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22일 기준금리 3.50%를 또다시 유지했다. 이번까지 13차례 연속 동결이다. 한국은행 설립 이후 횟수, 기간모두 역대 최장 기록이다.
시장의 예상 그대로다. 서울아파트 거래량과 시세가 급등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처가 다시 고개를 든 상황에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명분을 찾기 어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2%포인트(p)까지 벌어져있는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다소 안정을 찾은 원달러 환율과 외국인 자금 유출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아직은 금리인하 시점이 아니라는게 한은의 판단이다.
◆가계부채 급증에 1년7개월째 동결...시장예상 부합
한은 금융통가 이날 하반기 두 번째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어 현재의 기준금리(연 3.50%)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월13일 이후 약 1년7개월째 동결이다.
앞서 금통위는 2020년 3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심화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p 낮추는 이른바 '빅컷'(1.25→0.75%)을 단행했고 같은 해 5월 추가 인하했다.
이후 아홉 번의 동결을 거쳐 2021년 8월 0.25%p 올리면서 통화정책의 키를 긴축 쪽으로 틀었다. 이어어 같은 해 11월, 2022년 1·4·5·7·8·10·11월과 2023년 1월까지 0.25%p씩 여덟 차례, 0.50%p 두 차례 등 모두 3.00%p 높아졌다.
금리 인상 흐름은 지난해 2월 동결로 깨졌고, 이후 13차례 연속 동결을 단행하며 현 금리가 19개월째 유지되고 있다. 다음 금통위 시점(10월 11일)까지 고려하면 3.50% 금리는 최소 21개월간은 유지될 전망이다.
이번 금리동결은 전반적인 주택 및 금융 시장 분위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됐던 결과다. 현 정부의 치적중 하나였던 집값 안정이 올들어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데다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가 고개를 쳐들고 있기 때문이다.
금통위도 의결문에서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고 외환시장의 경계감이 남아있다"는 말로 동결 배경을 함축적으로 설명했다. 한은은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대책과 서울아파트가격과 가계부채의 흐름, 외환시장 등의 추이를 좀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한은이 금리 인하에 대한 정부·여당의 압박과 시장 기대에도 불구, 통화정책방향의 전환 즉 '피벗'을 뒤로 미뤄야할만큼 최근 집값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서울주택(아파트·연립·단독주택) 매매가격지수는 6월보다 0.76% 올랐다. 문재인 정부시절 집값 폭등시점인 2019년 12월(0.86%) 이후 4년7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집값과 가계부채는 궤를 같이한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도 밀려 7월 이후 은행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올렸지만, 가계대출은 더 고개를 쳐들고 있다.
KB·신한·하나·우리·NH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4일 기준 719조9178억원에 달한다. 이달 들어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4조1795억원 순증했다.
맹목적 집값 상승 기대감에 '영끌'과 '빚투'가 급증하며 금리와 집값의 상성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 금통위원들이 유동성을 과도하게 공급하거나 피벗 시점에 대해 잘못된 시그널을 줘서 불붙은 집값에 기름을 붓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는 강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물가와 성장률 동시 하향조정...10월 피벗 가능성
문제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내수경기다. 물가가 어느정도 안정세로 접어든 상황에 오랜기간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소비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없다. 한은은 이날 물가둔화 흐름을 재확인했다.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2.6%에서 2.5%로 0.1%포인트(p) 하향조정했다. 목표치(2.0%)에 더 다가설 것이란 전망이다.
사상 최악의 이상고온으로 인해 농축수산물 가격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위기로 국제유가가 언제든 치솟을 수 있는 분위기지만 한은은 물가안정세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한은은 실제 농산물 등 일부 품목의 물가불안이 잔존하고 있지만, 최근 몇달간 근원물가가 안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은은 소비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수출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소비 역시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한은은 이날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4%로 0.1%p 낮췄다.
수출 강세가 이어지고 내수가 점진적으로 살아날 것이라면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은 분명 모순이다. 한은 스스로도 소비 회복에 대해 확신이 없이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와 성장률을 고려하면 금리인하는 불가피하다. 또 긴축완화는 이제 세계적인 흐름이다. 다만 주요국과 다른 점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부동산 시장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기형적 집값 폭등과 가계부채 증가세에 직면해있다. 통화량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통화당국 입장에선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경기를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마치 풍선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를 이대로 뒀다는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회복불능의 금융대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부동산과 금융시장 안정이 한은 피벗 결정에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얘기다.
여기에 현재 역대 최대로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차(2.0%p)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9월 피벗 가능성이 무르익고 있는 미국의 상황은 강력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미 연준(Fed)이 만약 다음달에 금리를 낮춘고, 국내 집값과 가계부채가 안정세로 돌아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은의 올해 남아있는 두차례(10월, 11월) 금통위에서 피벗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9월에 금리를 인하하면 한은이 10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낮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집값 연착륙과 가계부채 관리란 풀기 어려운 숙제가 남아있지만, 물가가 안정세를 유지하고 미국이 피벗에 나선다면 한은도 결국 결단을 내릴 것"이라며 "다음달 연준의 금리인하 폭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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