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서원한 목자의 삶.
“세상이 평화로워지려면 사람이 먼저 변해야 된다”라 외치다
세상의 부조리함과 어두움에 대한 고뇌를 느끼고 개별적인 고행과 희생을 통해 구원의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동서고금의 철학적 성현들이 그랬다. 그들의 가르침과 자기희생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여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인간 스스로의 탐욕과 방만과 이기심때문에 각박해졌다.
오직 예수님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을 믿고 한 사람의 신앙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합쳐지고 나아가 사회적 빛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도 군포에 위치한 새가나안 교회 이기동 담임 목사는 자신의 신앙 안에서 그런 힘을 확신하는 인물이다.
최후의 보루 ‘베이비 박스’
새가나안 교회 건물 한쪽에는 ‘베이비 박스’ 라 일컫는 물건이 있다. 세상에 존엄하게 태어났으나 그것을 보장받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부모의 품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갓난아기들의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른다. 아기를 키울 여건이 안 된다면 아무데나 유기하지 말고 이곳에 두면 우선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우리나라의 교회에 설치된 두 번째 베이비 박스라고 한다. 세간에서는 ‘유기 조장이다', ‘생명 보호다’로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이기동 담임 목사가 이 상자를 설치한 것은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제가 딸을 하나만 두고 아이들을 입양해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폐결핵에 걸려 신체검사에서 탈락하기도 하고, 다른 제약들이 있어서 입양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데 가출 청소년 12~14만여 명 중에서 성경험자가 30%라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통계에 잡히지 않은 더 많은 숫자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가출한 성경험 청소년들이 예상치 않게 생긴 아기들을 키울 환경이나 마음가짐이 안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상당수 아기가 유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이런 결과적 현상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안보였다.
“마침 연이어 서울의 한 교회에서 베이비 박스를 설치해 놓고 운영하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아기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출생의 이유가 다 있을 텐데, 어느 정도 유기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신앙인이니 이 아이들을 제가 믿는 종교의 비전으로 돌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그룹 홈 만들어 성장 때까지 돌볼 계획
새가나안 교회 앞에 베이비 박스를 설치하여 시작한 것이 지난 5월 7일이었다. 7월 10일 현재까지 11명의 아기가 상자 안에 넣어졌다. 아기가 있는 것이 확인되면 시청의 해당 실무자에게 알려야 하고 경찰에도 신고해야 한다. 그리고 나선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도 가야하고 시청에도 가야하는 거쳐야 할 절차가 많다. 시청에서는 ‘유기’라는 이유로 베이비 박스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목사는 베이비 박스에 담겨져 인연이 맺어진 아기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규제했던 그룹홈 운영 조건이 법개정을 통해 이번에 완화됐습니다. 25평 정도의 그룹 홈에 시설장, 보육교사 등이 일정한 자격만 갖추면 7명 정도의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그룹 홈을 200개 정도 만들고 싶습니다. 약 1,400명 정도 되겠지요. 이 아이들을 신앙 안에서 대안학교도 만들어 고등교육까지 시키고 대학에도 진학시킬 복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선순환 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용이 들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목회활동을 하면서 여러 문제에 부딪혔지만 항상 하나님께서 도움이 되는 길들을 열어 주었습니다.”
영아 유기는 작년 통계로 2년 동안 7배가 늘었다고 한다. 지자체에서는 예산과 시설미비로 뚜렷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기동 목사는 정부에 대책을 바라기보다는 스스로 먼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겠다고 한다.
모태 신앙, 개척교회에서 부랑자들과 함께
이기동 목사는 모태신앙인이다. 어릴적 어머니가 성경속의 ‘사무엘’처럼 이목사를 하나님께서원하며 드렸다고 한다. 성장기에는 격렬한 운동을 좋아해 체육교사나 사관학교를 가고 싶어 했지만, 행로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바람대로, 하나님이 길을 여신대로 신학대학으로 정해졌고 총신대대학원에 다니던 1989년도에 그는 성삼교회를 개척하여 열었다. 지하실에 있는 가난한 개척교회의 신도는 고등학생 딱 한 명이었다.
