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생성된 이미지
지난 3월 30일 ‘세계 폐기물 제로의 날’을 계기로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을 향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패션산업은 대표적인 환경 부담 산업으로 꼽힌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10%를 차지하고, 해마다 9,200만 톤에 이르는 섬유 폐기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바다와 생태계의 순환 원리를 경제 활동에 접목하는 청색경제 기반의 지속가능 패션이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늘날 패션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패스트 패션’으로 상징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구조다. 옷 한 벌을 만드는 데 평균 2,700리터가량의 물이 필요하며, 합성섬유 의류를 세탁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미세플라스틱은 바다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유엔환경계획은 매년 생산되는 의류 가운데 85% 이상이 매립되거나 소각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연간 약 1,600만 톤의 직물 폐기물로 이어진다.
현재의 패션 시스템은 자원을 뽑아내고, 제품을 만든 뒤, 사용 후 버리는 선형 경제 방식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커지고 있다. 자원 고갈과 폐기물 증가, 탄소 배출 문제가 동시에 누적되면서 패션산업 역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청색경제는 자연 생태계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경제 모델의 실마리를 찾는다. 벨기에 경제학자 군터 파울리가 제안한 이 개념은 자연에서는 어떤 폐기물도 완전히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의 자원이 된다는 관점에 기반한다. 패션 분야에서는 이 원칙이 해양 폐기물 재활용, 생물 기반 신소재 개발, 순환형 비즈니스 모델 확산이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바다에서 수거한 폐기물을 의류 소재로 바꾸는 흐름이다. 해양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섬유와 신발, 액세서리로 만드는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해양환경단체 팔리와 협력해 바다에서 나온 플라스틱을 활용한 운동화를 선보였고, 해당 제품은 이미 대규모 판매 성과를 거뒀다. 여러 기업들도 해안에서 회수한 폐어망을 고품질 나일론 섬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에 뛰어들고 있다.
폐어망 재활용은 환경 오염을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적 가치를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버려진 어망 1톤은 약 640kg의 온실가스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다시 소재로 활용하면 해양 쓰레기를 줄이고 탄소 배출 부담도 낮추며, 동시에 패션산업의 원료 공급망을 보다 지속가능하게 바꿀 수 있다.
두 번째 축은 해양 생물에서 착안한 친환경 소재 개발이다. 해조류 기반 섬유는 기존 면화보다 물 사용량이 훨씬 적고 생분해성이 뛰어난 소재로 평가된다. 미국의 알지니트는 켈프, 즉 다시마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해 친환경 원사를 개발했으며, 이는 석유 기반 합성섬유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해조류는 성장 속도가 빠르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특성이 있어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서 잠재력이 크다. 연구기관들은 해조류 기반 소재가 기존 섬유보다 탄소발자국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바다에서 자라는 생물이 옷감의 원천이 되는 방식은 청색경제가 패션에 적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세 번째 변화는 의류의 사용 기간을 늘리고 폐기물을 줄이는 순환형 사업 모델이다. 옷을 소유하기보다 빌려 입는 대여 서비스, 중고 의류 거래, 수선과 리폼 서비스는 모두 의류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최근 도시 곳곳에서는 입지 않는 옷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는 업사이클링 워크숍도 늘고 있다.
환경부의 자원순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업사이클링 활동은 연간 약 2,000톤의 섬유 폐기물 감축에 기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와 지역 기반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실천하는 디자이너들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요르단의 디자이너 바툴 알라쉬단은 2015년부터 식물 자원을 활용한 가방과 의류를 제작해 왔다. 그녀는 현지에서 자라는 식물과 나무 자원을 활용해 환경 부담을 낮춘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청색경제가 강조하는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의 활용’이라는 원칙과 맞닿아 있다. 가까운 곳의 자원을 사용하면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고, 동시에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지속가능한 패션이 단순한 친환경 소재 선택을 넘어 생산과 유통 구조 전반의 변화로 이어지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청색경제의 원리를 접목한 패션 브랜드와 시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 원단으로 의류를 제작하는 브랜드, 해양 플라스틱을 활용한 액세서리를 선보이는 기업 등이 등장하며 친환경 패션 시장을 넓히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함께 지속가능한 패션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순환패션 산업 로드맵을 통해 2030년까지 섬유 폐기물의 30%를 재활용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내놓은 지속가능 패션 관련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정보기술과 패션산업을 결합해 새로운 친환경 패션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큰 국가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패션으로의 전환은 기업이나 정부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비자의 선택 역시 중요한 축이다. 옷을 구매하기 전 꼭 필요한 제품인지, 얼마나 오래 입을 수 있는지, 사용 후 어떻게 처리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소비 방식이 달라질 때 생산 방식도 함께 바뀔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청색경제 원칙이 패션산업 전반으로 더 넓게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은 맞춤형 생산과 수요 예측의 정확도를 높여 과잉생산과 재고 폐기 문제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생산 단계에서부터 필요한 만큼만 만들고, 사용 후 다시 자원으로 되돌리는 구조가 패션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색경제가 제시하는 지속가능 패션은 단순히 환경 피해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선다. 자연을 회복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재생적 산업 모델로 나아가자는 제안에 가깝다. 패션산업이 바다와 생태계의 순환 원리를 받아들일 때, 옷장은 더 이상 낭비의 공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미래를 실천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