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침례교회 서달석 목사
하나님 안에서 욥처럼 일어서다
이단시비를 딛고 반디불처럼 빛나는 빛의 사역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성장이 풍성한 교회!
바로 부천에 자리하고 있는 서울 중앙침례교회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고 진심으로 찾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복음을 전하는 서울 중앙침례교회의 담임목사는 오랜 세월 이단의 낙인 속에 절망과 시련을 겪어야 했던 서달석 목사.
지난 33년간 서 목사의 사역의 발자취 속에서 이단시비가 부른 한 목회자의 희생적 삶과 시련을 이기게 한 신앙의 원동력을 취재했다.
뜨거운 열정을 품은 신뢰받는 사역자
30대,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사역의 길을 걷게 된 서달석 목사는 성경에 대한 깊은 연구와 하나님에 대한 견고하고 올곧은 신앙을 소유한 목회자로 존중받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초청 세미나 등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성경해석을 들으려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극동방송, 아세아방송 설교담당 15년과 기독교 방송설교담당 6년간 아침고정프로를 진행할 만큼 방송선교분야에서도 신뢰받는 목회자였고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었다. “그 무렵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설교담당 약15년, 그리고 기독교방송에서 6년간을 매주 아침 고정 방송설교를 하고 있었다. 방송관계자들이 나의 신앙관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단... 그 올무에 갇히다
서달석 목사의 시련은 1991년 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미국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 책 출간세미나의 작은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기존교계와의 작은 충돌은 이단종교연구소 탁명환 소장이 발행하던 ‘현대종교’에 서 목사의 저술활동 책들을 이단서적으로 기재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단서적으로 실린 책들은 서 목사가 기독교방송과 극동, 아세아방송에서 진행했던 방송원고를 책으로 편찬한 것과 미국의 저명한 정통침례신학자의 서적을 번역한 책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탁명환 씨가 본인이 발행하던 간행물에 40권 전체에 대해 내용검토도 없이 이단서적으로 발표 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탁명환 소장을 찾아가 이단서적이라는 증거가 뭐냐고 물었다.” 서 목사는 자신의 책들이 이단서적이 된 이유를 요구했지만 탁명환씨 측의 이단시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서 목사는 혼자의 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단서적으로 몰린 미국의 침례신학서적 저자에게 직접 이 일을 보고하게 되었고 그 일로 탁명환 소장은 소송경고를 당하게 된다.
당시 탁명환 씨의 측근이던 최삼경 목사는 고소 건을 취하하라며 서 목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압력을 가했다. 서 목사는 “탁명환씨 고소건 파장은 엄청났다. 나에 대한 이단여부가 예장통합측총회에 제기됐고 통합측총회는 최초 이단성 조사요청서를 제출했던 자파교단 소속 강원동노회의 확인결과 서목사는 이단성이 없다는 ‘조사제고요청’도 묵살하고 나를 이단성이 있는 것으로 발표했다.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잘못된 결과라고 맞서보았지만 종교적 권위와 세력을 가진 자들과 맞서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를 바 없었다.” 예장총회에서 서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부분은 그가 회개를 부인하는 자라는 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 서 목사는 단호히 반박했다.
“당시 본인이 발행인 이였던 월간지 바이블뉴스에 글도 기고했지만 회개자체를 부정하는 목회자가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는 단 한번이지만 매일 매일 성화를 위한 회개는 반복적으로 해야한다 는 의미의 글을 게재한 사실이 있다.” 서 목사는 그리스도인의 반복적 회개를 주장했던 것인데 그들과 결탁해 기회를 엿보던 이들에게 서 목사는 회개를 부인한 자로 내몰렸다. 서 목사는 곧 바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과 고등법원에서는 서 목사에게 손을 들어 주었지만 대법원에서는 다른 사건과 포함해서 회개에 관한 사항은 빠진 채 타종교를 비판할 수 있다는 항목으로 패소하고 억울하게 이단으로 낙인찍히면서 혹독한 시련이 계속됐다. 이단 목회자라는 낙인은 출간했던 책들의 반품을 초래했고 주변의 불신과 이단교회라는 인식 때문에 전도의 문도 닫히고 말았다.
