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마침내 1만원벽을 뚫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새벽 2시를 넘기며 마라톤 회의 끝에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70원(1.7%) 오른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37년만에 법적 최저시급이 1만원시대가 열린 것이다. 2015년 심의 당시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최초 요구안이 제시된 후 꼭 9년 만이다.
월급(209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209만6270원이다. 올해보다 3만5530원이 늘어난다. 인상률은 2021년 1.5%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올해 인상률(2.5%)보다 0.8%포인트(p) 낮다. 문재인 정권 초기인 2018년 인상률(16.4%)과 비교하면 15%p 가량 차이가 난다.
◆최초요구안 제시 4일만의 결론...공익위원 사용자안 손들어줘
최저임금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사 합의가 아닌 표결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법정 심의 시한을 훌쩍 넘기자 막판에 투표를 통해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심의 기한이 준수된 것은 9차례 뿐이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노사 양측의 최종제시안(5차 수정안)인 '1만120원'과 '1만30원'을 놓고 23명(재적위원 27명)이 투표한 결과, 14 대 9로 사용자안을 내년 최저임금으로 확정했다. 최저임금 결정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공익 위원(9명) 중 5명이 사용자 안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 9일 최초 요구안이 제시된 후 불과 나흘 만의 결과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예상 밖의 조기 타결이다. 내년 최저임금 법정 고시 시한이 다음달 5일인 점을 고려하면 다음주 한 차례 더 회의를 열 물리적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노동계 안팎에선 다음주에 최종 결론이 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가 개시된 후 이인재 최임위 위원장의 수정안 제시 요구에 따라 노사가 빠른 속도로 수정안을 내놨고, 결국 11일 밤 11시를 넘겨 4차 수정안이 나온 후 공익위원들이 노사에 '최종안' 제시를 요구했다.
결국 자정을 넘겨 12일 시작된 11차 전원회의에선 공익위원의 심의 촉진구간(1만∼1만290원) 제시 후 노사 양측의 5차 수정안이 나왔고 표결 끝에 새벽 2시 30분경 다수결 투표를 통해 경영계 안인 1만30원을 내년 최저임금으로 결정했다.
노동자 생계비 보장과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임금 하락 등을 내세워 1만원 이상 ‘고율 인상’을 요구했던 민주노총 근로자위원(4명)은 표결을 앞두고 퇴장했다. 만약 이들이 투표에 참석했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최임위가 이날 의결한 내년 최저임금안안 이제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로 넘어가 8월5일까지 확정·고시되면 내년 1월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고시 전에 이의 제기 및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지만 재심의가 이뤄진 적은 이제껏 단 한번도 없다.
◆노동계 "'답정너'에 졸속" 비판..사용자측도 불만
2%도 채 안되는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에 노동계는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지난 9일 제시한 1차 근로자측 수정안(1만1200원)에서 대폭 삭감된 수준에서 결정됐기에 더욱 그렇다. 최종 표결에 불참한 민주노총측 근로자위원들은 이번 심의가 '졸속'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심의 촉진구간은 최저임금제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근거가 빈약한 제시안”이라며 “이미 결과가 정해진 ‘답정너’ 권고안을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한국노총도 “제한된 조건 속에서 결정된 시급”이라며 “아쉬운 결정임을 받아들인다”라고 평가했다.
근로자들도 불만이 가득하다. 법정 시급 1만원 시대에 진입했다는 상징성은 있지만, 1.7% 상승률은 물가인상률에도 못미쳐 사실상 최저임금이 떨어진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초장기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적지않이 하락했다.
특수고용자와 플랫폼 근로자들도 불만이다. 도급제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 문제가 이번에도 유보됐기 때문이다. 특고 및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문제는 경영계의 반발에 부딪혀 지난 6월13일 4차 최임위 전원회의서 무산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불만이 있기는 사용자측도 마찬가지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은 시급 1만원시대가 열려 인건비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서울 신정동에서 자영업을 운영하는 A씨는 "가뜩이나 경기가 안좋아 수익이 쪼그라들고 있는데, 최저임금이 또 올라 종업원을 더 줄일 지, 아예 폐업할 지 고민중"이라고 토로했다.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에 한계가 있는 점을 고려, 업종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사용자측의 요구도 결국 최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용자위원 측은 지난달 26일 6차 전원회의에서 한식과 외국식, 기타 간이 음식점업과 택시 운송업, 체인화 편의점을 구분 적용하자고 제시했으나 투표결과 12대 15로 부결됐다.
이인재 최임위 위원장(인천대 경제학과교수)은 “노사 모두 만족하는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점이 상당히 아쉽다”라면서도 “논의 횟수가 아닌 노사가 진전된 안을 내느냐가 중요한데 요구수준의 격차가 좁혀졌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해 투표로 결정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심의 촉진구간 등 공익위원들이 키를 쥐고 있는 한 편파성 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사용자와 근로자의 입장 차이를 근본적으로 좁히기 어려워 앞으로도 원만한 합의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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