“25년 전의 일이네요. 어느 날부터인가 걸인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밥과 옷도 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또 갈 데가 없으니 교회에서 같이 자기도 하구요. 교회를 나갈때면 꼭 4~5천 원씩 손에 쥐어 보냈습니다. 개척 교회니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걸인들이 소문을 내서 어떤 사람은 리어카 살돈이 필요하니 2만 원 만 달라고 하더군요. 그날 저에게 재산이었을 수도 있는 그 돈을 주었습니다.”
성도이든 아니든 이기동 목사는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대접을 했다. 쌀 80kg한가마니가 20일이면 동이 났다. 매일 밥을 해 대느라 사모가 늘 고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앙이 존재하는 공동체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교회에는 신도가 300여 명에 이르는 부흥을 이루었다. 그렇게 헌신과 봉사로 일구는 목회 생활이 10여 년 동안 이기동 목사는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한다.
좌절된 중국 포교, 다시 시작한 개척교회
이기동 목사에게는 젊은 시절부터 가졌던 종교비전으로 중국(20대 당시는 미수교)에 신학교를 세우는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 목회를 하면서 그 비전이 다시금 떠올랐고 중국에서의 청년 사역을 위해 300명성도의 성삼교회를 완전히 내려놓고 중국 북경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한국 목사에게 예배공간을 허락해주지 않아 주일마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호텔에서 공원에서, 식당에서.. 한인 유학생과 한인들을 상대로 예배 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7년 동안 공안을 피해 예배를 드렸지요. 당연히 호텔 안에 십자가를 걸 수도 없었어요.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중국 정부가 고민하던 차에, 저에게 비자연장을 해주지 않더군요.” 중국에서 기독교의 포교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귀국한 이기동 목사는 다시 한국에서의 목회가 시작된다.
개척교회를 열었다. 48세 때였다. 그에게 ‘전도’라는 비전이 주어졌다. 매일 전도현장에 나가 행인들에게 커피와 부침개를 나눠 주었다. 어느 날 전도 현장에서 앞을 지나가는 초라한 노인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교회가 세상을 섬겨야 하는데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섬기려는 마음보다 교회의 확장만을 위해 달려오지 않았나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12층 상가 10층 교회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19~20명 정도 왔는데 지금은 190명까지 늘었습니다. 봉사자들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이 부어져 적극적으로 해 주었기 때문에 비용문제나 다른 힘을 따로 들이지 않고 잘 운영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군포 가나안 교회 담임목사와 전도사라며 여자 두 분이 이기동 목사에게 찾아왔다. 교회의 내부적인 문제로 담임목사가 사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이기동 목사가 대신 맡아주지 않겠느냐, 는 제안이었다. 상의 끝에 두 교회를 합쳐서 오늘날의 새가나안 교회가 탄생하게 됐다. 매일 무료급식은 지금까지 140명~ 160명정도 계속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영혼 중심으로 사람이 변해야 한다
이기동 목사는 목회자의 핵심으로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항상 새기고 있다고 한다. 일부 교회가 본래의 목적 외에 세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에도 종교 본연의 회귀를 강조했다. 그는 “영혼의 정결함을 중심으로 가야만 교회가 변질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신도가 작고 몇 명 안 될 때는 전도도 열심히 하고 겸손하다가 교회규모가 커지고 재정이 풍부해지면 영혼과 상관없는 물질적인 것에 경도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자기도 모르게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는 거지요. 교회의 본질, 영혼을 중시여기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요즘 매일 연속 집회를 하고 있는데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화 시킬 수가 없구나, 라는 생각을 절실히 합니다.” 라고 말한다.
교회의 넓고 깊은 공간에서 이기동 목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도충회기자 ( jj6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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