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긴축시대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고강도 긴축을 3년여에 걸쳐 지속했던 통화당국이 11일 마침내 기준금리를 내렸다.
0.25% 인하의 '베이비컷'이지만, 그 의미는 크다. 통화당국의 정책기조가 '긴축'에서 '완화'로 방향을 트는 이른바 '피벗을 단행한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3년반만에 1%대에 진입한데 이어 고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소비가 살아날 지 주목된다.
◆1%대 물가에 내수 회복위한 '특단의 조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바꿨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돈줄을 죄는 긴축을 중단하고,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긴축완화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오로지 내수 진작만 보고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1일 오전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현재 3.50%인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p) 낮췄다.
2021년 8월 0.25%p 인상 이후 길게 이어져온 통화긴축 기조를 마무리하고 긴축완화 시작을 알리는 3년2개월 만의 피벗이었다. 한은이 금리를 내린 것은 코로나팬데믹이 피크였던 2020년 5월 이후 4년 5개월만의 일이다.
한은의 이날 금리인하 결정은 어느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물가안정의 기준인 2% 금리가 한은의 예상보다 크게 앞당겨진데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긴축완화의 필요성이 날로 고조된 탓이다.
위축된 경기는 경제 성장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수출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만 살아난다면, 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통화당국으로서도 높은 금리와 물가에 짓눌려있는 민간 소비와 투자를 되살리기 위해 통화량을 늘려 내수에 숨통을 틔워주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의 미국의 빅컷(금리0.5%인하)이 금통위의 결단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읽힌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연방준비제도)이 지난달 먼저 빅컷을 통한 피벗을 단행함으로써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를 종전 2.0%p에서 1.5%p로 크게 줄여줬다.
한은으로선 금리인하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국인 자금 유출 걱정을 크게 덜었다. 비록 금통위의 이날 베이비컷 결정으로 한미간 금리 격차가 다시 1.75%p로 벌어졌으나 불과 두달전에 2.0%였던 것을 감안하면 별다른 영향을 줄 여지가 없어 보인다.
◆0.25% 인하만으로 당장 소비 살리기엔 '역부족'
1%대물가에 금리인하가 맞물리며 당장 소비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그간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데, 큰 걸림돌이었던 '고물가'와 '고금리' 시대가 저물고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경제 성장의 최대 악재인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총력태세에 들어갔다. 내달 9일부터 한달간 이어지는 '코리아세일페스타'를 내수 회복의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로 삼겠다는 전략을 발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물가안정과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 움추려든 소비가 당장 살아날 가능성은 낮다는게 중론이다. 우선 물가가 1%대 진입했다고는 하나, 중산층 이하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아직 한겨울이다.
농식품을 필두로 공산품 등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중이다. 전체 평균물가와 괴리감이 상당하다. 체감물가가 2% 이하로 낮아지지 않는한 굳게닫힌 지갑을 열기 어려운 상황이란 얘기다.
서울 화곡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한번 오른 공산품가격은 그대로이고, 채소류는 돌아가며 금값"이라며 "정부발표 물가가 1%대로 떨어졌다는데, 매출도 시원찮고 도대체 실감이 안난다"고 토로했다.
금리인하가 됐다고해서 0.25%로는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베이비컷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는 여전히 3.25%로 3년전에 비해 크게 높은 상황이다. 피벗이란 상징적 의미만 있을뿐, 소비자를 되살릴만한 임팩트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한은은 추가 금리인하에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이창용 한은총재는 11일 금통위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상당수 금통위원들이 향후 3개월간 현 금리를 유지해야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통제불능 가계부채 추이 주목...추가 인하 늦어질듯
이총재도 금리인하애 따른 시장의 변화를 지켜보고 추가금리 인하여부를 판단하겠다고했다. 적어도 올해 마지막남은 내달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내년 첫 금통위는 1월에 열린다.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금리인하로 인해 가뜩이나 불안한 수도권 집값과 가계대출이 다시 들썩일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소비와 달리 부동산시장은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하다. 실질적인 인하율이 작더라도 긴축완화의 시그널만으로 집값 상승과 가계대출 급증을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위험수위를 넘어선 가계부채는 현재 통제불능 상태다. 1주택자 주택담보대출까지 막은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 조치와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의 규제 강화에도 불구, 9월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5조 5조6029억원 증가했다
9조6259억원) 늘어난 8월 보다 증가 폭이 약 4조원 정도 줄었지만, 안심할 일이 아니다. 9월엔 추석연휴가 끼어있는 관계로 워킹데이가 짧았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집값상승세로 폭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넷째 주(23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12% 올랐다.
결국 향후 집값과 가계부채 추이가 추가금리인하 시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금리인하로 자칫 부동산시장에 대대적인 긴축완화의 시그널로 작용해 다시 집값이 상승폭을 키운다면, 추가 금리인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만 놓고보면 추가 금리인하의 필요성이 높아 보이지만, 집값 급등과 가계대출 문제를 고려하면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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