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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4 22:4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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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의료봉사와 헌신의 삶-조병국 홀트일산복지타운 원장

평생을 기독교 정신에 따라 가정을 잃어버린 아동과 장애인을 위한 봉사의 삶 매진

의료봉사와 헌신의 삶-조병국 홀트일산복지타운 원장

50년 넘게 입양아 돌봐 온 ‘의사 엄마’ 

제7회 입양의 날을 맞아 지난 달 10일, 입양과 관련해 헌신적으로 힘써 온 유공자들을 선정해 수상했다. 의사와 엄마 역할을 모두 하며 80평생을 많은 소외 아동을 돌봐온 홀트일산복지타운 의사 조병국 원장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조 원장은 6·25전쟁 이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동들을 돕기 위해 1961년 일시보호소에서 아동 진료를 시작해 서울시립아동병원,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에서 근무하며 홀트아동병원 원장을 지냈다. 조 원장은 집없는 아이들과 산 것밖에 없는데 상을 주니 고맙다며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그녀는 “국민들이 입양대상자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고마움과 반가움이 든다.”며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하면서 인간의 일대기를 본다는 소회를 전했다. 조 원장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동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특히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동과 장애인들을 위해 한평생을 바쳐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전쟁과 형제들의 죽음을 겪었던 개인적 아픔
의사로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방치된 아동들을 위해 1961년 일시보호소 진료를 시작으로 시립아동병원을 거쳐 1976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버림받은 아동들이 새로운 가정을 찾아 입양될 수 있도록 돕는 일에도 앞장서온 조 원장은 특히 병마에 신음하며 고통 받는 아동과 장애로 인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장애아동들이 좋은 가정을 찾아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노력해왔다.
자라온 환경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 병약함과 헤어짐의 고통을 누구보다 체득해온 조 원장이기에 입양 아동들을 위한 헌신의 마음 또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
평양이 고향인 그녀에게 두 분의 조부모님들은 기독교가정의 정신을 고스란히 일깨워주셨다. 목회를 하시던 친할어버지와 신사참배 거부로 감옥에서 고초를 당하셨던 외할아버지. 한국기독교의 선각자로 잘 알려져 있는 주기철목사가 시무하던 교회에서 장로를 지내셨던 조 원장의 외할아버지는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해방을 맞아 방학이면 평양을 다녀오곤 했었다. 부모님이 숭의학교 선생님을 하셨다. 외할아버지가 전도여행을 가시면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와 친척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다가 시집도 보냈는데 그러다보니 어려서부터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다.”  조 원장의 유년시절에 가난한 아이들과의 어울림은 자연스러운 일상이기도 했다. “해방되기 직전에 작은 아버지댁에서 해방을 맞았는데 그 무렵  두 번 정도 부모와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조 원장은 이 당시 부모님이 보고 싶어 밀선(密船)을 타려는 마음까지도 들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지낸 조 원장의 경험들은 지금 입양아들이 가지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헤아리게 된다. “6.25때 집이 폭격을 맞았다. 1.4 후퇴 때 피난을 하게 되면서 가족과 또 헤어지고 3.8선을 넘는 경험도 했다.” 부모와 떨어지기도 하고 전쟁의 피해로 엄마를 잃고 팔을 잃은 아이를 보았던 경험들은 조 원장의 마음에 일찍부터 인간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심어주었다.

