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하는 민주당호(號), 새로운 선장 김한길 대표
계파갈등 청산, 안철수와 관계설정, 연전연패 선거 극복 등 가시밭길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친노(무현)니, 비노(무현)니 하는 명찰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모두 민주당 명찰을 달자”고 강조하고 있다. 5․4 전당대회에서 난파선이 되어 버린 민주당을 김한길 대표가 50여 년 정통의 민주당을 구해 낼 수 있을까? ‘통합’을 빼고 ‘민주당’으로 다시 당명을 복귀하는 등 선명성을 강조하고 ‘성장’을 강령에 도입하는 등 중도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민주당. 과연 김한길 대표가 변화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민주당 바람을 일으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스트작가에서 민주당 대표까지 오른 김한길 대표
김한길 대표는 김철 전 사회당 당수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이어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 김철 전 당수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통일시회당을 결성했으면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5․16 군사쿠데타 때문에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아버지를 이어 민주당의 대표가 된 김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미주지역 한국일보 기자와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 지사장을 거쳤으며 1981년 소설 ‘바람과 박제’를 발표해 문학사상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아 소설가로 데뷔했다.
1991년에는 대통령의 외동딸과 평범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소설 ‘여자의 남자’를 발표한 후 1년 만에 300만 부 이상 팔려나가면서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르기 했다. 글뿐만 아니라 말솜씨도 뛰어난 김 대표는 ‘김한길과 사람들’ 등과 같은 TV토크쇼를 맡게 되면서 대중들의 인기를 누리는 중에 1995년 톱 배우 최명길씨와 결혼하게 된다. 김 대표는 1996년 김대중 총재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의 비례대표로 영입되면서 국회에 입성하게 된다.
최초의 ‘미디어 대선’으로 불린 97년 대선에선 DJ의 TV토론 대책팀장을 맡았고 DJ로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을 맡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그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에 오르면서 승승장구했다. 2002년 대선에서도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5%로 떨어지고 있을 때 뒤늦게 캠프에 합류한 그는 정몽준 후보와 극적인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키며 두 번의 민주정권창출 하면서 '대통령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총선기획위원장을 맡아 총 152석의 의석을 확보, 대한민국 최초로 민주진보개혁세력의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2006년에는 17대 국회 후반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대선 때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후 책임을 지고 2008년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두문불출한 그는 19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갑에 출마하여 당선해 국회에 재입성 했다.
계파를 청산하라!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단일성 진단지도체제를 채택하면서 김 대표는 인사와 예산에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김 대표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면서 민주당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김 대표가 ‘친노니 비노니 하는 명찰을 쓰레기통에 버리자’고 했듯이 현재 민주당의 제일 큰 문제는 계파 간 갈등이다. 아무리 당명을 바꾸고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도 계파 간 갈들이 계속된다면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김 대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끗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전당대회 전날 ‘원조 친노’인 문성근 전 대표 권한대행이 자신을 포함해 친노 핵심 인사들이 대선 패배의 책임자로 지목되고 전대 과정에서 완전국민경선제의 취지가 퇴색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문 전 권한대행뿐만 아니라 친노 인사 중에도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언제 갈등이 폭발할지도 모르는 상태다.
또한 당 지도부에 '호남ㆍ친노' 인사가 한명도 없다는 점에서 계파갈등은 더욱 첨예화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유성엽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서 낙선하면서 지도부에 호남 출신 인사가 없어 호남 당원들은 패배감에 쌓여 있다. 그래서 김 대표의 지도력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김 대표가 어떻게 지도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민주당이 갈등을 봉합할 수 있고 화합의 길로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 할 경우 분당의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으며 김 대표도 정치적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민주당과 안철수, 지금은 따로 가지만......
김 대표는 첫 지도부회의에서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과 안철수 세력이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민주당은 안철수가 간절히 필요하지만 안 의원은 묵묵부답이다. 사실 안철수의 등장으로 민주당의 지지도는 급격하게 떨어졌으며 정치인 안 의원의 행보에 따라 민주당의 운명도 바뀔 수도 있는 처지다. 현재로서 민주당의 선택은 안철수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내부적인 혁신으로 민주당의 길을 당당하게 가든지 안철수와 함께 갈 비전을 제시하든지 양자택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만일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게 될 신당이 나온다면 민주당은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만큼 민주당이 기반을 잃을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안 의원에게 민주당 입당을 기대하며 '러브콜'을 보낸 상태다. 하지만 언제 답변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분간은 운명공동체가 되기보다는 경쟁적 관계로 간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10월 재보선 이후 안 의원과 관계설정이 이루어지리라 예측하고 있다.
안 의원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신당을 만들거나 민주당에 입당 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민주당과 안 의원이 각자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도 안 의원의 힘이 필요하듯이 정치적으로 세력이 없는 안 의원도 민주당의 손길을 뿌리칠 수만 없을 것으로 보인다.
10월 재ㆍ보선은 민주당 운명
민주당이 지난해 총선부터 시작해 대선, 그리고 최근 4·24 재보선에 이르기까지 '질래야 질수 없었던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 지난달 여러 곳에서 실시한 정당별 지지도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9%에서 15% 사이로 나타났다. 이는 새누리당이 30% 넘는 지지율에 비해 한참 뒤처진 지지율이며 안 의원이 신당을 만들 경우 3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그야말로 민주당은 난파선 직전이다.
그래서 민주당 이번 10월 재보선에서 승리를 하지 못할 경우 당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 진다.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만들어 독자적으로 후보를 내고 선거를 승리한다면 민주당은 단순한 선거패배가 아니라 야권의 새판짜기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10월 재보선은 서울 서대문을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 지역구를 비롯하여 최대 14곳에서 최소 10곳의 국회의원을 다시 뽑을 전망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얼마큼 선전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한길 대표 함께 할 민주당 최고위원
- 신경민 최고위원
최고위원 후보 중 최다 득표를 얻은 신경민 최고위원은 1981년 MBC 방송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등을 거쳤으며 워싱턴특파원, 보도국 부국장 등을 역임한 스타 방송인 출신이다.
전주 출신인 신 최고위원은 15대 총선 때부터 민주당의 영입 대상이었으나 번번이 거절하다가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 선거구에 출마, 3선의 여당 실세인 새누리당 권영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미디어단장을 맡았지만 계파색은 엷다는 평이다.
- 조경태 최고위원
조경태 최고위원은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에서 36살의 젊은 나이로 17대 총선에서 승리한 후 19대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한 소장파다.
조 최고위원은 2002년 16대 대선 때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정책보좌역을 거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을 지냈다. 그의 일화는 유명하다. 17대 총선 직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조 최고위원의 성공사례를 학습할 필요가 있다며 '조경태 학습관'을 지으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당내 대선 후보로 출마했으며 그 과정에서 ‘문재인 5대 불가론’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컷오프의 벽을 넘지 못했다.
- 양승조 최고위원
지역구 천안에서 내리 3선에 성공한 양승조 최고위원은 매일 천안에서 서울까지 기차로 왕복하며 국민들과 소통을 넓히고 있다.
변호사 출신의 양 최고위원은 2010년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22일간 단식농성을 벌였으며 당시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정운찬 국무총리를 상대로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점을 질타한 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수액 주사를 거부하며 단식을 계속했다.
양 최고위원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국가균형발전·분권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 우원식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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