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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4:5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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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명원 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

우리의 전통차 문화 보급, 훌륭한 문화 민족으로의 자긍심 일깨워야 할 것

명원 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7호 궁중다례의식 보유자 김의정 이사장님을 대표로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교육기관인 명원문화재단이 ‘제18회 국제명원차문화대상 시상식 및 차 문화제’를 통해 공로상, 학술상 수상 및 전통차 문화와 다례에 대한 차 문화제를 가졌다.

차(茶)는 중요한 전통문화, 우리의 자랑이며 자부심

명원 문화재단(이사장 김의정)은 11월 1일 하얏트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제18회 국제명원 차문화대상 시상식 그리고 차 문화제’를 주최했다.

올해 18회째를 맞는 국제명원차문화대상은 한국 차의 선구자인 명원 김미희 선생이 세운 차 문화 복원과 발전의 의지를 이어가며 위업을 기리기 위한 상으로, 국내외 차인들 중 차 문화·차 산업·차 교육 발전과 명원 다인정신을 이어, 바른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를 선정하여 상장, 상금과 상패를 수여했다.

1996년부터 2012년까지 17년간에 걸쳐서 공로분야 18명, 학술분야 14명, 교육분야 12명 등 누계 44명에게 명원차 문화상을 수여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자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유진룡 장관, 민주통합당 정세균 국회의원, 새누리당 정병국 국회의원, 새누리당 주호성 국회의원, 새누리당 김장실 국회의원, 정종해 보성군수 등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시상식에서 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은 “우리 차 문화는 2,000여 년의 역사 깊은 전통문화이며 예절, 우리 마음가짐을 담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 차와 차 문화는 세계화와 커피소비의 급증으로 현재 우리사회에서 많이 멀어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차 문화는 우리의 자랑이며 자부심”이라는 김 이사장은 “우리 차 문화를 바로 이해하고, 우리 차와 다례가 더 많이 대중화되고 생활화되어야 하며, 우리 차와 차 문화의 중요성을 전 국민 모두가 인식하고 힘을 합하여 명원 선생께서 이루어 놓은 기반을 주축으로 더 많은 발전을 함께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대인들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기본 정신을 바탕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의 격려사에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빠름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느림의 미학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승 총무원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차로 일상화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더 좋은 생활과 나아가 좋은 사회를 이루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유진룡 장관은 “우리 조상들의 소중한 유산인 전통 차 문화를 계승·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사명”이라고 했으며, “차를 사랑하는 전국의 차인(茶人) 모두의 지혜를 모아 우리 전통 차의 대중화, 세계화에 나서야 될 때”라고 축사를 전했다. 김 이사장은 “일반인들에도 올바른 우리의 전통차 문화를 보급해 훌륭한 문화 민족으로의 자긍심을 일깨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직장과 사회를 이끌어 가기에, 가까운 사람끼리 다향을 즐기며 내면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했다. 또한 “차는 세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원소의 미려한 결정체”라고 전하며, “그 정겹고 화려한 이면 속에는 정겹지 못한 것을 정화해내고, 화려한 것을 소박하게 만드는 자정의 깊이와 의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전통 차의 갱생, 명원 김미희 선생의 선구적 역할

지난 7월 100만인 서명 범국민결의 추진위원회장으로 추대된 명원문화재단 김 의정 이사장의 어머니 명원(茗園) 김미희 선생은, 일제침탈과 한국전쟁이 남긴 혼란 속에서도 한국 전통 차의 맥이 단절됨을 우려해 이의 발굴과 정립에 혼신을 다했던 인물이다. 2000여 년의 역사를 품은 한국 전통 다례법을 집대성해서 정리하고, 1980년에는 한국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차 문화 학술대회를 개최해 차 문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차(茶)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초의 선사가 다도를 행하던 전남 대흥사의 소실됐던 ‘일지암’을 복원하는데 주도적 역할도 했다. 김의정 이사장은 그런 모친을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차(茶)와 혼연일체가 된 삶을 살아왔다. “차는 한국의 전통 문화입니다. 하지만 근․현대를 지나면서 우리 차 문화는 국민에게 소외돼 왔습니다. 이번 운동을 통해 국민들이 우리 차 문화의 우수성을 깨닫고 한국차문화진흥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바랍니다.”

