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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6: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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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영명 - 오영석 회장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가교를 이어가는 민간 외교관 오영석 회장

영명 - 오영석 회장

영명  -  오영석 회장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가교를 이어가는 민간 외교관 오영석 회장

일본 전역에 한식당 ‘처가방’ 23곳, 백화점 식품코너 17곳 운영

한국에서 공수한 토종 재료로 김치와 가정음식 전파한 성공 신화

인간 삶의 경이 중 하나는, 때로 의지와 목적을 벗어난 우연에 의해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단 우선 되는 조건이 있다면 자신이 당면한 현실에 최선을 다해 대처하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있다. 현재의 최선이 기반이 돼서 다른 통로를 열어주는, 비논리적이지만 수긍 가능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영명의 오영석 회장은 지난 20여 년간 일본 전역에 한국 김치의 정통한 맛을 보급하고 있고, 더불어 한국전통 가정식 음식 체인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목적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의 계획을 실천하는데 열정과 최선을 다해 임했기에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지평이 열렸던 것이다.

김치와 한국 음식으로 이어 온 민간 외교

지난 5월 8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이 결혼식의 신부는 오지선 씨, 그녀의 손을 잡고 식장을 걸은 부친은 오영석 씨. 결혼식은 검소했지만, 참석 하객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특히나 눈에 띄는 인물은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대신, 카이에다 반리 일본 전 민주당 대표 등이 있었다. 이밖에도 300여 명에 이르는 하객 중에는 일본인과 재일교포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날 결혼식장에서는 축하화환 대신 이웃돕기 쌀을 받았고, 이날의 주 인물이었던 부녀의 자전 에세이 ‘딸과 함께 디자인하는 김치외교’가 답례품으로 돌려졌다.

이런 간단한 스케치만으로도 이 결혼식의 혼주와 신부가 어떤 사회적 위상을 가졌는지 짐작이 간다. 부친인 (주)영명 오영석 회장은 지난 1993년 일본에 처음으로 ‘처가방’이란 한국가정식 음식점을 오픈한 이래 일본 전역에 한국 김치와 음식의 맛으로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백화점 17곳에는 김치를 비롯해 전이나 잡채 등의 잔치음식도 판매하고 있다. 이날의 신부 오지선 씨는 (주)영명에서 한국에 개점한 일본 가정음식점 ‘도쿄사이카보(처가방)’ 대표다. 부녀의 상호 협력이 빛난다.

“처음에 유학 목적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30여 년을 일본 음식을 먹으며 문화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양국의 여러 면을 두루 깊숙이 알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의 정통 가정음식점을 상대국에 개점하여 서로의 음식을 알리면 양국의 음식문화 발전과 이해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딸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요. 결혼시키면서 그동안의 일본 경험과 음식점 경영 활동을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패션에서 김치로 선회한 일본 생활

오영석 회장은 지난 1983년 처음 일본으로 건너갔다. 유학이었다. 전공은 ‘음식’과 전혀 동떨어진 ‘패션’이었다. 두 분야의 간극을 그동안 오영석 회장이 일본에서 일구어 온 성공의 경험이 빼곡히 메우고 있다.

“누군가가 처음부터 김치를 팔라고 일본에 가라고 했으면 아마 안 갔을 겁니다. 사람의 인생은 어떤 면에서 자기가 걷고자 하는 길에 생각지도 않던 다른 통로가 열리는 경우가 많지요. 저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오영석 회장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지만, 진정한 관심은 패션이었다. 급기야 대학을 중퇴하고 20대 초반에 명동에서 ‘사라미’라는 의상실을 약 6년 동안 운영하기도 했다. 자기완성에의 열망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현재를 넘어서는 순수한 욕망이 작동하기 마련이다. 오영석 회장은 30대 초반인 1983년도에 체계적인 패션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감행했다. 도쿄의 문화복장학원에서 패션유통을 공부하고 게이오백화점에서 여성복 담당으로 연수 받던 중 발탁돼 백화점 직원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오영석 회장은 자신의 인생이 당연히 패션을 화두로 전개될 줄 알았다.

