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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양식기 시장의 세계강자를 향한 비상

사랑과 나눔으로 성공신화 창조한 유진크레베스 문영기 대표

양식기 시장의 세계강자를 향한 비상

 기업선교의 모델 제시

150년 전통의 최고가 제품만을 취급한다는 WMF, 쌍둥이 칼로 유명한 헹켈스, 유럽 유명 레스토랑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한국의 제품이 바로 유진크레베스의 스푼, 포크, 나이프다. 서구 식탁의 중심을 차지하는 양식기 시장에서 연평균 8000만개를 생산, 전량 수출하는 우리 기업 유진크레베스(대표 문영기). 고급스럽고 정교한 ‘식탁 위의 패션 아이템’으로 양식기의 본고장 유럽 식탁을 점령한 유진크레베스의 성공신화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스푼, 포크로 세계 식탁 점령한 유진크레베스

유진크레베스는 금속제 식탁용품 전문 생산업체로 해외시장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금형기술과 열처리기술을 인정받고 있는 기업이다. 스푼과 포크 등 고급 스테인리스 양식기 분야에서 최고급품 양식기를 생산하는 유진크레베스는 Dinner Spoon, Vegatable Spoon, Dinner Fork, Child Fork, Dessert Fork, Dessert Fork, Steak Knife, (H/H) 등 총 35가지의 양식기 종류와 수백여 가지의 디자인을 개발해 월 100여 종의 패턴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월 평균 생산량은 약 350만개 정도로 년간 4,000만 개에 해당한다.

가방장식의 경우 약 70종의 악세세리를 생산하며, 월 평균 350만개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1996년에 설립된 유진크레베스는 베트남 현지공장 생산법인을 통해 1999년부터 수출을 시작해 독일, 영국, 네덜란드, 호주, 미국 등에 8000만 개 이상의 고급양식기와 가방 악세사리를 수출하고 있다. 유진크레베스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 바이어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유진크레베스가 납품하는 해외 기업은 독일 생활용품 업체 WMF, Henkels를 비롯해 미국의 Lenox, Oneida 등이다. 2001년 이케아로부터 우수협력업체 표창까지 받았다. 스푼 하나도 세계 최고의 디자인과 품질을 유지하려고 애쓴 결과였다. 2009년부터는 기존의 금속 식탁용품 제조 기술력을 토대로 여성용 가방 액세서리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미국의 고급 가방 브랜드인 Coach사에 수출을 시작했다.

현재 유진크레베스는 연매출 500억 원에 이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문영기 대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CSR)에 대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한다.

“많은 기업이 CSR을 실천하는데 큰 비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CSR을 실천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즈니스 미션의 기업리더

“사람들이 양식기 하면 사양 산업으로 간주하는데 제겐 아닙니다. 유진크레베스의 전신인 유진금속이 고급 금형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값싼 동남아 제품과의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은 새 돌파구로 이 분야를 허락하셨고 성공하게 해 주셨습니다.” 문 대표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을 희생과 눈물의 선교비지니스와 연계해 아름다운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꿈꾸는 기업의 모델로서 양식기 제조 전문기업 유진크레베스를 이끄는 문 대표는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스푼·나이프·포크 등의 고급양식기를 생산·수출해 성공을 거두면서 베트남 등지에서 ‘나눔경영’과 ‘윤리경영’을 통해 기부천사운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1998년 베트남에 2000여 명이 일하는 현지공장을 세웠다. 인건비 상승과 가격경쟁 틈새에 낀 한국 양식기 제조업체들이 신음하며 문을 닫을 무렵인 96년 유진크레베스는 외국의 쟁쟁한 양식기 제조업체 앞에 도전장을 냈다. 그 덕에 생산원가를 크게 낮춰 ‘고품질의 저렴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현지 공장 책임자인 문대기 법인장은 2,0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세계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문 대표는 기업의 경험과 조직을 선교에 활용하면서 ‘비즈니스 미션’을 완벽히 수행하고 있다. “비즈니스 미션은 시간·공간·재정이라는 3요소를 통해 이뤄집니다. 현지 투자과정을 통해 축적돼 있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행착오와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죠. 또 기업은 선교사역 초기에 필요한 업무공간뿐 아니라 현지적응과 언어훈련의 기회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문 대표의 선교에 기초한 경영마인드는 항상 온유함으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이다. “처음 신앙이 없을 때는 해외에도 땅을 많이 사서 부자가 되고도 싶었지만 신앙을 통해 기업운영의 분명한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문 대표는 땅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이라며 ‘온유한 사람은 사람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말씀처럼 사람을 얻는 리더가 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베트남을 향한 출격!

