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 : 2026-08-25 05:53 (화)
🇰🇷🇺🇸
종합

이명숙 회장 - 한국여성변호사회

가사전문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

이명숙 회장 -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여성변호사회 이명숙 회장

가사전문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

사회적으로 이슈된 아동·여성인권 분야의 변론 맡아 의미 있는

사회적·법적 판결 이끌어내

청소년·아동 보호기관과 여성변호사들 연결 제도개선 활동 계속

4,000여 명 여성변호사 선후배간의 멘토-멘티 결성, 권익과 고충해결 모색

최근 우리 사회는 아동인권과 관련해 충격적인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겪으면서 비로소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담론들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더불어 일련의 사건에 대한 법적인 시선과 해석, 판결도 미미하나마 일보 진전한 면이 생겼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되기 시작한‘아동학대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등이 그 예다. 어떤 사회가 조금씩의 진보를 이룬다면, 그 바탕에는 항상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온 선구자들의 고군분투가 있게 마련이다.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그 반열에 있는 인물이다.

사회적 관심 집중된 아동·여성 사건의 변론자

인화학원(도가니) 사건, 조두순 사건, 울산·칠곡 계모 사건 등 약자 중의 약자인 어린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인권과 신체가 유린당한 곳에는 반드시 이명숙 변호사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에서 대해 우리 사회의 무지한 인식과 편견, 무관심이 있었다면 또 거기엔 반드시 이명숙 변호사가 싸워야 할 일이 있었다.

가사전문법무법인 나우리 대표이자 한국여성변호사회 제8대 회장인 이명숙 변호사는 가정사건 변론을 시작으로 차츰 같은 선상에서 약자의 위치였던 아동·청소년 변호 전담자 같은 역할을 하며 변호사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다해오고 있다.

“제가 처음 변호사로 입문할 때부터 가정사건이나 아동사건을 맡았던 건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여성 변호사가 전국에 10명 정도밖에 없던 시절이라 법정에 서면 신기해서 쳐다볼 정도였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단체나 아동단체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고 그런 것들을 모두 수임하다 보니 어느새 전문변화사가 돼 있네요.”

하지만 이명숙 변호사 자신의 말처럼 어쩌다보니 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임무가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은 것 같다. 그녀는 이화여대 법대 출신으로 재학 당시 사법 고시생들을 위한 장학제도 ‘솟을관 장학생’1기로 뽑혀 기숙사, 등록금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했다. 그리고 졸업 이듬해인 1987년 사법시험에 통과한 후 곧바로 변호사로 개업했다.

“학교에서 제게 그런 혜택을 준 것은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라고 키워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서로 간에 나눠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그들을 도운 것이 아니라 제가 훨씬 많이 여러 사건을 통해 세상의 많을 것들을 배웠어요.”

사무장 없는 변호사 사무실

이명숙 변호사가 지금까지 수임해 온 여성, 아동폭력, 다문화 가정 등과 관련된 사건들은 엄밀하게 변호사로서 돈을 벌 수 있는 대상들은 아니다. 어느 측면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돈을 쓰면서 그들을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도 많을 것이다.

이명숙 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나우리’는 총 7명의 변호사가 이혼이나 여성, 아동과 관련한 가사사건을 주로 맡고 있다. 성격이 다른 사건이 오면 그 분야를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곳과 연결시켜 준다.

나우리에는 변호사 사무실에 으레 있기 마련인 사건 사무장이 없다. 변호사들이 일대일로 직접 상담한다. 그래서 다른 변호사 사무실과 다른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법률적 조언도 하지만 모두 상담가가 되기도 해요. 저희 사무실에 와서는 울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법률상담을 하러 와서 마음의 위안을 많이 받고 간다고, 다른 데서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하고 많이 도움 받고 간다고, 마음을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해요.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들은 그쪽 분야의 전문가들과 연결해 주기도 해요.”

법무법인 나우리에는 이혼소송을 의뢰하는 가정사건도 많다. 가능하면 상대방의 감정을 너무 많이 안 건드리고 좋게 종결할 수 있도록, 상대방을 너무 비난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원만히 합의할 수 있도록 조정안을 많이 유도한다.

언론에 의한 2차 피해 더 큰 상처

이명숙 변호사는 울산아동학대사건후 법무부의 용역을 받아 언론에 의한 2차 피해 상황을 (사)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분석한 적이 있다.

