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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6:3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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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서울과학기술대학교_화공생명공학과 정건용 교수

풍부한 현장경험이 뒷받침 된 교육의 힘

서울과학기술대학교_화공생명공학과 정건용 교수

서울과학기술대학교_화공생명공학과 정건용 교수


경제성 높은 화학공정 기술개발로 국가 화학산업 발전 기여

풍부한 현장경험이 뒷받침 된 교육의 힘

“비전을 가지고 준비하면 기회는 어떤 형태로든 나타납니다.” (중간발문)

고대 중국의 교육 철학서로서 교육의 나침반으로 불리는 중국 고전, 여씨춘추

(呂氏春秋)에 보면 ‘스승의 임무는 이치가 승리하고 의(義)가 행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학문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배움의 토양을 혁신하고, 더 나은

방향의 이정표를 끊임없이 제시하는 명문(明文)속 스승의 모습을 이 시대에도 만날 수 있다.

‘제7회 화학산업의 날‘ 산업통상부장관상을 수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정건

용 교수, 그는 가르침의 귀감을 보여 주는 스승이자 지성과 인성의 상아탑을 시대가 요구하는

위상으로 일으켜 세우고 변화시킨 선봉장이다.

화공학과 인생의 유쾌한 시작

캠퍼스의 수려한 정취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연구실에서 정건용 교수를 만났다.

정건용 교수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온화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반적으로 화학과와 화학공학과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화학공학은 경제적인 대량생산공정을 개발하는 분야입니다. 좋은 기술도 경제적이면서

이익을 남겨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기술은 쓸 수 없게 됩니다.”

사업적으로 반드시 경제성이 있어야만 공학기술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정건용 교수가 개발한 기술 연구 성과는 상당 부분 사업화로 적용되어

과학기술 분야의 가치를 창출해 왔다고 평가받고 있다.

정건용 교수는 입학 당시 화공과나 기계과를 놓고 고민 중에 마침 포항 인근해역에 석유가 날 것이라는 기사를 읽고 화공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기사는 사실과 달랐지만 정건용 교수의 화공과 인생의 시작은 유쾌했다.

정건용 교수는 서울 토박이었지만 졸업 후 지방에 있던 쌍용정유 (현,S-Oil) 온산공장 입사를 과감히 선택했다. “학생들이 지방의 공장에 근무하면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 할 거라는 두려움을 갖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전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준비를 하면 기회는 어떤 형태로든 나타납니다.” 정건용 교수는 4-5년간 혼자 지방에 내려가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영어와 전공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자기관리에도 철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화학산업 경쟁력 높인 연구개발 성과

정건용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한 뒤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유학 후 재입사해 선임연구원으로서 화학공정 기술개발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환경CFC연구부에 근무하면서 HFC-32 등 CFC대체물질을 실험실적 규모로 개발했습니다.”에어컨에 사용되는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로 판명되면서 이를 대체할 물질이 필요했던 것. 정건용 교수팀이 연구개발 성과를 기반으로 파이롯트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고 성공적으로 시운전하였으며 상용화 규모의 화학공정을 설계하여 CFC대체물질 대량생산을 위한 국산화 기술 개발을 이뤄냈다. 또한 중국 등의 CFC대체물질 연구기관과의 기술 교류 증진으로 국가 화학 산업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정건용 교수의 중요한 공적 중 또 하나는 분리막 연구개발이다. 1500여 명이 소속되어 있는 한국막학회 전무이사 및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정밀여과막 또는 역삼투막 및 모듈의 객관적인 기술 분석, 평가 및 자문 등으로 정수기 성능 및 사용 방법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시켜 국민생활 향상에 기여하였다. 특히 분리막을 이용한 고도 정수처리시설 도입을 촉진시켰다. “요즈음 수돗물도 고도 정수처리를 하는데 종전 방식은 미생물을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박테리아 등을 걸러내야 하는데 분리막을 사용하면 매우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안전한 수돗물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를 한층 높인 정건용 교수는 바닷물을 음용 가능한 해수담수화로 만드는 공정에 있어서도 에너지 절감 효과가 큰 분리막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정건용 교수의 지도를 받은 대학원생들은 대부분 분리막 관련 회사로 진출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정건용 교수는 화학공정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관련 현장경험이 필요한데 석유화학 공장은 항만시설에 인접한 지방에 있다 보니 학생들이 가기를 꺼린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현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건용 교수이기 때문이다.“공장에서 현장경험을 한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화공과 교수를 하려면 실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공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경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건용 교수 자신이 공장 현장을 경험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현장을 경험해야 진정한 화학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격려한다. 롤 모델이 되어 주는 스승을 보며 학생들도 관련 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얻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학교 발전 이끌어

정건용 교수는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진지함과 신중한 인품을 지니면서도 목표하는 바를 위한 결단력과 추진력에 있어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100여 년 전통을 지닌 국립대학교인 서울산업대학교의 혁신과 발전을 일궈 낸 선봉장이기도 하다.

