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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6: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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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이형우 보문열처리 대표

기술입국’ 향한 도전의 세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이형우 보문열처리 대표

이형우 보문열처리 대표

‘열정과 선택’으로 담금질한 ‘성공 시대’

자동차 부품 열처리 전문…30여년 ‘한 우물’의 성취

‘기술입국’ 향한 도전의 세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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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연하게 풀어줬다가 다시 단단하게 하고, 필요한 만큼 성질을 바꿔준다.’-. 쇠로 된 만물의 모양은 필히 그런 담금질을 거쳐야 한다. 다른 말로 ‘열처리’다. 열처리는 이형우 대표 평생의 업(業)이 되었고, 장인의 혼을 바친 삶이 되었다. 늘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가꾸며 다듬어온 이 대표의 어제와 오늘도 그것과 닮아있다. 지난 33년의 ‘한 우물’ 여정-. 그 긴 시간은 ‘열정과 선택’으로 채색된, 어느 기업가의 치열한 신화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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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 비록 시대가 젊어졌다곤 하지만 “힘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해보겠다”는 이 대표의 24시는 나이에 비해 유난히 젊다.

그가 받은 ‘2014년도 남동구 우수기업인상’도 그렇다. 다른 관내 기업인들에겐 어떨지 몰라도, 이 대표에 있어선 그 상은 결코 ‘의전(儀典)’이 아니다. 관례대로 주어진 상은 더욱 아니다. 열정과 ‘젊디 젊은’ 선택의 용단으로 점철된 세월, 그것에 대한 헌사다. 상에 첨부된 공적서 문구 하나하나는 그런 삶을 충실히 묘사한 ‘팩트’다.

“30여년 열처리 전문업체 운영, 최고 품질의 자동차 부품”, “2공장 설립,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이바지”, “환기시스템 양산, 국민건강 이바지”….

그래서 60대 중반에 가까운 지금도 그는 “우리나라가 한류를 타고 있는 요즘, 다른 나라의 본이 되는 ‘롤 모델’이 되겠다.”며 의욕이 충만하다.

‘無에서 有을 창조하듯…기술 개발 몰두’

본래 공학도였던 이 대표는 30대 초에 금속업계에 투신했다. 그 중 자동차 부품 열처리만 25년이다. 그가 창업한 보문열처리는 대우자동차에서 GM대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에도 납품하며, 핸들, 브레이크, 기어, 연진등을 엔진부품과 볼트류 등으로 요소 부품들을 열처리 가공해왔다. 모두 자동차의 기능을 온전하게 하는 핵심 부위들이다.

청년 시절부터 그는 R&D와 독자적 기술 개발에 몰두하며 ‘기술입국’의 꿈을 키워왔다. 창업 초기, 자신이 개발한 기계로 제품을 자체 설계하자, 벤치마킹 모델이었던 일본은 웃었다. 허나 기술 원조격인 미국이 놀라워했다. “이 정도면 일본보다 앞선 수준인데, 어떻게 한국에서 이런 걸 개발했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 격의 후진 기술뿐이었던 80~90년대 초. 이 대표는 그렇게 미지의 신기술에 대한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누가 비웃든지 말든지, 열처리 기계 개발에 매달렸고, 마침내 해냈죠. 그렇게 필요할 때마다 기계를 개발했습니다. 개발한 기계로 제품 설계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GM사으로부터 간혹 ‘시험’도 치러야 했다. 관계자가 고장난 부품을 들이밀며, “이게 미국 원산지 제품인데 어떻게 고치느냐, 일단 해봐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대표와 보문열처리는 고집스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고쳐놓았다. GM사로선 의외였다. 기술에서 미국보다 한 수 위라고 할 독일 기술자가 보곤 “방식은 특이한데…맞긴 맞네”라며 신기해했다.

고리원자력발전소 사업에 미국 업체들과 참여했을 때도 그랬다. 역시 ‘보문’의 기술 앞에서 미국 업체 관계자들은 “특이하다, 대단하다”고 칭찬을 연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문’의 기술은 기존의 선진기술과 노하우를 응용한게 아니었다. 자신만의 새로운 공정철학과 문법을 배경으로 한, ‘오리지널, 메이드 인 보문’ 이었다.

그런 세월 때문일까. 이 대표에게 “할 수 있다”는 없다. “하겠다”만 있을 뿐이다.

“‘하겠다’는 각오로 임해야만 비로소 할 수 있는 겁니다. ‘할 수 있다’는 말은 그저 ‘가능성’일 뿐입니다. 안 된다는 생각만 버리면, 방법을 찾게 되고, 방법을 찾으면 실행하면 됩니다. ‘하겠다’고 하면 못 할 게 없죠.”

사업과 학업 병행, “늘 배우는 자세로”

그런 확신 위에서 보문열처리는 이제 ‘세계화로 발돋움하는 전문기업’의 문턱을 넘어서게 되었다. GM, KEYKERT, MAGNA 등 글로벌 기업들에 부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며, 중국 소주(蘇洲)에 현지공장도 세울 계획이다.

물론 엄격한 QC와 이노베이션을 생명처럼 여기는, 자기 검열의 룰도 엄격하다. ‘3정5행’의 합리적 경영과 공장 개선으로 무결점 품질 관리를 기하며, 핵심 부품의 ‘제로 디펙트’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이 대표가 언제나 갈급해하는 건 또 있다. 바로 ‘앎’과 배움이다.