아동 성폭력 사건은 사건 자체에 의한 육체적, 정신적 파괴도 어마어마하지만, 뒤이어 언론에 과다경쟁에 의해 일어나는 2차 피해가 어린 아이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남는다고 이명숙 변호사는 경고한다.

“Y사건의 경우 판결 선고 일주일 직전에 C일보에 기사화가 돼서 언론끼리 과열경쟁을 벌였어요. 심지어 피해자의 언니인 등교하는 초등학생을 화장실로 데려가 강제로 취재를 시도했던 일도 있었어요. 그 일로 놀라서 학교에서 고모에게로 피신한 아이를 피신한 장소까지 따라가서 또 다시 취재시도를 한 다른 언론사도 있었어요. 이런 식의 과도한 취재경쟁으로 아이는 전학을 가게 되었고, 고모도 아이도 오랜기간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오고 있습니다. 집으로, 직장으로, 학교로, 심지어 실신해서 입원해있는 병원까지 찾아가는 지나친 취재경쟁이나,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피해자들의 신상털기가 시작되는 현상은 자제되어야만 해요.”

아무리 이들의 본말이 전도된 관심을 피해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가도 피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세월호참사 때 세월호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극적으로 살아난 단원고 학생들의 트라우마 치료과정에서 세월호와 관련해서 가장 끔찍했던 일을 그림으로 그리게 한 일이 있는데, 한 학생이 그린 기자들의 카메라 수십개가 도화지 가득 채워 넣어진 그림은, 기자들의 카메라와 취재경쟁이 생사를 가르는 공포의 순간보다 더 큰 트라우마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당시 기자들을 향해 불명예스럽게 붙여졌던 ‘기레기’라는 말이 공연히 붙여진 건 아닌 것 같다.

이명숙 변호사는 아동사건을 맡으면서 우리사회에 이를 예방하고 재빠르게 대처하게 치유하는 시스템과 인프라가 너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여성변호사회 회장이 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다.

작년에 서울 소재 31군데의 경찰서와 협약을 맺고 아동청소년 문제 상담을 위해 여성변호사 한 명씩을 배치했고, 52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자문변호사 3~4명씩을 연결시켰다. 올해는 전국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또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폭력 대책 매뉴얼을 책자로 만들어 여성과 아동관련 기관에 배부했다. 이런 노력들은 차츰 법적인 관심도 끌면서 판례와 형량에 대한 엄중성도 높아지고 있다.

지속적인 관심이 치유의 첫 번째

각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끼리 ‘나우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협동 대처도 하고 있다. 연세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인 신의진 의원,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이영주 부천지청 차장검사, 황은영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검사,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조인섭 변호사, 김영희 이대 교수, 정대련 동덕여대 교수, 이호균 아동권리모니터링센터 센터장, 이정희 전 서울시 아동복지팀장 등이 주요 멤버들이다. 이들은 여성과 아동 성폭력 분야에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서로 논의하고 각계에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한다.

작년 10월말에는 20년을 함께 아동학대의 현장에서 법률가로, 현장 실무가로, 정신과의사로 활동해 온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신의진 의원과 함께 아동학대 관련 책 ‘우리 모두 아이였습니다’도 발간했다. 이들 세 사람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했던 아동학대사건들 중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도가니사건, 지군사건, 나영이사건, 칠곡 울산 계모사건, 세월호사건 등을 통해서 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고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다하지 못했던 말들이 수록돼 있다. 출판회에서는 책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이나 그 부모, 관계자들이 같이 자리를 하거나 전화연결, 카톡으로 자신들의 사건 후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사건이 법적으로는 종결되더라도 사회에서 피해자들을 지켜봐 주어야 그들의 마음이 망가지지 않고 버텨 나갈 수 있어요. 피해자들에게 누군가 사람들이 자신들을 마음으로라도 돌보아주고 있다는 버팀목이 됩니다. 나영이는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의대에 가서 정신과의사가 되고 싶대요. 저희 사무실에도 자주 왔고, 함께 식사도 하곤 했죠. 도가니 사건 때, 행정실장의 여학생 성폭행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행정실장에게 사이다병으로 맞아 온몸에 유리파편이 박힌 남학생이 있었어요. 잘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고 말도 어눌한 장애가 있는 남학생이었는데, 그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폭행을 당한 후 자살 시도도 했고, 졸업 후 모든 사람들과 단절하고 고립된 채 상태로 살고 있었어요. 도가니 사건으로 다시 재판을 할 때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증언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내었지만 저와 카톡으로 네이트온으로 새벽 4시가 넘어서까지 밤새워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열리게 되어 증언을 하고 협조를 하게 된 것이 기억납니다. 처음에는 ‘이명숙 변호사님’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누님’이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누나’라고 해요. 동생이 하나 더 생긴거죠. 수시로 안부도 묻고 터치장갑이며 이런저런 선물도 주고받고 하지요.”