소아과 의사에서 입양아동들의 따뜻한 의사가 되다 
어릴 때 병약했던 조 원장은 자신의 병치레와 병으로 동생들을 잃었던 경험 탓에 자립하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다고 한다. 의대 입학당시 부모님은 영문과나 약학과를 가길 권유했지만 조 원장은 굽히지 않고 의대를 진학했고 처음부터 소아과를 지원해 버려진 아이들과의 인연도 필연처럼 맺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중 1960년 4월 녹번동 시립일시보호소에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하게 되면서 조 원장은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길을 찾았고 홀트아동복지회와의 인연을 만들었다. 평소 아동에 대한 관심으로 시립일시보호소에서 보호 중이던 미숙아 및 장애아동들을 진료하던 조 원장은 이후 시립아동병원에서 파견 근무할 때에도 가정을 잃어버린 아동과 장애아동들을 돌보는데 온 힘을 쏟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자발적으로 봉사의 마음을 펼쳤다. 그리고 보호 아동들이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를 갔을 시에도 당시의 불편한 교통에도 불구하고 매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동들을 위해 무료봉사를 실천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아동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만을 위해 시작한 일시보호소에서의 봉사활동은 후에  원장으로서 더 많은 봉사를 펼치는데 기반이 되었다.
조 원장은 시립아동병원 소아과 과장을 하다가 74년에 홀트의 정식 과장으로 왔다.
“이곳에 있으면서 생각한 것은 마음이 있으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외국의 입양가정들이 후원가족이 된다.”며 입양 갔던 아동이 어른이 돼서 사무실에서 일을 하거나 입양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일군으로 성장해서 오고 있다고 전했다.
시립아동병원에 재직하는 중에도 가정이 없는 아동과 장애아동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정성껏 진료에 임한 조 원장은 76년부터는 홀트아동복지회 의료부장으로 근무를 하며, 새로운 가족을 찾는 아동들을 위한 연결고리가 되어 양부모에게 의료적 메신저와 같은 역할을 했다. 양부모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의료적 지식과 외국어 의사소통 능력의 부족으로 외국 양부모가 아동의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이후부터 양부모를 위한 아동의 진료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는 아동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한 양부모의 이해를 돕고 장애 아동의 경우 더욱 원활한 조치를 가능하게 하여 아동들이 외국 가정에서 건강하게 머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조 원장의 아동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아름다운 봉사의 정신을 이끌었고, 그 정신은 바다 건너 외국에 있는 양부모를 위한 또 다른 봉사의 실천을 가능하게 했다. 조 원장의 헌신은 1980년 한국아동재단 고송상(아동의료부문) 수상의 영광도 안겨주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봉사, 또 다른 봉사자를 인도하는 힘
81년부터 홀트의원에서 원장으로 근무하며,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더욱 발휘하여 봉사해온 조 원장은 매일 아동을 위해 진료 봉사 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진료로 오른손이 마비되는 증세가 발병하여 부득이 진료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그 기간 이외에는 한시도 아동들을 위한 진료를 중단한 적이 없다. 갈 곳 없이 헤매는 거리의 아동을 살리겠다는 마음은 그들에게 의료적 도움을 제공하는 실천의 기회를 만나면서 조 원장의 봉사정신을 더욱 빛나게 했다. 그녀의 봉사에 대한 열정으로 기획한 “의료문제 아동을 위한 가정 찾기 프로그램(사랑의 프로젝트)”은 외국으로 입양된 아동이 방한하여 뿌리를 찾는 것을 돕는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긴급 수술을 요하는 아동의 의료비 보조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미숙아를 위한 인큐베이터 보조금을 지원받아 많은 아동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일도 했다. 이 외에도 당시로는 국내에서 무상으로 지원받기 어려웠던 자동현상기 및  물리치료 기기 등 장애아동을 위한 의료기기를 외국으로부터 후원 받아 봉사의 기쁨을 타인과 나누는 기회를 마련했으며 “발달 지연 아동 검진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국내외에서 다양한 후원자들과 아동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퇴직 후에도 조 원장의 봉사정신은 그 빛을 잃지 않았다. 만79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일산복지타운에서 장애 생활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정년퇴직과 무관하게 본회 의원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아동을 위한 진료를 다시 시작했다. 지속적인 봉사로 장애인 재활시설(일산복지타운)에서 30여명을 진료하는 조 원장의  모습은 사회의 새로운 봉사의 자극을 낳고 있다.

 차이를 존중하며 부모로서의 책임 다해야
“현재도 장애를 가진 채 입양되지 못한 인원이 270명 가량 머물러 있다.”
 조 원장은 입양가정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며 위탁가정에서 보내졌던 아이들의 경우도 직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며 배운다. 저런 애들과는 놀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생각이 어린 자녀들 사이에서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
조 원장은 우리 사회가 남이 차별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나는 남을 차별하고 있는 모습이 변하지 않고 있다며 장애인들에 대한 거리감을 여전히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배달민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지식적으로 향상되고는 있지만 다른 것에 대한 포용력도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입양아동들이 사춘기 시절에 어떻게 해야하나? 입양이라는 단어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격리감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미성년자의 경우는 친부모와 양부모사이에 오가게 되는 것 때문에 생기는 고민이 많다.”
조 원장은 국내입양문화가 확산되면서 고민할 점들이 많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조 원장은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성격문제로 헤어지는 부모들에 대해 자녀의 입장에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적인 봉사의 삶을 통해 귀감(龜鑑) 안겨
“복지는 성실과 정직의 마음으로 가야한다. 정치적인 쇼맨십으로 해서는 안 된다.
 조 원장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복지현실이 더 확산 되야한다며 일시적이고 형식적인 프로그램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복지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 지혜롭게 해야함을 강조하는 조 원장은 정년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장애인들을 위해 청진기를 놓지 않으며 지속적인 봉사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안기고 있다.
무엇보다 가정을 잃어버린 아동의 몸과 마음을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같은 손길로 어루만져 주며 그들이 새로운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의료적 지원의 길을 모색해온 조 원장의 헌신은 우리사회에 소외받은 아동과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애정을 낳는 희망의 빛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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