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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이슈&]'재계 맏형' 조석래 회장 별세...효성그룹, 두개 지주사 재편 급물살

조 명예회장 29일 숙환으로 타계...효성 특유의 '기술경영' 일군 재계 큰별 스판덱스·타이어코드 부동의 세계1위 달성...재계 이끌며 경제외교 앞장 '포스트 조석래' 효성, 장남 조현준과 삼남 조현상 계열 분리 본격화할듯

35년간 효성그룹을 이끌며 남다른 '기술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효성을 글로벌기업으로 올려놓은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타계했다. 사진=효성
35년간 효성그룹을 이끌며 남다른 '기술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효성을 글로벌기업으로 올려놓은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타계했다. 사진=효성

재계 또하나의 큰 별이 졌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다.

조 명예회장은 '기술 경영'의 상징인 인물이다. 1966년 부친의 뜻에 따라 효성물산에 입사한 이후 지난 2017년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효성그룹의 굴지의 기술중심 그룹으로 우뚝 세운 주인공이다.
48세 때인 1982년부터 효성그룹 2대 회장직에 오르기 이전부터 조 명예회장은 '기술만이 살길'이란 신념 아래 유난히 기술에 집착했다. 경제 대국 미국, 일본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기술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조 명예회장은 평생에 '경제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개발력에 있다'는 경영철학을 토대로 기술 중시 경영을 펼쳤다.
◆‘기술 경영’으로 세계제패...재계 굳은일도 도맡아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게 이를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효성은 석유화학, 신소재, 합섬, 중전기 등 다방면에서 세계적인 선도기술 개발에 성공하며 '효성=기술그룹'이란 이미지를 대외에 각인시켰다.
'섬유계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스판덱스와 타이어의 핵심소재인 타이어코드가 대표적인 부산물이다. 1990년초반 당시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의 전유율물이었던 스판덱스를 국산화한 것은 오로시 조 명예회장의 의지와 지원 덕분이다.
조 명예회장이 원천 기술도 노하우도 없던 상태에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독자 개발을 결정하고 연구개발을 직접 지시하며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 품목의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2004년 5월 조석래 명예회장(가운데)이 이건희 삼성회장(왼쪽), 최태원 SK 회장, 조양호 한진회장,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과 청와대를 방문했다. 사진=효성
2004년 5월 조석래 명예회장(가운데)이 이건희 삼성회장(왼쪽), 최태원 SK 회장, 조양호 한진회장,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과 청와대를 방문했다. 사진=효성

효성이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는 물론 에어백 원단, 폴리케톤(공업용 플라스틱) 등 세계 1위 제품을 4개나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조 명예회장의 ‘기술 경영’을 위한 뚝심 덕분이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경영 감각도 남달랐다. 1990년대부터 한-중 수교이후 중국의 성장세를 간파, 경쟁사에 앞서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효성은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과 인도, 터키, 브라질 등에 진출하며 발빠르게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는 결국 스판덱스를 비롯한 효성을 대표하는 제품이 세계를 제패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위기관리 능력도 탁월했다. 1998년 모기업 효성물산의 부도설이 불거지며 계열사들이 연쇄 부도 위기에 내몰리자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정면 돌파했다. 효성물산,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T&C를 (주)효성으로 전격 통합, 군살빼기를 통해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재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맡아왔다. 굴지의 대그룹 총수와 달리 재계의 '총대'를 매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조 명예회장은 31·32대(2007~2010) 전경련(현 한경협) 회장을 맡아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솔선수범했다.
◆경제단체장 맡아 경제외교 솔선수범...재계, 일제히 애도
조 명예회장에겐 ‘재계의 맏형’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한창 때 조 명예회장이 지갑에 넣고 다닌 명함이 20개에 달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대외 활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경제외교에도 앞장을 섰다. 그는 한미재계협회장, 한일경제인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국제 경제외교에 헌신하며,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였다. 한미 FTA 필요성을 가장 먼저 제기한 것도 조 명예회장이다. 그는 민간 차원의 FTA체결에 큰 힘을 보탰다.
2007년 3월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조 명예회장 모습. 사진=효성
2007년 3월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조 명예회장 모습. 사진=효성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온 '일본통'으로서 한일 관계 개선과 경제외교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조 명예회장은 경기고 1학년만 다니고 일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화학공학)을 나왔다.

조 명예회장은 대일 무역 역조 해소, 한-일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 한일 경제공동체 추진 등 대일 경제협력에 큰 족적을 남겼다. 덕분에 조 명예회장은 2009년 일본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욱일대수장'을 받았다.

재계는 일제히 조 명예회장의 타계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한경협은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재계의 큰 어른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허전함을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고 했다.
대한상의는 "기술 중시 경영의 선구자로서 섬유, 화학, 중공업 등 우리나라 기간산업 발전에 초석을 놓은 분"이라며 민간외교에 앞장서며 한국 경제의 지평을 넓히는데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조 명예회장의 별세로 효성그룹은 그간 진행해온 2개의 지주사 체제로 재편, 계열분리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효성은 이미 장남 조현준 회장과 3남 조현상 부회장이 2개의 지주사로 계열사를 쪼개어 각각 독립적인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운영체계는 만들어놨다.
◆조현준현상 형제 주축 그룹 계열분리 가속도 붙을듯
2018년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전환을 마무리한 효성그룹은 섬유·무역 부문인 효성티앤씨, 중공업과 건설을 담당하는 효성중공업, 첨단소재를 생산하는 효성첨단소재, 화학 부문인 효성화학 등 4개 사업회사로 분할했다.
조현준 회장이 그룹의 적통후계자로서 섬유 등 전통사업 영역을 맡고, 조현상 부회장은 산업용 소재 부문을 맡는 그림이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사진=한국무역협회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사진=한국무역협회

효성은 지난 2월23일 이사회에서 또 한번의 인적 분할을 통한 신규 지주회사 가칭 ㈜효성신설지주를 설립하는 분할계획을 결의했다. 새 지주사의 계열사는 효성첨단소재,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HIS) 등 6곳이다.

오는 6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회사 분할이 최종 승인되면 7월1일자로 효성그룹 지배 체제는 존속회사인 효성과 신설 법인인 효성신설지주로 완전 계열분리된다. 현재 효성의 지분율은 조현준 회장(21.94%)과 조현상 부회장(21.42%)이 거의 같다.
재계에선 2014년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의 도발로 발발한 '형제의 난' 이후 조 명예회장이 미래에 불거질 수 있는 경영권 분쟁의 싹을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평가다.
변수는 조 명예회장의 상속지분이 어떻게 분배되느냐다. 조 명예회장은 ㈜효성의 지분 10.14%를 남겼다. 효성티앤씨(9.07%), 효성화학(7.48%), 효성중공업(10.55%), 효성첨단소재(10.32%) 등 주요 계열사 지분도 적지않다.
차남 조현문 부사장에게 배분될 지분이 적지않다는 뜻이다. 향후 경우에 따라 조 전 부사장의 지분이 캐스팅포보트로 작용, 새로운 분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조 전부사장은 형제의 난을 거치며 형인 조현문 회장과의 앙금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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