1998년 베트남에 진출한 유진크레베스는 현지인들을 우수한 기술자로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문영기 대표와 문대기 법인장은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위해 연간 5회 이상, 3~4kg이 넘는 샘플가방을 들고 전시회를 돌아다녔지만 정교한 기술과 신뢰가 요구되는 양식기 시장에서 이름도 모르는 동양의 업체에게 오더를 주는 바이어는 없었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생산라인을 1년 이상 30% 정도 밖에 가동하지 못하면서 공장의 적자는 늘어만 갔다. 어렵게 들어온 주문은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거래였다. 바이어가 제시한 50% 이상 손해가 나는 터무니없는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회사의 이름을 업계에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에 수주를 결심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멈췄던 생산라인에서 품질의 문제점은 또 다른 복병이었다.

“170여명의 품질검사원을 각 공장별로 배치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 제품의 품질만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며 까다로운 품질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함으로써 입소문이 나는 첫 관문을 합격한 이후 업계에 대한 유진크레베스의 인지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기업이 성장세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유진크레베스는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밀려드는 주문으로 생산에 박차를 가하던 중 현지 직원들이 양식기를 빼돌려 팔기도 하고, 막대한 내부 손실도 발생한 것이다. 자연히 부족한 제품을 다시 생산하는 어려움으로 납기가 늦어졌고, 해외 바이어들의 불신도 커졌다. 수출에도 적신호가 켜지면서 애를 먹었다.

그러나 문 대표는 오히려 각종 기념일에 직원들에게 양식기를 선물하는 등 끊임없는 직원교육을 통해 베트남 공단에 노사분규가 일어났을 때에도, 공장에 화재가 났을 때도,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는 2000여 명의 베트남 직원들을 얻게 되었다. 문 대표의 바램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가 된 것이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현지 베트남 직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불을 끄는데 동참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문 대표는 그 사건을 계기로 현지 베트남인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매년 심장병을 앓고 있는 베트남 어린이 10명을 한국에 데려와 수술해 주기로 약속한 것도 이 사건이 큰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은 유진크레베스의 성공신화가 시작되는 땅이자 착한 기업으로서의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올리는, 나눔과 사랑의 땅이기도 하다.

문 대표는 회사의 경영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사회공헌에 나섰다.

나눔경영의 아름다운 실천

유진크레베스는 2001년부터 10년 이상 꾸준히 베트남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지원하여 300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의료시설이 낙후된 지역에 의료봉사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또 베트남 중부 다낭시에 태권도 보급 및 태권도 체육관 건립 지원을 하면서 베트남 정부의 신뢰도 얻었다.

베트남 하노이에는 ‘선의 코리아 적십자병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특히 심장병 어린이 무료수술은 라오스, 필리핀, 미얀마와 중국까지 그 대상을 확장했다. 부천세종병원과 여의도순복음교회 등과 협력해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의 심장병 어린이 16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수술도 받게 해주었다. 중국 내몽고 통랴오에 위치한 내몽고 민족대학에 한국어 반을 개설하여 매학기 400여 명의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한국 유학과 한국 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문 대표의 나눔은 수술만 시켜주는 게 아니라 어린이들이 직장이나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후원해 주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또 다낭 체육관 건립 및 병원 개원 등 현지인을 위한 나눔 경영은 끝이 없다.

“의료시설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베트남 어린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었죠. 결국 회사 이미지도 크게 높아졌고 베트남에서 가장 신뢰받는 한국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나눔의 실천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는 사업상의 기회로 돌아왔다. 브랜드 인지도가 약하던 유진크레베스는 문 대표의 사회공헌 활동 덕에 ‘착한 기업’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베트남은 물론, 다른 나라 바이어들에게도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문이 늘어난 것도 당연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CSR)은 필수!

문 대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CSR)에 대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한다. 문 대표가 이렇게 CSR에 대해 적극적으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CSR이 기업경영에 안겨준 커다란 혜택을 이미 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해외 진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더하는데 CSR이 중요한 요소라는 판단 때문이다.

