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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되풀이한 해군 ‘로봇 조타수’…거친 파도 속에서도 항로 유지

해군·KAIST, 조함 시뮬레이터에서 휴머노이드 ‘파이봇’ 첫 전투실험 진행

명령 되풀이한 해군 ‘로봇 조타수’…거친 파도 속에서도 항로 유지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해군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과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을 함정 조타수 역할에 투입하는 전투실험을 처음으로 진행했다. 당직사관의 음성 지시를 알아듣고 이를 다시 확인한 뒤 로봇팔로 조종장치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다만 초기 단계 모델인 만큼 명령을 인식하고 반응하기까지는 약 5~10초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23일 진해 해군교육사령부 조함 시뮬레이터에서는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급 함교 상황을 가정한 실험이 이뤄졌다. 당직사관이 “키 왼편 10도, 110도 잡아”라고 항로 변경을 지시하자, 잠시 뒤 조타석에 앉은 로봇이 기계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같은 명령을 복창했다.

조타수 자리에 배치된 것은 사람 승조원이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 ‘파이봇’이었다. 파이봇은 몸체 중앙에 장착된 별도 팔을 이용해 자동차 핸들과 비슷한 형태의 타기를 천천히 왼쪽으로 돌렸고, 시뮬레이터 속 함정도 이에 맞춰 함수 방향을 바꾸며 진해 협수로를 빠져나가는 상황을 구현했다.

이번 실험은 해군이 로봇 승조원을 함정 운용 임무에 적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련한 첫 전투실험이다. 안전 문제를 고려해 실제 해상이 아닌 함정 운항 환경을 재현한 시뮬레이터 안에서 진행됐다.

조타수는 함장이나 당직사관의 지시에 따라 타기를 조작해 함정의 침로를 유지하거나 변경하는 역할을 맡는다. 일반적으로는 수병이 수행하는 임무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파이봇이 해당 역할을 대신했다.

파이봇은 KAIST 심현철 교수 연구팀이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본래 항공기를 조종하는 ‘파일럿 로봇’을 목표로 제작됐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함정의 조타수 임무를 수행하도록 적용됐다. 신장은 165㎝, 무게는 65㎏ 수준이다.

전투실험에 앞서 파이봇은 함정 운용에 쓰이는 조함 용어와 절차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학습 과정을 거쳤다. 연구진은 문장 의미를 해석하고 적절한 응답을 생성하는 대규모 언어모델 기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파이봇이 해군의 명령 체계와 조작 절차를 인식하도록 했다.

이날 실험에는 실제 서애류성룡함에서 근무하는 승조원들도 참여했다. 당직사관이 무전기 형태의 마이크를 통해 침로 변경 명령을 내리면, 로봇 조타수가 이를 음성으로 확인한 뒤 타기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실험이 이어졌다.

해군과 연구진은 함정 내부의 소음이 큰 환경뿐 아니라 사투리 억양이 섞인 지시도 인식할 수 있도록 음성인식 체계를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초기 실험 모델인 만큼 처리 속도에는 한계가 있어, 명령이 내려진 뒤 복명복창이 나오기까지 몇 초간의 지연이 발생했다.

실험은 평상시 운항뿐 아니라 악천후와 야간 항해 등 여러 조건을 가정해 진행됐다. 시뮬레이터에 높이 6m의 파도가 이는 상황이 주어지자, 함정은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파이봇은 항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평온한 조건일 때보다 더 자주 타기를 움직이며 방향을 조정했다.

해군 관계자는 사람이 조타 임무를 수행할 경우 교대 인원마다 조작 습관이나 반응 속도가 다르고, 장시간 근무에 따른 피로 누적으로 실수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로봇 조타수는 동일한 방식으로 안정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됐다.

또 기존 유인 장비를 크게 개조하지 않고도 로봇을 연결해 무인 운용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추가 학습을 거치면 조타수 업무뿐 아니라 함정 내 다른 임무로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해군과 KAIST 연구팀은 이번 1단계 시뮬레이터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을 정리할 계획이다. 이후 정박 중인 실제 함정에서 진행하는 2단계 실험, 해상에서 주간 항해를 수행하는 3단계 실험, 주야간 장기 항해를 포함한 4단계 실험으로 범위를 넓혀갈 예정이다.

로봇 조타수가 실제 바다에서 함정 운항에 참여하는 3단계 해상 항해 실험은 올해 안에 추진될 예정이다.

 

해군은 이번 결과를 토대로 함정 내 로봇 운용 방안을 구체화하고, 승조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변화하는 국방 환경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로봇 조타수 실험은 인구 감소와 병역자원 축소로 예상되는 미래 안보 환경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해군은 앞으로 승조원이 수행하는 다양한 업무 가운데 로봇이 대신할 수 있는 분야를 지속적으로 찾을 계획이다.

아울러 해군은 로봇 조타수 외에도 상용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한 육상 당직 지원, 탄약 등 위험물과 중량물을 옮기는 운송 로봇 등 여러 형태의 로봇 전투실험을 추가로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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