“1989년도에 아들 돌잔치를 열어 일본인 동료들을 초대했는데 제 아내가 만든 김치와 잡채, 갈비찜 등 잔치 음식에 호평을 연발하더군요. 음식 솜씨가 좋았던 아내는 고무되어 1993년에 도쿄 신주쿠에 결국 김치와 젓갈을 파는 반찬 가게를 열었어요. 6개월 후에는 게이오백화점의 동료가 아내의 음식 솜씨를 인정해 백화점 식품관 매장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처가방’의 진정한 내력이 시작된 거지요.”

한국 김치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마련한 김치박물관

식품매장이 백화점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오영석 회장은 백화점 패션담당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김치 사업에 전념하게 됐다. 하지만 ‘한국김치’와 엄연히 다른‘기므치’만 알았던 일본 소비자들에게 항의를 듣는 곤혹스러운 일도 겪었다.

“제 아내가 깍두기 맛을 낸다고 양파를 갈아 넣었는데 발효되면서 거품이 나니까 썩은 줄 알았던 거지요. 결국 김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는 설명으로 넘어 갔지만, 김치 특유의 발효 냄새 때문에 다른 식품점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일련의 김치 사건을 겪으면서 오영석 회장은 다른 방법을 구상하게 되었다. 바로 ‘김치 박물관’을 건립하는 일이었다. 상품보다 문화로서 먼저 접근해야겠다는 발상이었다. 49㎡(15평) 정도의 작은 규모였지만 매스컴의 조명도 받았고 견학 문의도 많았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또 다른 요구가 생겨났다. 김치박물관을 견학 오거나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김치를 시식할 수 있는 기회도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김치와 반찬을 함께 먹을 수 있는 한국식 가정요리를 주요 테마로 하는 조그만 한식점을 열었다. 상호는 ‘처가방(사이카보)’였다. 다행히 점심시간에 줄이 길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자연스레 다른 장소에서의 연이은 매장 오픈이 이어졌다. 현재 처가방은 로드숍과 토오부, 토오큐, 토요코, 우메다한큐 등 백화점 내의 매장이 일본 본토에 23곳의 체인점으로 운영되고 있고, 게이오이세탄마쓰자카야소고 등 일본 유명 백화점 15곳에 식품코너를 두고 있다. 연 매출 350억 원에, 500여 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다.

한국 현지에서 직접 식재료 구매해 가져가는 오영석 회장

누군가 오영석 회장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공항에 갈 기회가 있다면 한국음식 재료를 넣은 상자를 직접 포터에 밀고 가는 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영명 한국 ‘도쿄사이카보’의 이동필 실장은 중견기업의 회장답지 않은 오영석 회장의 현장 경영 철학을 전한다.

“오 회장님은 처가방에서 필요한 재료들인 깻잎이나 고추 등을 한국에 직접 건너와 손수 구매해서 자신이 짐을 들고 나갑니다. 중견기업 회장의 권위나 허세는 찾아볼 수가 없는 분이지요.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오래 살았지만, 자신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있고, 또 성공할 수 있도록 해 준 일본에 대한 고마움도 피력할 줄 아는 균형을 갖춘 분입니다.”

실제 일본 처가방의 인테리어는 한국문화와 관련한 사진이나 그림, 벽화 등으로 장식돼 있다. 식재료는 양념부터 재료까지 모두 한국 본토에서 가져간다. 일본 소금은 한국 김치에 맞지 않아 전라북도 부안의 곰소 소금을 대량 구매해서 소금 배급까지 하게 됐다. 청송 고추, 의성 마늘, 광천 젓갈 등은 처가방의 기본양념들이다.

처가방의 한국인 종업원들은 유니폼으로 편하게 재단한 한복을 입는다. 대부분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주류인 종업원들에게 오영석 회장은 장학금 등을 통한 학비지원도 하고 있다. 오랜 일본생활에서 얻은 경험으로 미숙한 유학생들이 학교에서 실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도 직접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 준다.