정건용 교수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부임했을 당시에는 서울산업대학교로서 산업대학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야간학생과, 편입생, 수능시험을 보고 입학한 학생 등 학생층도 다양했다. “수능을 치르고 입학한 학생들은 예상과 다른 학교 생활에 실망감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직장인들도 함께 생활하고 기대했던 대학문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정건용 교수는 자신이 학교를 떠날 것인가, 학교를 변화시킬 것인가 고민했었지만 후자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정건용 교수를 지금의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위상을 높이는 중심에 서게 했다. 정건용 교수는 학교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돌파구를 모색했다. 2003년 대학원 교학부장 당시 박사과정까지 개설할 수 있는 에너지환경전문대학원을 설립하도록 노력하였다. “학교가 일반 대학과 다름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정건용 교수는 대학종합평가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당시 윤진식 총장의 강력한 지원으로 힘을 모아 성장의 청신호를 더욱 밝혔다. 1년6개월간 ‘대학종합평가’를 준비하며 대학 브랜드 인식을 제고하고 기존의 틀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것. 평가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

“ ‘우수’ 정도를 목표로 설정하였는데 ‘최우수’를 받게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학생들의 자긍심도 높아지고 학교 분위기가 활기가 넘쳤습니다.”

학교는 이를 계기로 많은 홍보를 하게 되고 발전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지만 그 후 기획처장으로 행정 실무를 맡으면서 정건용 교수는 다시 한번 학교의 혁신을 단행했다. 산업대학이 아닌 일반대학으로의 전환을 강력히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교육부의 승인을 얻기까지 각고의 노력과 헌신으로 마침내 2010년 서울과학기술대학교로 이름도 바꾸고 일반대학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정건용 교수는 당시를 회고하며 산업대 정책을 포기하면서 일반대학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많은 갈등과 난관을 헤쳐 나가야 했다고 전했다. “서울대와 같은 일반대가 되다보니 서울에 국립대가 두 개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롤 모델로서 저희 학교만의 특성화를 강조했고 학과 통합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수용해야만 했습니다.” 학과를 통합하면서 학생수를 줄이는 등 내부마찰도 있었지만 갈등을 원만히 해소하며 마침내 뜻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었다.

“일반대학으로 전환하려는 의지가 분명했기 때문에 다른 교수님들도 고통스럽지만 기꺼이 동의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편입반 과정은 전부 폐지하여 신입생 선발로 전환하였고 일반대학과 같이 특수 분야를 제외하고는 야간반을 모두 정리하였다. 일반종합대학교로서의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태동은 그렇게 각고의 시간을 통해 거둔 결실이었다. 정건용 교수는 그 여정의 선봉에서 진두지휘하며 학교의 발전을 견인했다.

“이제 정년퇴임까지는 7년 정도 남았는데 지난 20년간 학교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학교가 ‘대학종합평가’를 통해 한 단계 올라가고 중요한 전환점마다 제가 함께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정건용 교수는 탈모증상이 생길 정도로 그 당시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인생에서 그런 실무를 담당했다는 것도 인생의 낙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소회를 전했다.

남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는 학생들 키워내야

“예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정이 뜨거운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정건용 교수는 잠시 소중한 제자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실험실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학생이 있어서 허락하였더니 정말 밤낮으로 열심히 한 학기를 실험실에서 노력하더군요. 그런데 호적 나이가 잘못되어 군입대 영장이 나왔다고 하면서 갑자기 군대를 가더라구요. 얼마 후 최전방 철책 수색대에 근무하던 그 친구가 첫 휴가를 받았는데 우선적으로 실험실에 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군장을 차고 학교로 올 만큼 열정을 가졌던 제자의 모습은 정건용 교수의 마음에 뭉클함을 안겨 주었다. “그 친구는 제대 후에 박사학위도 받고 현재 분리막 관련 컴퓨터 전문가로서 성공적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건용 교수는 그 때 좀 더 열정 있는 친구들을 잘 도와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수려한 불암산의 정기 아래 펼쳐진 캠퍼스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캠퍼스에는 신축 건물도 꽤 많이 들어섰고 15만여 평이 대부분 구릉지대와 평지로 조성되어 있어 여전히 사용공간이 확보되고 있다. “이제는 학교 전체가 기반도 갖추었고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좋은 학생들이 많이 입학을 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서 졸업할 때의 델타를 더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1.8등급으로 입학했다면 졸업할 때는 1등급이 되어나갈 수 있도록 교육과 연구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정건용 교수는 학생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안겨 줄 수 있는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인생의 항로를 순항해온 정건용 교수, 정건용 교수의 중심을 지켜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증조부때부터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랐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저의 생각과 선택만으로 지금까지 왔다기보다 하나님께서 잘 인도 해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건용 교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부와 귀(貴)가 다 하나님께로 말미암고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시고 강하게 하심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나이다.” 정건용 교수가 늘 묵상하는 성경구절 중 하나이다.

정건용 교수는 학생들을 사랑스럽게 대해주면서 기도도 해주고 잘 이끌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수업과 여러 가지로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지 못한 것 같아 가끔 마음이 무겁다고도 한다. “우리 사회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풍토가 만연해 가는데 제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울타리 안에서만이라도 남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는 학생들을 배출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학생들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날마다의 삶을 시작하는 정건용 교수. ‘가르친다는 것은 사람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도 정건용 교수와 만나게 될 학생들과의 시간은 제자들에게 큰 선물이자 축복일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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