문 대표는 “많은 기업이 CSR을 실천하는데 큰 비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오해”라며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CSR을 실천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 대표는 해외에 진출하는 기업들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은 소모가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말한다.

“특히 중소기업 특성에 맞게 세부방향을 세우고 현지 정부나 공공기관과 협력해 작지만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부터 CSR 활동을 시작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문 대표는 그 믿음을 실천으로 옮겼고 결실을 맺었다. 베트남 다낭에 태권도체육관을 설립한 뒤 매년 개최한 ‘선의 코리아컵 태권도 대회’가 자리를 잡아가자 다낭 시는 문 대표에게 체육관 옆에 있는 다낭시에서 가장 위치가 좋은 8만8000m²의 땅을 내주며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어보라’고 제안하였다.

문 대표는 “사업은 실패할 수 있지만 봉사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2004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복지훈장도 받았다. 유진크레베스는 한국언론인포럼이 선정한‘2005 한국 사회 공헌대상’시상식에서 해외 봉사부문 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선정한 대한민국희망 중소기업혁신대상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유진크레베스의 다양한 CSR 활동은 경영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회사에 대한 베트남 현지 직원들의 자긍심이 높아졌고, 자연히 생산성 증대와 품질 향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유진크레베스의 CSR 활동이 기업 홍보로도 이어져 해외 바이어들이 유진크레베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CSR을 통해 기업이미지가 높아지면서 유진크레베스는 경기에 무관한 기업이 되는 수혜를 맛보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경기가 어려울 때 심각한 매출 타격을 입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유진크레베스의 선행은 해외뿐만 아니다. 한국선의복지재단을 통해 노인과 청소년 아동 심신장애인 등이 수용돼 있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신앙이 주는 힘으로 경영의 원천삼아

문 대표는 어려울 때 신앙을 통해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제 인생을 바꾼 한 말씀이 성경에 있었습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 )’”

이 말씀을 소개한 문 대표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광야 길을 걸을 때가 참 많다며, “때로는 자금 문제로, 직원 문제로, 노사문제로 많은 위기감을 경험하게 됩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광야의 길을 겪어야만 성공하는 사업가가 된다.”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의지하며 “정말 모든 것을 예수님께 의지해야지 주님만 바라봐야지”하는 마음을 품는다고 밝혔다.

문 대표에게 어머니는 늘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격려해 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제가 사업을 하면서 결정을 잘못해서 거의 부도가 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님이 ‘괜찮다 괜찮다’ 하셨거든요. 만약 어려웠을 때 저를 책망했다면 저도 주저앉고 회사도 주저앉았을 것입니다.”라며 ‘아들아 나는 너를 믿어. 그러니까 사장이 있는 거야.’라고 믿음을 주시던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문 대표는 직원들에게도 크리스찬 기업인으로서 모범을 보이고 싶다며 “순간적으로 화도 내는 제 모습을 볼 때면 회개하고 있습니다.”고 전했다.

사랑을 나누는 사회적 기업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최근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은 먼저 기업을 키우고 이익을 남긴 뒤로 사회적 공헌을 미루는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사회공헌을 결심은 해도 실천을 앞세우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유진크레베스는 식탁 위에 올려지는 정성스런 제품의 이미지 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세계 구석구석을 향해 사랑의 나눔활동을 끝없이 펼쳐가고 있다.

“기업이 어려울 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참아내자.”

문 대표의 오늘의 경영 리더쉽을 만든 신념이다. 문 대표는 신앙인의 자세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는 정신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시고 막판 뒤집기를 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일은 어떤 형태든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대표는 자신에게 맡겨진 기업이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 기업을 운영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이어 “전에는 돈을 벌려고 일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돈을 이용해서 사람을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며 기업의 방향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유진크레베스가 나아가야 할 앞으로의 더 넓은 땅은 소유의 땅이 아닌 나눔의 땅으로 활짝 열려 있다. 문 대표는 사랑으로 희망을 낳는, 사회적 기업의 향기로 가득 채울 비전을 향해, 오늘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으로 유진크레베스를 이끌고 있다.

■ 유진크레베스 대표이사

■ 한국 선의복지재단 회장

■ 한국 해외원조 단체 협의회 부회장

■ 중소기업사회책임경영 포럼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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