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요금을 작년 11월이후 거의 1년만에 평균 10% 가까이 인상한다. 전기요금이 원가 이하 수준으로 공급돼 한국전력공사의 누적 적자가 눈덩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상된 전기요금은 기업들이 사용하는 산업용에 한해서만 적용된다. 주택용 등 일반용은 동결했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데다, 소비 진작을 위해 가계엔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한전 측은 여전히 '원가 이하'라고 주장하지만, 적지않은 수익보전으로 인해 영업흑자가 기대돼 안도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은 울상이다. 특히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반도체, 철강, 화학 등의 업체들은 비용 상승과 수출경쟁력 악화를 우려한다.
◆대기업 10.2%, 중소기업은 5.2% 인상률 차등적용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9.7% 인상, 24일부터 적용키로 했다. 산업용은 전체 전기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다만 국민경제 부담, 생활물가 안정 등 요인을 고려해 주택용과 음식점 등 상업 시설에서 쓰는 일반용 전기요금은 종전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최남호 산업부 2차관과 김동철 한전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브리핑을 갖고 이같은 내용의 전기요금 인상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인상안에 따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평균 9.7% 인상된다. 같은 산업용이라도 절대 사용량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대용량 고객 대상인 산업용 전기요금은 1kWh(킬로와트시)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로 인상률이 가장 높다.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 전기요금은 164.8원에서 173.3원으로 5.2% 인상된다. 상대적으로 부담 여력이 많은 대기업들에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자본력이 달리는 중소기업에 우대요금을 매긴 것이다.
정부가 산업용에 국한된 차별화한 전기요금 인상안을 꺼내든 것은 일반 국민과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주지 않되, 산업용만 인상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은 서민경제 부담과 물가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 작년 5월에 인상한 이후 약 1년6개월째 요지부동이다.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누적된 상황에서 주택 및 일반용 전기요금을 동결하다 보니 산업용 전기요금은 인상폭은 예상 외로 컸다. 정부는 작년 11월 주택용과 일반용 등을 제외하고 산업용만 평균 4.9% 인상한 바 있는데, 이번엔 그 당시보다 인상폭이 2배 높다.
정부와 한전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크게 올림으로써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산업용 전기 고객은 약 44만호로, 전체 한전 고객 약 2500만여호의 1.7% 수준이지만 전력 사용량은 53.2%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전체적으로 5% 인상한 것 만큼의 효과를 본 셈이다.
◆대기업 수출경쟁력 악화 우려...경제단체 우려 표명
정부의 이번 전기요금 추가 인상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나라 전력 인프라 건설과 관리를 도맡고 있는 전력공기업 한전의 심각한 재무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차원이다.
한전은 러·우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위기를 전후로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전기를 팔아 연결 기준 43조원대의 누적 적자를 봤다. 2021년부터 올 상반기로 범위를 넓혀도 누적적자는 41조원에 달한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한전의 부채는 위험수위를 넘은 상태다. 지난 6월 말 기준 한전의 연결 총부채는 무려 202조9900억원에 달한다. 한전이 지난해부터 자구책으로 불용 자산을 정리하는 등 재무건전성 확보에 나섰으나 오히려 부채는 작년말(202조4500억원)보다 4400억원가량 늘었다. 200조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로 인해 한전은 작년 한해만 4조4500억원을 이자로 지급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22년 이후 이번을 포함해 총 7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평균 50% 가까이 인상했다. 한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간에서는 점차 벗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한전이 40조원대에 달하는 누적 적자 해소까지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위기에 빠진 한전에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이번 전기인상으로 연간 약 4조7천억원의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전과 달리 전기 대량 수요자인 대기업들은 불만이다. 대기업들만 전기요금이 두자릿수의 인상돼 마치 한전의 부담을 대기업들에게 전가한 꼴이기 때문이다.
특히 10%가 넘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비용 부담도 만만치않다. 업계에선 이번 인상으로 추가 부담액이 1조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를 필두로 제철, 조선, 금속, 화학 등 업종 특성상 전기사용량이 많은 기업들은 원가 상승에 따른 수출 채산성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한전 살리려다 국가경제에 일익을 담당하는 수출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경제단체들이 23일 정부가 발표한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 인상안에 대해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대한상의는 이날 논평을 내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 등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돼 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도 "국내 산업계는 고물가·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에 놓였다"며 "전기요금 차등 인상으로 경영 활동 위축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각정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전기요금 차등 인상이 한전의 부채 부담 완화와 서민 경제의 어려움 등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수출확대로 경제를 살리는데 공헌하고 있는 산업계만 지나치게 차별대우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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