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특수를 만끽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1위와 파운드리(위탁생산) 1위의 밀월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미국 엔비디아와 함께 AI반도체 트리오를 형성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이하 하이닉스)와 TSMC가 협업을 넘어 아예 포괄적 기술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삼성전자를 넘어 HBM시장 1위에 오른 하이닉스와 세계 파운드리 시장 60%를 장악하고 있는 부동의 1위 기업 대만 TSMC가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 것이다.
◆HBM4 제조 및 첨단 패키징 기술 역량 강화 목적
양사는 이미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AI반도체 가속기(GPU) 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의 없어서는 안되는 파트너이자 협력업체이기에 그렇다. 엔비디아는 현재 자사의 GPU용 HBM을 하이닉스에서 공급받아 TSMC에 패키징(파운드리)을 맡긴다.
이번 MOU 체결은 이같은 업무상 파트너를 넘어 AI반도체 개발 및 생산 전 과정에 끈끈한 협력관계를 구축, 양사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 AI반도체 시장의 독주 체제를 더욱 굳히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하이닉스와 TSMC는 이번 MOU를 계기로 2026년경 HBM시장의 대세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6세대 HBM4의 생산과 첨단 패키징 기술 역량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하이닉스는 TSMC와 힘을 합쳐 2026년 양산 목표로 업계 최고 성능의 HBM4를 개발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이닉스는 이와관련 "AI메모리 글로벌 리더로서 파운드리 1위 TSMC와 힘을 합쳐 또 한 번 HBM 기술혁신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고객(엔비디아)-파운드리(TSMC)-메모리(하이닉스)로 이어지는 3자간 기술 협업을 바탕으로 메모리 성능의 한계를 극복하고 AI반도체 부문의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하겠다는 것이다.
양사는 우선 HBM 패키지 내 최하단에 탑재되는 베이스 다이(base die) 성능 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HBM은 베이스 다이 위에 D램 단품 칩인 코어 다이(core die)를 켜켜이 쌓아 올린 뒤 이를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로 수직 연결, 연산처리를 극대화한 메모리다.
베이스 다이는 GPU와 연결돼 HBM을 통제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연산, 추론해야하는 AI가속기 성능과 직결된다는 얘기다.
하이닉스는 5세대 HBM인 HBM3E까지는 자체 D램 공정으로 베이스 다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HBM4는 HBM3E에 비해 2배 이상의 성능을 요구하는만큼 TSMC가 보유한 로직 초미세 선단공정을 활용, 다양한 시스템 기능을 추가하는게 절실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이닉스에 따르면 HBM4는 베이스 다이가 기존 HBM처럼 단순히 D램 칩과 GPU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에서 요구하는 여러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HBM4부터는 베이스 다이가 일반 D램 공정으로는 제작이 쉽지않다.
하이닉스는 또 TSMC의 첨단 반도체생산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해 성능, 전력 효율 등에 대한 고객들의 폭넓은 요구에 부합하는 '맞춤형 HBM'을 생산, 시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양사는 특히 TSMC의 첨단 패키징 공정 '칩온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와 HBM 기술 결합을 최적화, 고객 요청에 공동 대응할 계획이다.
하이닉스 AI인프라 담당 김주선 사장은 "TSMC와 함께 최고 성능의 HBM4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고객들과의 개방형 협업에도 속도를 낼 것"이라며 말했다.
케빈 장 TSMC 수석부사장은 "그간 견고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최선단 로직 칩과 HBM을 결합한 세계 최고 AI 솔루션을 시장에 공급해 왔다"며 "HBM4에서도 긴밀하게 협력해 고객의 AI 기반 혁신에 열쇠가 될 최고의 통합 제품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사의 공통 라이벌 삼성전자의 추격 의지 봉쇄 노림수
그러나 하이닉스와 TSMC의 이번 MOU는 삼성전자가 최근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및 파운드리 공정 기술력을 내세워 대 반격에 나선 것과 무관치 않다는게 중론이다.
삼성은 HBM 시장에선 하이닉스와, 파운드리 시장에선 TSMC의 둘도 없는 라이벌이다. 하이닉스로선 선제적 기술개발과 투자로 초기 HBM 시장을 장악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삼성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다.
삼성이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메모리 최강기업으로 강력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HBM이 AI가속기에 특화된 반도체지만, 결국 뿌리는 메모리다. 삼성의 기술력으로 1년안에 하이닉스를 따라잡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하이닉스의 독주에 자극받은 삼성이 최근 HBM개발 전담조직까지 만들며 하이닉스에 대한 맹추격전에 나섰다.
지난 2월엔 세계 최초로 36GB급 12단 HBM3E를 개발, 하이닉스를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내년 안으로 16단 HBM4를 업계 최초로 개발한다는 목표까지 내세우며 하이닉스를 압박하고 있다.
HBM 최대 바이어인 엔비디아 젠슨황 CEO가 공개적으로 삼성의 5세대 HBM을 테스트중이며,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닉스로선 어렵게잡은 HBM시장 이니셔티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강력한 패키징 기술을 보유한 TSMC와의 협력관계를 보다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상황은 TSMC도 크게 다르지 않다. TSMC는 파운드리 시장 부동의 1위를 질주하고 있지만, 2030년 파운드리 시장 제패를 내걸고 야금야금 쫓아오고 있는 삼성은 눈엣가시다.
삼성은 TSMC에 반년 이상 앞서 3나노 공정기술 양산에 들어가는 등 만만찮은 기술력으로 TSMC를 맹추격 중이다.
TSMC가 삼성의 추격에 대한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TSMC에겐 없는 메모리 때문이다. AI반도체 특성상 GPU와 HBM, DDR 등 고성능 메모리는 하나의 패키지로 간주된다.
그만큼 각 반도체들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돼야 AI성능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등 고객사 입장에선 모든 제품을 한 곳에서 다 커버한다면 대단히 효율적인 상황이다.
설계, 메모리, 패키징, 파운드리 등 AI반도체와 관련된 토털솔루션을 제공하는 세계 유일한 업체가 삼성전자다. 하이닉스의 TSMC의 최대 고객인 엔비디아가 삼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향후 파운드리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 AI시장 지배력을 조금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TSMC로선 자사의 약점을 보완할 가장 유력한 대안이 하이닉스란 얘기다.
결국 하이닉스와 TSMC의 이번 전략적 제휴는 엔비디아라는 강력한 공동 수요처를 매개체로 반도체 공룡 삼성전자의 추격을 봉쇄한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분석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 하이닉스-TSMC 연합군 대 삼성전자간의 경쟁구도가 보다 확실히짐에 따라 오는 2026년경으로 예상되는 6세대 HBM전쟁을 앞두고 양 진영의 숨막히는 경쟁이 갈수록 달아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