“사업을 할수록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공부도 하면 할수록 재미있죠. 그래서 오래 전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미 연세대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전문경영인 과정(박사)을 수료했다. 나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로지 “끊임없이 배우면서 발전한다”는 자존감에 충실할 뿐이다.

이 대표는 “빠른 성장은 못했지만, 중소기업 고유의 업종에서 기복없이 지내왔다”고 그간의 30여 년을 요약했다.

허나 그가 말한 “기복없음”은 액면과는 다른 뜻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도전을 응전으로 맞받아친 역전과 역설의 연속 끝에 이룬 평탄함이요, “기복없음”이다. 때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투박한 신념을 무기삼았고, 말 그대로 되게 했다.

시장으로부터 얻은 ‘신뢰’도 중요했다.

“평소 어떤 상황이든, 거래처들이 저희를 믿을 수 있게 했습니다. 위기가 닥치고, 어려울수록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노력했죠. 덕분에 창업 당시 거래처들의 70%가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삶의 기승전결을 담금질하며 얻은 깨달음이 또 있다. 바로 ‘선택과 열정’이다.

“인생 자체가 ‘선택과 열정’의 과정입니다. 모든 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후, 열정을 쏟아 실현해야 합니다. 일도 그렇고, ‘청춘’도 그렇고…. 그런 노력을 다한 후 ‘뿌린만큼 거두는게’ 곧 인생 아닐까요.”

“사람이 자산”, 직원 과반수가 20년 이상 재직

이 대표는 “대한민국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고 새삼 감회를 표했다.

“중국에서 기술 전수를 할 때도 그랬어요. ‘너희들은 나라가 크지만, 우리는 사람이 크다’고…. 그들도 절반은 인정하는 듯 했습니다.”

언젠가 중국업체가 만든 세계 지도에 한반도가 빠져 있었다. 이 대표는 굳이 그걸 지적했고, 나중에야 그들도 제대로 된 지도를 만들어냈다.

“그렇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무심코 빠뜨릴 만큼, 우리 한반도가 작아요. 그것도 반(半)을 접어놓았으니…. 그럴수록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크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의 ‘사람’ 사랑때문인지 보문열처리 직원들의 과반수는 재직 20년이 넘는다. “더불어야 살지, 혼자 못산다. 직원들이 일을 해주니까, 나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그 행간에서 작용한 것이다.

“저는 한 달에 서너번 정도만 회사에 와요. 나머지는 숙련된 직원들이 알아서 다 합니다. 다만 한 달에 한 번씩 월례회를 하죠. 그럴 때면 기탄없이 서로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발표하며 토론하는 자리가 됩니다.”

이 대표가 실천해온 ‘열린 경영’의 면모다. 그렇게 열린 자세의 ‘사람’ 사랑은 후대(後代)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변해야지, 젊은 사람들더러 변해라 해선 안 됩니다. 앞날을 책임질 젊은이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들을 경청해야 합니다.”

다만 모든 직원들을 예외없이 공채로 선발한데서 보듯, 공사(公私) 구분엔 무척 엄격하다. 친인척이나 정실 관계의 채용은 있을 수 없다. “그럴 경우 실력과는 무관한, 파벌이나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란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지속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도전

그가 무게를 둔 회사의 비전에는 ‘지속적 성장’도 들어있다. 지난 2005년 또 다른 자동차 부품 열처리전문기업 BMC를 아산에 세운 것도 그런 전략의 하나다. 당시 BMC 아산은 가열로 2기에서 시작해 대전․충남권을 아우른 교두보로 기반을 다졌다.

그로부터 2년 후, 공조기와 환기 시스템 전문기업인 다존에이스도 설립했다. 은행이나, 관공서, 아파트 등에 필수적 제품이다 보니 급속한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획기적인 신제품 출시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 이 대표에게 “그만 하면 먹고 살 만한데,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할 법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멈출 생각이 없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 회사의 영속적 발전 뿐 아니라, 가족같은 직원들의 지속 가능한 인생을 위해서도 그렇다. ‘지속 가능’엔 정년도 없다.

“사람은 모름지기 일하기 위해 산다 해도 틀린 말 아닙니다. 오래 근무하다 정년퇴임 후엔 또 일자리를 찾게 됩니다. 우리 직원들도 마찬가지죠. 정년 후엔 텃밭이라도 하고 싶을 겁니다.”

이 대표는 “이 분들은 이 회사에 나를 믿고 온 사람들”이라며 “평생 일할 수 있는, 정년이 없는 회사로 만들 책임이 내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물림’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우리 아들은 아들대로 자신이 개척할 인생이 따로 있다”며 “그 보단 오랜 세월 기업 이념을 공유해온 직원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는게 현명한 처사”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 대표에게 직원들은 곧 존중해야 할 ‘장인’들이고, 한 우물을 같이 파온 동지들이다. 사람과 기업의 공존․공생은 그의 현재적 삶의 목적이다. 그것이 만든, 기분좋은 텍스트는 예측 가능한 미래의 수단이다. 그래서 그는 사업을 ‘씨뿌림’에 빗댄다. 당대에 뿌린 만큼 거두는 인과와 응보의 방정식…. 그 말대로라면 이 대표와 보문열처리의 선택과 열정, 그 모든 것은 기분좋은 백투더 퓨처의 실천적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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