“저도 인생 초반기에는 어렵게 공부를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라 배고픈 심정을 알아요. 또 지금까지 몸으로 뛰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한국 유학생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

오영석 회장은 ‘나라를 떠나 사는 사람은 모두 애국자’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어디서든지 ‘한국인’이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욱 당연하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운동을 했을 것 같다는 비유로 해외에 사는 자신의 모국에 대한 애정을 내비친다.

한국 도쿄사이카보, 처가방의 성공에 보답하는 일본 음식

그렇다고 해서 오영석 회장이 편협한 국수주의자는 아니다. (주)영명은 수년전 서울 청담동에 일본 정통 가정식당인 ‘도쿄사이카보’를 열었고 얼마 전 대구에도 두 번째 매장의 영업을 시작하였다. 일본 처가방의 한국판 크로스(cross)인 셈이다.

“한국인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김치를 팔면서 몇 백 명의 종업원을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게 해 준 일본에도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본 가정식 음식의 맛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도쿄사이카보는 그 결과지요.”

처가방의 김치는 일본 왕실에도 헌상된 적이 있다. 권칠현 전일본대사의 퇴임 때 천황에게 선물로 처가방의 김치가 헌상 되었다. 황충길 명장의 전통 예산옹기에 처가방 김치를 담았으며 전주에서 직접 골라서 공수한 김혜지 명인의 한지로 곱게 쌓여 헌상되었다.

이런 위상을 가지기까지 오영석 회장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이 가장 강한 것에 정성을 쏟은 결과라고 말한다. 자신보다 먼저 한국에서 정착하고자 한 선배들의 실패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반영하려 애썼다고 한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자신만의 독단에 빠지지 않고 한국과 일본을 같이 알려고 노력한 결과하고 말한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

32년간 일본에 살면서 한국 출신의 유명 기업인이 되기까지 오영석 회장에게는 많은 경험과 감정의 교차에 기인한 깊은 인식이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는 일본을 가리켜 ‘알수록 무서운 나라’라고 말한다. 물론 긍정적 의미다.

“‘저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를 늘 생각했지요. 일본 사람들은 한 지역에 정착하면 오랫동안 서로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자연히 같이 사는 방법,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 등이 축적되면서 기본 정서를 이룹니다. 철두철미하게 함께 사는 방법의 매뉴얼을 지키려고 합니다.”

요즘 오영석 회장에게도 조금 힘 빠지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경색 정국이 풀리지 않는 한일 관계 때문이다. 양국의 정치적 분위기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혐한 시위자’들의 행동으로 일반 소비자들도 점점 한인 상점에 발길을 끊고 있다고 한다. 처가방도 현재 5~6곳 정도 정리가 됐다. 그동안 한인 타운의 상점 50여 곳이 문을 닫는 위기에 처하고 있어 150여 명의 소속 상인들이 연합회를 결성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오영석 회장은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요즈음은 자주 ‘일본에 정착하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한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자라면서도 외국인 취급을 받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선뜻 귀화도 못 하고 또 한국에 가면 역시 이방인 취급을 받습니다. 맘 아플 때가 많지요. 정부의 정책이 해외에 사는 교포들의 절박한 일상과 너무 많이 연결돼 있습니다. 한국에서 나쁜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희도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하지만 정부의 현명한 외교정책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지만, 오영석 회장은 이럴 때 일수록 더 강한 마음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일본 내에 김치박물관을 비롯한 한국 음식, 식품, 요리학원을 망라한 ‘한식빌딩’을 꿈꾸고 있다. 이미 성공한 교포지만 그의 정점은 지금이 아니다. 앞으로 5년 안에 그가 더 이루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성취하는 일이 남아있다고 한다. 자신의 원천이 어디이고 또 현재 발 디딘 곳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정직한 마음으로 임하는 사람에게는 성공이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오영석 회장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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