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시민으로 살아가다 영문도 모르는 악의에 의해 평탄한 인생이 곤두박질치는 경우가 이 사회에서는 종종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이것만은 피하고 싶은 일들 중 하나임은 물론이다. 자신의 신체에 가해진 이유 없는 부당한 폭력 때문에 갑자기 청각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불행을 극복하고 오히려 타인의 삶을 위무하고 동행하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사소한 욕구의 포기나 작은 좌절마저도 삶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게 만드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속성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맞섰고 싸워서 이겨냈다.
지역에서는 누구나 아는 유명한 봉사활동가
청각 장애 2급. 안종선(60)씨는 양쪽에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심상하게 건네는 말투는 쉽사리 알아들을 수가 없고. 큰소리로 입모양을 보고 대화한다. 기자가 찾아 갔을 때 곁에 함께 있던 부인 설경순씨는 밥상을 차려놓고 ‘식사하시라’ 말하면 금방 알아듣지 못해서 큰소리로 알릴 때 가장 ‘속상하다’며 잠시 착잡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부부는 지난했던 삶과 대결하며 살아남은 자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종선 씨를 만나러 가기 전 기자는 그에 관한 사전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그가 살고 있는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은 물론, 지역 언론에서 그는 이미 자주 등장하는 취재대상이었다. 장애를 가졌지만 이를 새로운 돌파구로 마련해 비장애인이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으로서의 명예가 그에게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2008년에는 KBS의 ‘사랑의 가족’을 통해 전국방영에 선행이 알려지기도 했다. 제 33회 장애인의 날 수상한 국무총리표창 소감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진정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장애는 단지 조금의 불편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가해자로 인한 청각 상실
청각 장애를 가지기 전의 안종선 대표는 한국도로공사에서 20년 근속하고 있던 안정된 직장인이자 성실한 시민이었다. 그런데 2005년 8월 귀가 하던 중 알지도 못하는 청년으로부터 이유 없는 폭행을 당한다. 이른바, 자신에게 쌓인 분노를 불특정 대상의 사람을 가해함으로써 해소해보려는 어긋난 심리였던 것 같다. 얼떨결에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그는 방어할 틈도 찾지 못한 채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급하게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얼굴 부분에 가해진 가격 때문에 그의 한 쪽 귀가 청력을 상실해 버렸다.
당연한 줄 알고 사용했던 신체의 한 부분에 장애가 와서 일상에 금이 갔을 때 그의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가족 부양의 책임감 때문에 간신히 추슬러 직장을 나가기는 했으나, 엄청난 상실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또 한번 그의 신체를 망가뜨렸다. 다른 한 쪽 귀에 이명 현상이 오더니 결국 나머지 청력마저도 세상의 소리를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서 그는 불명에 퇴직을 하였고 한동안 엄청난 실의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가 평소 성실한 직업인이었던 보답을 받아 마침 공사 중이었던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 개통과 안전순찰 외주 용역사인 안성산업을 설립해 15명의 직원들을 채용해 운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청각장애이기에 사업을 영위하는 데는 말로다 할 수 없는 험난한 위기에 처하여 좌절도 하였으나 세상에는 수많은 장애인분들의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데 여기서 좌절하면 안돼 마음을 돌려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봉사활동이 마련해 준 인생의 새로운 전환
어떤 잠언은 인간의 삶에 한 통로가 막혔을 때 반드시 다른 통로가 열리게 되어 있다고 했던가. 이때부터 안종선 대표는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정보지에서 발견한 시각장애인 차량봉사자 모집광고를 보고 자원한 것이 그의 봉사인생의 서막이었다. 부인의 내조가 있어 기에 가능 했으며. 이의 인연으로 그는 지금까지 수 년 동안 매월 두 번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의 차량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분들의 눈과 손발이 되어주고 도서관에 모셔 컴퓨터점자 교육을 받게 하였다.
