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성
(주)신시컴퍼니대표 예술감독·뮤지컬협회 이사장
세계 감동시키는 창작뮤지컬 만들어 국가브랜드로 정착 시킬 단계
현재 한국 뮤지컬계는 편차 커, 수준 높아진 관객들 위해 수평적으로 수준 향상해야 할 시점
고대로부터 당연히 있어온 것이 아닌 이상, 현 시점에서 발전하고 성숙해 있는 우리 사회의 어떤 분야라도 처음은 개척되지 않았거나 미성숙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척박한 불모의 환경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앞선 경험자의 기록이나 모범이 될 만한 참고와 전례도 없이, 스스로의 열정을 등대 삼아 길을 열어 나가야한다. 많은 시행착오가 생기고 숱한 고뇌들이 고비마다 포진해 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아가서 어느 한 지점을 탄탄하게 정지 작업한다. 뒤따라오는 이들은 보다 수월하게 그 지점을 넘어간다. 우리가 이른바‘선구자’라고 부르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뮤지컬협회 제 6대 이사장에 선출된 박명성 (주)신시컴퍼니 대표이자 예술 감독은 우리나라 뮤지컬 1세대다. 그에게 경의를 표할 지위가 부여된다면 바로 그런 이유다.
국내 대형 흥행 뮤지컬들의 제작자
뮤지컬 관람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 ‘맘마미아’라는 단어는 귀에 익숙할 것이다. 라이센스 뮤지컬 ‘맘마미아’는 국내 뮤지컬로는 유래 없이 10년 동안 공연해 오며 1,300회에 이르는 공연 횟수에 180만 명의 관객 동원 기록을 가지고 있다. 맘마미아는 특히 드라마의 주 시청자이던 중장년층을 뮤지컬 관객으로 유도해 내 대중화의 통로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들의 추억과 감성을 훌륭하게 자극해 낸 것이다.
한편, 또 하나의 대형 뮤지컬 ‘아이다’는 국내 뮤지컬 사상 최장기 공연을 해옴으로써 문화산업에서 뮤지컬의 잠재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렌트’,‘시카고’, ‘갬블러’, ‘댄싱 섀도우’,‘사운드오브뮤직’등 귀에 익은 레파토리는 그 외에도 많다.
이렇게 다양한 소재의 뮤지컬을 연출하고 제작해 주목할 만한 대기록들을 세워온 사람은 (주)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다. 그는 우리나라 뮤지컬계를 초창기부터 이끌어오며 지금의 문화규모로 발전시킨 극히 몇 안 되는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90년대 후반부터 (주)신시컴퍼니를 통해 세상에 보여준 성과들은 고스란히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의 흐름과 동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의 안목과 운영방식을 가진 뮤지컬 기획과 제작에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 온 박명성 대표가, 외연을 급격히 확장해 온 탓에 우리나라 뮤지컬의 현재에 자기비판이 필요한 이때에 한국뮤지컬협회의 이사장으로 선출된 일은 그래서 모종의 기대를 갖게 한다.
배우로 입문한 연극계에서 프로듀서로 방향선회
흥행 안목이 상당한 제작자로서 능력을 발휘할 때까지 박명성 대표의 진로는 때로 아픈 수정을 거쳐야 했다. 벽촌에서 태어난 그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유년 시절의 꿈을 쫒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대학로의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오랫동안 단역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열심히 했고 극단 신시의 창단멤버로도 참여했다. 하지만 배우로서 주목받지 못하고 그런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기 시선은 힘들었다. 그는 점점 꿈에서 멀어져 가는 배우의 재능에 회의를 느끼고 조연출 일로 선회하면서 기획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80년대 당시의 기획이란 공연전단지를 돌리고 계산을 하고 가릴 것 없이 무대에 관련된 모든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프로듀서(제작) 역할로 옮겨갔다.
“따로 무엇을 하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이 스스로 현장에서 체득한 노하우로 헤쳐 나가며 이정표를 세워야 하던 때였습니다. 굉장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지요.”
마침내 박명성 대표의 잠재능력이 시간을 견디고 발화됐다. 국내 연극계에는 아직 저작권이 도입되지 않아 해외 성공작품들을 가져와 무작위로 무대화 했던 1998년에 그는 정식 라이센스 계약을 거쳐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 ‘더 라이프’를 공연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음해 (주)신시컴퍼니 대표를 맡았고 연극에서 다져진 예술 안목과 현장감각으로 이 후 10여 년간 뮤지컬 제작에 전념해왔고, 보증수표처럼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에게 한국 뮤지컬계의 대부라는 위엄을 부여했다. 더불어 이 기간 사이에 한국 뮤지컬은 폭발적으로 급성장하면서 새로운 문화산업으로서의 입지를 키워왔다.
그런 박명성 대표에게도 늘 대성공의 스포트라이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07년에는 그간 쌓아온 경험을 총 집합시킨 역작 ‘댄싱 섀도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으로 많은 빚을 지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오로지 실패만 하고 오로지 성공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도 일부러 경험할 수 없는 자기만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저는 당면 과제를 마주보며 열심히 살아왔고 그 시대의 한계와 발전에 맞게 실패와 성공도 겪어왔습니다.”