매스컴에서 대형 아동·여성 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밀물 같은 관심을 보이다 이내 무심해지는 우리 각자의 행동을 돌아다보게 하는 말이다.

이명숙 변호사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연수원, 정부기관, 단체 등을 가리지 않고 강의도 하고 방송도 하고 토론회나 각종 회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곤 한다. 일을 하다 보니 사건 한 건 씩만 해결해서는 우리나라 아동·여성폭력 사건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사회와 법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나서다. 공무원, 외교관, 국회의원,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은 그녀의 말을 듣는다. 당장 힘든 사람들은 소송을 해주고, 힘든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법 인식과 체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강의를 다니고, 다양한 방면으로 인식변화와 법제도 개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후배 여성 변호사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주고파

이명숙 변호사의 초임시절 10여 명이었던 여성 변호사는 현재 4,000여 명에 달하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늘어난 숫자만큼 일할 수 있는 환경도 같이 성장한 것은 아닌 듯 싶다.

“선배들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지위를 누린 이점이 있지만 요즘 후배들이 일하고 있는 환경은 힘들어졌어요. 출산, 육아문제 등이나 차별적 대우는 여성변호사 사회에서도 겪고 있습니다. 사건 수임도 줄어드는데다 힘들어도 하소연할 때가 마땅치 않아요. 그래서 선후배 변호사끼리 서로 멘토-멘티를 형성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인 이태영 변호사가 1953년에 탄생한 이래 몇 안되는 여성변호사들간의 친목모임으로 이루어져왔던 (사)한국여성변호사회는 그동안 친목모임의 성격이 강했지만 2012년에 사단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이제부터는 결집력을 더 갖추고 본연의 임무와 관련한 적극적 사회활동과 단체의 권익도 보호해가는 체계로 갈 작정이다.

그래서 이명숙 변호사는 많은 사건들에 10년차 이상의 선배들과 함께 5년차 이하의 젊은 변호사들을 꼭 참여시켜 함께 일을 하도록 팀을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천송도어린이사건지원팀이나 그 자신이 공동위원장으로 있는 변호사협회 세월호참사특별위원회에서 하는 한부모 과거 양육비 청구소송팀에도 로스쿨을 졸업한 젊은 여성변호사들을 대거 투입시켰다.

"선배와 후배가 절반씩 팀을 이루어 일하도록 편성했어요. 후배들은 선배들이 사건을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보고 배울 수 있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열정과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친목도 도모할 수 있는 등 많은 시너지 효과가 있어요. 특히 갓 개업한 후배들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 많은데, 언제든지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까운 선배들 옆에 있고 자신들의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젊은 여성변호사들과 시민단체, 아동보호전문기관, NGO, 방송 등과 연결해 주면서 활동 반경을 넓혀주고 동시에 후배들을 위해 사건이 연결될 수 있는 일자리도 창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 공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목표다. 대한변협에서는 부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명숙변호사는 대한변협 산하의 여성특별위원회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함께 입법포럼을 구성해 아동·여성·가정사건 등에 대한 개정 안건 등을 내는 입법 활동을 강화할 예정이다.

“서로의 활동을 격려하면서 각자가 그 자리에서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나, 가족, 우리 모두라는 연대감과 신념을 가지고 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가져요.”

이때껏 바쁜 변호사로 살아오느라 아이들을 많이 돌봐주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하다는 이명숙 변호사는, 그래도 엄마가 사회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옆에서 보여주는 것이 긴 안목에서는 삶에 도움이 되리라는 자부심만은 가지고 있다.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한테 잔소리를 절대 하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맙다’‘너무 이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많이 웃고 많이 안아주려고 해요. 집에서조차 갈등을 만드는 것이 싫거든요. TV를 보다가도 배우들의 눈빛이 달라지거나 소리가 높아지면 채널을 돌려요. 조금 더 양보하고 마음을 비우면 좀 더 행복해 질 수 있는데,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사람들을 만나 해결해주며 사는 일이 직업이라서 그런지, 집이나 주변에서는 갈등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요.”

우리 사회가 산적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을 이유를 이명숙 변호사에게도 너무도 선명히 확인한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