자신도 장애가 있지만 타인을 돕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한 안종선 대표의 본격적이면서도 지속적인 봉사활동이 시작했다. 안성산업을 운영하면서 사업장이 있는 진안군으로부터 요양원을 추천받은 2007년 말부터는 무의탁 노인 80여명에게 매월 생일상을 차려드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광대 노릇까지 하며 즐겁게 놀아주고 있다. 또 매주 월요일에는 몸을 간을 수 없는 불편한 노인들을 직접 찾아가 목욕을 시키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2009.부터는 작은 정성이나마 사랑의 열매 후원과 가정위탁아동을 후원하게 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생활이 곤란한 노인 분들에게 2005.말부터 후원해오던 쌀 80kg은 익명을 밝히지 않고 후원하였는데 아동 후원을 계기로 그 선한 인물이 바로 안종선 대표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때부터는 2명의 아동에게 월 5만원씩을 후원하고 있다. 한 해의 특정한 성금모금 시기가 되면 대기업이나 재력가들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탁하지만, 금액상으로 그와 비교할 순 없을지라도 안종선 씨의 후원금에 내포된 순수성과 값어치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명성(?)은 국제라이온스 로 타리 클럽에도 전해져 2012년 전주방송국과 함께 주관하는 제8회 초아의 봉상대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받은 상금 500만원 역시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3대의 컴퓨터로 변신되어 전해졌다. 눈물로 보낼 수는 있었던 세월을 다른 사람의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미리 돌보는 시간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이런 인생의 굴곡진 경험이 바탕이 되어 다른 이의 가슴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싶어2009년 ‘마음의 귀로 세상소리를 듣는다’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부부가 함께 걷는 길
“그저 옆에만 있어 달라고 기도했어요. 어떤 경우라도 옆에만 있으면 그 자리에서 살아나가겠다고...” 폭행을 당했을 당시 안종선 대표의 극심한 상태를 보며 부인 설경순 씨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봉사의 길도 함께 걷는다. 설경순 씨는 그 자신 가정의 생계를 같이 꾸리기 위해 ‘자연에서 건강 찾는 기업 유니베라’에서 근무를 하며 틈틈이 지역사회의 소외된 곳에 관심을 쏟는다. 완산구 효자3동의 해바라기 봉사단 회장이며 독거노인이나 차 상위 계층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음식 봉사활동을 한다.
밑반찬을 만들어 나르고, 찰밥을 짓고 삼계탕을 끓여 독거노인들에게 대접한다. 특히, 효자동의 노인정은 설경순 씨의 극진한 봉사가 아쉬워 노인정이 다른 데로 옮길 기회가 있어도 노인 분들은 이사를 가지 말고 여기에서 살의라고 한다. 인터뷰하는 도중에 핸드폰이 울렸는데, 노인정 할머니께서 ‘어제 마늘 사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까주마‘고 손수 전화를 하신 거라고 전한다. 설경순 씨도 남편 못지않은 봉사활동이 알려져 부부의 날에는 ‘평등부부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요즘 이들 부부에게 근심이 생겼다. 지금은 계약기간이 끝났지만 안성산업을 운영할 당시 근로자를 돕는다는 의도가 왜곡되어 고용 장려금관계로 모든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인정을 아니 하고 법정송사로 휘말리게 되었다. 또한 여기에 겹쳐 불의의 사고로 장애의 보상금 00생명. 00연금. 00해상. 심사를 하여 지급하였는데 법 소송의해 00생명 1심 100% 승소 하였고. 000금고 사건은 1심 재판장님께서 화해권고결정까지 하였음에도 새마을금고 측이 이의신청하여 기각 당하였다고 한다.
위 사건으로 안종선은 억울함에 상고까지 하였으나 또다시 기각 되었으며 보험회사에서는 보험약관에 의해 지급해야 함에도 지급하지 않기에 통상 법에 의뢰하여 지급받았으나 위 사건은 보험회사에서는 지급하였고, 법에 의뢰한 사건은 기각함은 억울함을 전하였다. “세상의 법이 권력과 힘 있는 자에게 법이며 힘없는 약자는 당한다”라며 현실의 상황을 하소연 하였다.
“법은 만인에 평등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함을 법이 왜 있는 것인지 자꾸 묻게 되었다.”며 좀더 적극적이고 현명한 정책의 바램을 간절히 전했다. 안종선 대표와 설경순 여사의 빛고운 봉사만큼이나 빛을 발하는 세상이 되었음 좋겠다는 안종선 대표와 설경순 여사의 행보에 또 다른 축복을 기원해본다.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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