한 분야를 오래 천착해 마침내 그것에서 인생의 보편적 비밀을 발견한 대가만이 취할 수 있는 담담함이 묻어 있는 대답이다.
연극은 예술적 본향(本鄕), 뮤지컬 수입 연극에 투자
박명성 대표는 작년에 제 24회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 연극계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진 이 상은 그동안 배우나 연출가에게 거의 주어졌던 것으로 제작자에게는 처음 주어졌다. 박 대표 그 개인뿐만 아니라 연극계 전체 구성원에 대한 인정과 지형도를 넓혀준 의미심장한 상이었다.
뮤지컬에서 지대한 성공을 거둔 박명성 대표는 2008년부터는 다시 연극에도 관심을 돌렸다. 그의 예술적 본향은 연극이었고 뮤지컬은 연극과 한 몸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로 그는 흥행성이 좋은 뮤지컬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상대적으로 수입이 떨어지는 좋은 연극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제작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박 대표는 자신의 강점이 발휘되는 중대형 연극들을 주로 지원하고 있다. 진지한 주제와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있는 창작극 ‘푸르른 날에’, ‘나와 아버지와 홍매와’는 국내 창작극에 신선하게 등장해 이제는 (주)신시컴퍼니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다.
뮤지컬에서는 새로운 소재와 아이디어들을 담은 중극장 뮤지컬 <퀴즈쇼> <엄마를 부탁해>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창작뮤지컬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극과 뮤지컬의 병행 작업을 통해 박명성 대표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는 한 지점에 모아진다. 바로 ‘국내 창작’이라는 화두다.
질적 성장 도모하는 창작품만이 시장 확대
박명성 대표는 단호히 말한다.
“그동안 해외 명품 뮤지컬을 들여와 성공시키고 많은 노하우를 쌓았으니 이제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창작해 해외에서도 통하는 국가브랜드로 정착시킬 수 있는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야 할 시기에 와 있습니다. 아직 창작 뮤지컬을 높아진 관객의 수준에 호응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통렬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는 그동안 한국 뮤지컬이 외연을 넓혀와 뉴욕, 런던, 일본 등 세계 5대 뮤지컬 무대로 꼽히며 세계에 유래 없이 짧은 기간 발전해 왔지만 그 속에는 상당한 거품이 있다고 말한다. 현재 뮤지컬협회에는 84개 단체가 가입해 1,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지만, 과연 뮤지컬의 수준이 제작업체의 숫자로 판단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작품 수는 많지만 뛰어난 것부터 함량 미달까지 질적 차이의 편차가 많습니다. 이제는 전체적으로 수준이 상향되는 수평적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한국 문화산업에서 뮤지컬이 주저앉느냐 아니면 더 나아가느냐의 중요한 기로가 지금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해외 뮤지컬을 도입할 때 국내 제작업체끼리 라이센스 비용을 상승시키면서까지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도 부정적이다. 또 제작비의 과도한 출혈이나 개런티 등의 상승으로 인해 종사자 전체로 볼 때 대우의 불균형 문제도 생기고 있다. 뮤지컬 산업이 발전하다보니 오로지 돈벌이 수단이 목적인 상업적으로만 접근하는 행태도 지적당하는 업계의 이면이다.
“작품을 잘 만들어야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겁니다. 해외에서도 한국이 경제 강국 뿐만 아니라 문화적 이상이 높아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를 감동시키고 뒤흔들 수 있는 뮤지컬은 모든 장르에 상통하는 말, 가장 한국적인 것, 토속적 영혼에 호소하는 것을 주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작품에의 도전은 언제나 어렵지만 발상의 전환하는 혁신적 인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는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임기동안 자신이 이러한 노력이 가시화 될 수 있도록 업계 전체와 정부, 관객 등의 가교역할을 할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 듯하다.
출세에의 조급증 버리고 인문적 공부해야
박명성 대표는 명지대학교 연극·뮤지컬 학과에서 4년 째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선배들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공부를 하고 개인적으로도 재주가 많지만, 빨리 출세하고픈 조급증은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배우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인 인문학적 정서가 기본이 돼야 합니다. 책, 영화, 연극, 전통예술 등을 섭렵하면서 사유와 감각을 늘려야 하는데 이런 점에 소홀하면서 단순한 재주만 보여주려 하면 오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어요.”
대학에서 4년을 집중적으로 배우고도 극단에 들어가 다시 트레이닝을 하는 아마추어 의식에도 경고를 한다. 시간의 낭비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 대표는 학교에서 4년을 연마하면 바로 프로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내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이론과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병행하는 것이다.
뮤지컬계의 선구자로서, 선배로서, 제작자로서, 교수로서, 뮤지컬 협회 이사장으로서 그의 역할이 분주하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의 목표는 하나로 집중된다. 범 연극계, 범 뮤지컬계가 모두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전체적인 수준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올해 박명성 대표는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조정래의 ‘아리랑’을 창착 뮤지컬로 제작한다. 70억 원의 대작이다. 그 앞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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