서 목사의 아내이자 동역자였던 사모는 출판관리를 맡아 오던 중 당시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심적 고통에 시달리다 43세의 젊은 나이에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당시 다른 출판물건과 연계되어 수배될 지경까지 놓였고 해외로 도피하듯 나가 있는 동안 아내의 병도 더 악화가 됐다."나지막히 잠기는 서 목사의 목소리에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슬픔과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목회자만이 나의 길
그 후로도 서 목사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구원파라는 이단으로 오해받기도 했고 통합측과 천주교와도 갈등을 겪어야 했다. 서달석 목사의 지인들은 구원파로 오해받는 서 목사를 안타깝게 여기며 “ 서 목사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환원파” 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모든 사역을 포기하고 싶고 세상을 많이 미워도 했다는 서 목사는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목자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목회자로 살아가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며 힘을 냈다고 한다. “사람들이 나를 이단이라고 배척해도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면 된다” 는 위로 속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서달석 목사.
서 목사는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한 채 보낸 세월이 못내 마음 아프다며 “우리 사회에서 이단에 대한 시선은 마치 한센인 (문둥병 환자)들을 보는 것처럼 배타적”이라고 말했다. 이단이 아닌데도 목회자의 어느 한 편의 사상의 강한 측면이 부각되다보면 소위 말하는 이단사냥꾼들에게 걸려서 이단으로 정죄당하기도 한다며 이 과정에서 진위여부의 엄격한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문이나 설(設)만을 기사화하는 언론매체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성경해석에 관한 지엽적인 부분은 모든 목회자들이 일치될 수 없다. 교파의 차이점과 서로의 깨달음과 이해의 차이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데 나와 안 맞는다고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다.” 서 목사는 각 목회자마다 스타일이 있고 저마다 강조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라며 성경해석이 다른 것이 이단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단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천국과 지옥을 부인, 피로 얻는 구원을 부인하고 부활신앙을 부인하는 등 근본적인 성경의 기둥과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 이단”임을 분명히 했다.
신앙의 본질과 내용에 집중하는 목회철학
서 목사는 자신이 신앙적 견해에 비춰 양심을 속이는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또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단호히 말하는 강직함을 지녔다. “바른말을 하다 보니 적이 많이 생겼다. 하나님께 외부집회를 안가더라도 바른 소리를 하겠다고 기도했다.” ‘성경을 믿는 진실한 크리스찬의 삶’을 강조하는 서 목사는 형식과 의식에 치우친 예배가 아닌 중심을 바로 세우는 목회철학을 추구한다.
“ 우리 교회는 예배순서에 헌금시간이 따로 없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우러나오는 헌금을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모습은 잘못된 것이다.”라며 서 목사는 로비에 헌금함을 마련해서 하고 싶은 사람들은 할 수 있도록 한다.서 목사는 돈이 있어도 감사가 없는 헌금은 하지 말라고 한다며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앙적 양심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음을 전했다.
서 목사가 강조하는 또 한 가지는 우리의 삶이 곧 예배라는 것이다. 헬라어로 ‘히에론’은 건물, 교회의 모임은 ‘나오스’인데 사도바울이 성경에서 사용한 ‘모임’의 의미는 모두 ‘나오스’개념이었다며 모임을 위한 집회장소가 필요하지만 외형적 건물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나치게 교회건물의 외형을 강조하는 요즘 세태에 일침을 가했다. 서 목사는 성도들에게도 교회당에 와서 예수님 앞에서 회개하고 거듭나고 침례받는 순간부터 차를 타고 돌아가는 동안도 예배가 되고 일상의 삶이 늘 예배가 되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도들에게 교회 와서 예배보고 간다라는 표현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 예배는 교회 건물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예배가 되야 한다는 서 목사의 예배철학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내 삶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예배가 되야 한다” 예배의 참다운 의미를 강조하고 실천하자는 서 목사의 목회 중심은 형식을 간소화하면서도 본질적 내용을 철저히 교육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부활신앙을 교육하는 서 목사이지만 부활절 계란을 나눠주는 행사는 하지 않는다. 성탄절에도 트리장식 등으로 화려하게 교회당을 꾸미거나 성탄절의 특별한 행사를 하는 대신 교회의 의미와 역할에 더 집중한다고 전했다.
