굴, 상냥한 태도는 조부에게 물려받은 듯하다.
6,70년대 시골에서 흔치 않았던 우유대신 양유를 키우는‘아재’집에서 아침마다 젖을 짜 마시던 일, 가을이면 뒷산에서 밤을 한 아름 따와 집안일을 거들던 사람들과 드럼통에 구멍을 내서 불을 피우고 밤을 구워서 한바탕 축제처럼 애·어른 할 것 없이 떠들썩 즐기던 일...을 추억하는 신영문 대표의 어린 시절이 진정한 앤티크의 정감을 느끼게 한다.
앤티크에 본격적인 취미를 들이던 신혼시절
당시 양가의 규수가 그러하듯 신영문 대표는 20대 중반을 넘어 금융권에서 일하는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때 시어머니는 중병을 앓고 계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아들이 결혼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집안 어른들의 충고에 따라 서두르게 되었다고 한다.
“비교적 인기가 있어서 학교 앞으로 찾아오던 남학생들도 많았는데... 남편이 청혼을 하면서 자기 어머니 대신 살림을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집안 사정을 알고도 거절하면 제가 마치 벌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승낙했어요. 제가 너무 순진했던 거죠. 하하”
결국 결혼 당일 밤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는 집안을 떠맡게 되었다. 신혼 초에 시아버지는 살림에 보태라며 당시로서는 거금인 600여만 원이 든 통장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까지 물정 모르는 무구한 처녀로 살아온 신영문 대표는 그 돈을 가지고 집안 꾸미기에 돌입했다.
“통장을 헐어서 이불이나 테이블보니 예쁜 것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사다가 집안을 장식했어요. 좋은 찻잔이 있으니 우리 집으로 차를 마시러 오는 동네 여인들도 있었어요. 몇 십년 전엔 그렇게 할 수 있는 주부가 많지 않았지요. 그런데 하루는 시아버님 방에 꽃병과 꽃을 사다가 꼽는데, ‘꽃 꽂는다고 밥이 나오는 거 아니다‘ 한마디만 하시더 라구요. 나중에 들으니 주변에서 젊은 며느리한테 너무 잔소리 하지 말라고 단속을 했다네요. 제가 정말 뭘 몰랐던 거죠.”
하지만 순전히 집안 꾸미는 취미로 시작한 가구와 생활용품 수집이 경제적 필요에 의해 진정한 프로의 세계로 접어드는 계기가 찾아왔다.
신영문 대표의 두 남매가 음악에 재능을 보였는데 금융 샐러리맨인 남편이 자녀 한명은 몰라도 두 명을 뒷바라지 할 여력이 없으니 방향을 바꾸자고 제안한 것이다.
“앤티크를 보러 다니던 단골 가게 주인 분에게 푸념처럼 넋두리를 했더니 그럼 앤티크 가게를 차려보라는 겁니다. 그때까지 저는 그냥 작은 취미로만 수집을 했지 그럴만한 능력을 가졌다고는 생각 안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당신 같은 안목이면 충분하다고 용기를 주는 겁니다.”
6개월 만에 자신의 개성 드러낸 물건들 전시
가게를 낸 초기에는 공급해 주는 물건들만 진열해서 판매했다. 그런데 6개월쯤 되자 수동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영문 대표는 본격적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해외 컬렉션을 돌아보고 직접 구입하기 시작했다.
“제가 영어를 못하니 조카를 데리고 영국에 갔는데, 민박을 한 집에서 좀 더 확실한 영감을 받았어요. 집이 온통 앤티크로 장식돼 있었는데 정말 황홀했지요. 주인 여자 분과 지금은 돈독한 사이가 됐는데 우리는 밤새도록 로얄밀크티를 마시면서 앤티크에 대한 얘기로 꽃을 피웠어요.”
신영문 대표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그녀는 세상 풍파를 그다지 많이 겪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가 보여주는 사뿐한 태도와 친절이 그것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정 모르게 자신의 안위만 지키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앤티크 가구점을 취미정도로 아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헝그리 정신이 아니면 안된다’ 고 조언하는 대목에서다.
신영문 대표의 로이앤틱에는 가구들 외에 프랑스와 영국 풍의 정원 장식품들이 꽤 많다. 고객은 굵직하다. 고 앙드레 김이 큰 행사가 있을 때는 꼭 그녀의 앤티크에 의지했고, 외도에 있는 ‘쁘디 프랑스’, 제주도의 ‘허브나라’, ‘에코랜드’의 화분과 조각들, 악기박물관의 조각 제품들 모두가 로이앤틱에서 코디네이션을 해 준 것들이다.
한가로이 노는 것보다 앤티크를 바라보는 시간이 훨씬 즐겁다는 신영문 대표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다.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계속 공부했으면 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60살까지만 로이앤틱을 운영하고 이후에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녀가 글을 쓰기 위해 그리는 환경은 이렇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이 있는 집에 넓은 앤티크 탁자를 놓고 원고지를 대하는 것이다. ‘글로 영화를 보라’는 의미로 ‘영문’이란 이름을 지어주신 부친의 뜻을 인생후반기에 펼쳐나갈 그녀의 모습을 그리며, 영화와 연속극의 감정 몰입도가 엄청날 정도로 지금도 소녀적 순수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신영문 대표의 이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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