김의정 이사장은 ‘동적인 문화가 너무 범람해 정신적인 것이 필요하다. 공손과 존중과 배려의 마음...차를 마시기 위한 모든 준비과정에는 인간 삶이 녹아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자. 우리 중 누구도 차(茶)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릴지언정 흥분하지는 않는다. 혹자는 남도에 파란 물결을 일으키는 차밭을 보러 일부러 달려간다. 전통차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거기에 있다.

명원문화재단에서 자리매김한 한국 다례

김 의정 이사장이 명원문화재단을 세운 건 어머니의 유훈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분의 업적을 마치 자신의 것 인양 오도하고 내세운 이들에 대한 속상함도 있었다. 주변인들의 평에 의하면 김 이사장은 다른 큰일을 도모해도 능히 해낼 도량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딴 것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다도를 자연스럽게 이을 사람 나밖에 없다. 물려받은 재산 다 넣으면서...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물론 재단을 세울 때 어머니가 당한 것처럼 주위에서 ‘돈만 있지 아무것도 모른다, 며칠 하다 그만두겠지’하는 투로 시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일부는 그들이 가로 챈 어머니의 업적을 김 이사장이 나타나 밝히자, 그 불편함을 공격으로 나타낸 경우도 있었다. 김 이사장은 자신이 명원문화재단의 설립을 통해 어머니의 선구자적인 행보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바로 명원 김 미희의 것이라는 것이 밝혀져 정말 다행이라고 말한다.

김 이사장이 물려받은 문화적 정신은 국가적 염원이었던, 일본에 침탈당한 ‘조선왕조의궤’와 더불어 조선왕조발간도서 1000여권을 회수해 오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문화재환수위원이었던 그녀는 한국 다도(茶道)의 예법과 정신으로 환수활동에서 만나는 일본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일본도 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여서 다인(茶人)을 예우해 주는 풍조가 있기 때문에 자신을 ‘차(茶)선생’이라고 소개했더니 ‘대우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한다.

어머니가 좋은 강사를 붙여서 배우게 했던 일본어도 소통에 절대적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결국 김 이사장의 공적은 어머니의 공적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독실한 불교도인 김 의정 이사장은 불교신도회 50년 사상 첫 여성 중앙신도회장으로 추대돼 연임을 했다. 어느 분야에서든 아직까지 남성의 영역에 여성이 첫 진출을 하면 곱지 않은 시선이 있기 마련인 것을 곧잘 확인한다. 김 이사장의 회장 취임도 그랬다.

김 이사장을 잘 이해하는 큰 스님들은 여자가 신도회장이 되어 잘 해낼 수 있을까 염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명원문화재단을 설립해서 이끌어 올 때 보였던 묵묵하고 신실한 행동의 본보기는 교계에서도 그 성과를 이루었다. 신도 회관이 지어지고 신도들을 위한 여러 복지 문제들이 성사됐다. 명원의 다인정신으로 사심없이 행하니 연령에 상관없이 잘 따라주고 화합하더라고 한다. “차의 정신이 통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평소에 불덕과 불사를 많이 하셨다. 세상엔 절대 공짜가 없다. 어머니가 쌓으신 음덕이 나에게로 보내진 것이다.”라는 것이 김 이장 자신이 별 흠결 없이 신도회장직을 잘 이행하고 물러난 이유라고 말한다. 김 의정 이사장이 최근에 가장 많은 관심과 공력을 들인 대상이 있다. 바로 순천에서 개막한 정원박람회에 ‘일지암’ 차실을 복원해 전시한 것이다. 대흥사, 국민대학교 기증에 이어 세 번째 복원이다. 차 문화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 주냐고 물었다.

“동적인 문화가 너무 범람해 정신적인 것이 필요하다. 공손과 존중과 배려의 마음...차를 마시기 위한 모든 준비과정에는 인간 삶의 종합문화가 모두 녹아있다.” 김 의정 이사장이 다도를 가르친 사람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가끔은 강연을 위해 내려가는 새벽기차에서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명원문화재단을 통해 차의 정신을 도야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뿌듯하고도 다행한 일이다. 어머니의 업적 한 모서리를 겨우 잘 이어받고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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