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느냐로 우리의 생애는 평가될 것이다”
프랑스 작가 까뮤의 말이다.
까뮤의 말처럼 평생 모은 100억원의 재산을 사회복지법인에 희사하고 남은 인생을 노인복지향상에 열정을 쏟으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김성곤 사회복지법인 상록요양병원(www.srhospital.com)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2007년 11월 1일 개원해 올해로 다섯 돌을 맞이한다. 대지 3천평 부지에 지상 5층, 건평 총 1,300평의 규모로 최신식 집중치료실, 물리치료실, 엑스레이실, 신장투석실 그리고 150병상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재활치료 서비스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21세기 한국인상‘을 수상! 복지사회의 우리들의 표상
김 이사장은 15년 전인 1995년 사회복지법인 상록원을 설립하고 평생 모은 재산 100억원을 이 재단에 기증했다. 이 같은 선행이 알려지면서 ‘제21세기 한국인상’사회복지부문 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제90주년 3.1절 기념 장한 무궁화인상’ 시상식에서 사회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번 무궁화인상 수상식에서 김 이사장은서 “많은 도움 속에서 살아온 만큼 이제는 제가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라고 생각한다”며 “어르신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치료해드리고 보살피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또한 지난 2011년 12월 16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개최된 ’제7회 21세기 한국인상‘시상식에서 전국 사회복지단체를 대표해 사회복지공로부문 대상인 ’21세기 한국인상‘을 수상해 복지사회의 롤 모델로 우리들의 표상이 되고 있다. 자신을 비우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인생노정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이웃사랑을 실천하게 된 배경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는 남부럽지 않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본의 달콤함을 느끼기도 전에 고아아닌 고아로 살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지난한 희생은 자신을 지탱해주는 자양분이 되었으며 고비 때마다 용기를 주고 일으켜 세운 선생님이 있었다. 외아들이었던 그의 부친은 할아버지 김군삼(金君三)의 영향으로 일본에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전 재산을 처분하여 그의 가족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택시운수사업을 했다.
하지만 제대로 사업을 일으키기도 전에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그의 부친은 물론 형님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구한 운명과 부닥친다. 그의 어머니는 시신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전쟁의 폐허더미를 샅샅이 뒤지다 포기하고 유복자까지 포함한 어린 네 자녀를 이끌고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부친이 외아들이라 마땅히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은 결국 외갓집신세를 져야 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걸음걸이도 힘에 부치는 고작 3살이었다.
내 인생의 등불 나의 어머니
“한학자집안에서 태어나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집안에 시집을 왔다가 일본까지 건너갔지만 하루아침에 부친과 아들을 잃고 친정집을 찾아온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땅 한 떼기 없어 결국 어머니는 품팔이를 해야 하는 등 모진 고난의 길을 걸으셨지요. 어린 시절 이런 어머니를 한 순간도 잊어 본적이 없어요. 힘들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내 자신을 채찍하고 또 단련시키다 보니 어느덧 나이도 들고 작은 성공이나마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악조건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그나마 흉년마저 들었다. 결국 김 이사장은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의 형님이 머슴살이를 하는 이모네 집으로 가 소꼴을 베다 나르는 깔(풀)담살이가 시작된다. 2년을 보내고 난 후 초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한 그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은인 노상훈 선생님을 만난다. 그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고 초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중학교 진학의 기틀이 마련된다.
노상훈 선생은 광주 천주교계통의 직업학교 숭의학사(현 숭실고교)고아원에 있는 전도사에게 한통의 편지를 보낸다.
“공부는 잘하는데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학생 한명을 보내니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시오.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배려로 그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 고아로 호적을 고쳐 고아원에 들어간다.
“고아원 시절은 인생의 지표가 생겼다”는 그는 고아원에서 속성과정의 중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구두 닦는 일을 비롯해 농장에서 일을 거들었다. 버겁고 힘든 고단한 삶으로 인해 1년 과정의 중학교를 2년 만에 마쳐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오래 버틸 수 없었다. 18세가 되면 고아원에서 나가야 하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때 고아원에서 취직을 시켜 준 것이 지물상을 겸해 문구제품을 취급하는 용문당이었다.