“세계를 많이 다녀봤지만 십자가 네온이 우리나라처럼 많고 화려한 곳도 없다.” 서 목사는 그만큼 교회들이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야 함을 피력했다. 또한 성령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성경말씀 같은 직접영감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지만 각 개인을 통해 역사하는 성령님의 예언이나 은사는 지금도 계속된다.”고 말했다.
주의 종으로서의 삶을 묵묵히 정진
33년간 목회의 길을 걸어온 서 달석 목사... 어린시절 한의사였던 외조부께서 시골교회 집사로 계시면서 교회에서 설교를 하셨고 시골에서 학교 외에 유일한 문화생활을 선사했던 교회는 어린 서 목사에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성경을 묵상하고 배우기 시작하던 20대 후반, 서 목사는 죄의 문제들을 고민했고 방황 속에 신학공부를 잠시 내려놓기도 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한 선교단체가 전하는 죄에 관한 용서의 메시지를 듣고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면서 죄의 올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예수님의 보혈로만 죄를 용서받는 것이 복음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다시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장로교파교단에서 목회를 하였지만 뜻이 있어 교단에서 독립적으로 나와 독립교회사역의 길을 걷게 되었다. 목회활동에 있어서 법적으로 총회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총회를 만들게 되었고 현재는 한국기독교침례회총회에 소속 돼있다
서 목사는 “목회자 개개인은 목사님이지만 같이 모이면 예수님 안에서 다 형제다.” 라고 말하며 서로 간에 권위의식을 세우지 않고 교회들마다 중심이 돼서 운영해 간다고 설명했다. 편견과 선입관들이 서 목사를 향한 경계의 벽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많은 성도들이 서 목사의 복음을 향한 진정성을 알고 그가 전하는 성경의 진리를 배우기 위해 인터넷설교를 듣거나 교회를 다시 찾고 있다. 그만큼 교회도 안정을 되찾고 회복중이다. 지금의 삶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묵묵히 십자가의 푯대를 향해 걸어온 서 목사에게 단비와도 같은 은혜로운 결실이 아닐 수 없다.
정금같이 나아가는 빛의 사역자
최근 한기총과 예장통합 측은 최삼경 목사 등을 비롯한 이단감별사들을 이단으로 판단 또는 확정지어 무고한 선한 목자들이 명예가 실추되는 심각한 사안에 적극 대응하기로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3월 28일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포럼에서도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서달석 목사를 비롯한 류광수, 박윤식, 이태화, 변승우 목사 등이 이단논리의 대표적인 희생자였음을 분명히 밝히며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30여 년 전 서 목사가 이단제소가 됐던 바로 그 장소에서 서 목사를 추락시켰던 이단목회자의 족쇄가 풀린 것이다.
서 목사는 현재 주변으로부터 한국교회가 내부적인 다툼을 멈추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예전처럼 방송을 통한 사역활동도 하고 싶다.”는 서 목사는 문서사역의 비전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서 목사는 기존의 성경의 누락된 부분들을 바로잡는 영어성경(KJV)을 번역 출판하여 보급 중이다. “영어성경 역시 헬라어를 영어로 번역해서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보니 기존의 번역성경들에는 왜곡된 부분이 있다.”
355년된 원본을 직접 구입해서 번역하는 등 문서사역에도 힘을 쏟고 있다. 서 목사는 “이 번역 작업을 완성하는 일은 내 삶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야할 사명”임을 분명히 했다. “신학관련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는 만큼 목회자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제공하며 목회자의 영성을 깨우는 일에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반딧불처럼 조그마한 쓰임만 있어도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되고 싶다.”는 서 목사의 고백은 사역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모함이 얼마나 깊고 간절한지를 보여준다.
어둠속에서 더욱 위대한 빛을 내뿜는 반딧불처럼, 그리스도의 빛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영성회복의 정금같은 도구로 쓰임 받게 될 서달석 목사의 사역을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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