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7월 한반도 서울에는 제1회 조선야구대회가 진행되었었다.
이 경기가 바로 올해로 100회를 맞이하는 전국체전의 뿌리가 되는 단일종목행사였다.
항일운동의 일환으로서 시작된 야구대회는 시간이 흘러 그 규모를 키워나가기 시작하고 1934년 조선체육대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전조선종합경기대회에서 야구만이 아닌 4개의 종목이 추가된 5종목의 대회가 진행되며 이후 성공적으로 경기가 마무리된 후 다양한 종목의 추가와 함께 대회의 규모역시 커져가며 선수들의 역량 또한 키워지고 일본과 겨루는 종목이 매칭되면 일본을 제치는 등 항일에 대한 정신적 승리를 보였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1938년 조선체육회는 강제해산, 전조선경기대회 또한 제1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지되었다.
항일운동의 일환으로서 시작된 한반도의 체육대회는 일본의 압제에 대한 정신적인 승리로 이끌어내는 일련의 계기점이기도 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광복을 맞이하며 이에 대한 국민들의 감격은 체육인들에게도 이어지고 이 기쁨은 민족스포츠 대회의 부활로 이어졌으며 1945년 12월경 자유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인 제26회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되었으며 이 체육대회는 남북으로 분열되기전에 이뤄진 마지막 전국체전이었다.
한반도의 아픈역사인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는 전국대회 틀이 잡힐 무렵이었으며 이 전쟁으로 인해 제31회 전국체전은 열리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지만, 항일운동의 일환으로서 시작했던 체육인들의 열정과 투지는 1951년 광주에서 개최된 제32회 전국체전을 치룰정도로 대단했으며, 이를 계기로 국제올림픽위원회를 비롯한 각국 스포츠계에 알려지고, 이에 감격한 세계 스포츠인들의 격려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1953년 휴전이후 사회적으로 안정됨에 따라 체육대회의 질 또한 충실해지고 양적으로도 대형화되고 서울에서만 실시되었던 전국체전은 중앙과 지방의 체육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아래 각 지방도시에서 개최되며 스포츠의 전국적인 보급 발전에 이바지하며 현재로 이어지고 올해로 제100회를 맞이하는 전국체전은 서울에서 게최되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개최된 서울이란 점에 대해선 기막힌 우연의 일치이며 첫 시작과 100회를 맞이하는 장소가 동일하다는 점에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바라본다.
대한민국 체육사의 한 획을 긋는 제100회 전국체전은 최초의 개최지인 서울에서 100년의 상징성을 가리고 미래 100년의 출발점이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다는 취지로 유치되었으며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7일간 이뤄지며 잠실 종합운동장 등 69개의 경기장에서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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