종이 밥 인생으로 100억원대 부자대열에
용문당을 거쳐 제지회사에 입사하면서 그의 종이밥 인생이 본격 시작된다. 제지회사내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당시 인생의 전환점이 마련된다. 외국산 최첨단 인쇄기에는 지관을 사용해야 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지관을 생산하는 곳이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궁여지책 끝에 찾아낸 것이 신문사에서 버려지는 지관을 재활용했지만 수요가 턱없이 부족해 집에다가 간판도 없이 수공업형태의 안양지관공장을 열었다. 전기 등 모든 시설이 열악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밤과 낮을 번갈아가며 꿈을 키워 나갔다. 피나는 노력 끝에 1978년 제법 공장규모를 갖춘 대성지관으로 사명을 변경, 법인등록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관공장은 김성곤 이사장에 의해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다. 전국의 지관생산을 김 이사장이 독점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거기에 효자상품인 ‘품’자 대성노트도 그의 작품이다. 김 이사장의 도전은 지관공장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예 제지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공장용 부지매입을 위한 부동산에 손을 댔지만 제지공장이 장치산업이라 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돼 망설이고 있을 당시 법정관리에 들어간 포장박스용 재생지 제지회사에 지분참여로 인수한다. 그러나 운영이 여의치 않아 다시 정리하고 이 돈으로 종로 숭인시장을 매입한 것이 아파트부지로 편입되면서 그의 자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남들처럼 공부도 해야겠고 먹고도 살아야 했기에 발버둥 치며 살아왔던 지나간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면 지금도 가슴 한가운데로 뜨거운 눈물이 강을 이뤄 흐릅니다. 참으로 어려운 역경들을 어떻게 혼자 힘으로 헤치고 살아왔는지....아마 지금 같으면 좌절하고 말 어려운 고비들이었습니다. 그 시절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남들이 자고 있을 때 일어났고. 남들이 쉴 때 일하고, 남들이 차를 탈 때 걸어갔습니다. 배를 좀 덜 채워도 저금통장은 불려야 했습니다. 저금통장의 저금이 늘어나면 그 만큼 힘이 생겨났습니다”
상록요양병원 홈페이지에 실린 김 이사장의 인사말 중 일부이다. 그가 살아온 지난한 삶이 녹아있는 대목이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유한양행 설립자인 故 유일한 박사를 꼽았다.
봉사하고 섬기는 사람이 돼라
“유한양행, 유한킴벌리와 사업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사회책임에 대한 유일한 박사의 고귀한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를 잘 만나 불어난 재산인 만큼 복지사회구현을 위하는데 일조하기 위해 상록원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석교리 3,000평의 부지위에 세워진 150병상 규모의 상록요양병원은 최신식시설을 갖추고 있다. 의사, 간호사, 간병인 등이 24시간 상주하여 의료서비스를 하고 있다. 내과와 신경과, 신경외과, 정형외과를 중심으로 최첨단의 신장투석실, 재활치료실, 물리치료실, X-Ray실, 집중치료실 등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 요양병원 가운데 최초로 10억원을 들여 갖춘 지열냉난방 시스템은 친환경녹색법인 1호로 지정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시스템은 냉난방 소비열량의 80%정도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어 경제적 환경적 효율성을 제고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아울러 늘 쾌적하고 냄새없는 신선한 공기를 어르신들한테 제공한다. 또한 건국대와 산학협력을 체결함으로써 원활한 진료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다.
천생사업가로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아온 김 이사장은 잠시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하면서 정치에 눈을 뜨게 된 김 이사장은 민주당 경기도 사무처장직을 맡았고 그 길은 민선 4기 경기도 의원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도의원 임기가 끝나자마자 미련 없이 정치에 발을 끊었다. 가족들도 놀랄만큼 단호한 결정이었다. 평소 김성곤 이사장은 가훈으로 항상 봉사하고 섬 길수 있는 사람이 되라. 둘째, 높은 곳에 올라가도 교만하지 않는 자. 셋째, 많은 것을 가져도 게으르지 않는 자. 넷째, 앞장서서 일해도 자만하지 않는 자 등이다. 이러한 가훈의 힘을 받아서일까. 김 이사장의 가족은 언제나 웃음꽃이 지지 않을 정도로 화목하기로 유명하다.
김 이사장은 부인 박종순 여사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남 영성(LG전자 근무)은 이은숙(상록요양병원 대표이사, 사회복지사)와 결혼, 광수. 동현. 지현을 두었으며 장녀인 은경은 정동혁(목사), 은실은 김시웅(LG전자연구원)과 각각 결혼했다.
“사회가 갈수록 돈생돈사(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다)로 변질돼 가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돈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도와주는 미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안으로 (사)상록원 과 상록요양병원 사업 등을 통해 굶주림에 지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적극 동참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 이사장은 명지대 사회교육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과정을 수학 중에 있으며, 이는 만학에 열정을 쏟는 김 이사장에게서 상록원의 어르신들을 모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항상 봉사하고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김 이사장의 경영마인드처럼 상록요양병원의 복지사업이 작금의 삭막한 사회에 귀감이 되고, 따스함을 채우는 원동력이 되어, 한층 성숙한 복지사회로 나아가는 롤모델이 되어 이 사회에 한 알의 밀알이 되길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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