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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2:3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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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자생성과 주체성 갖춘 뜨거운 영혼으로

민족미술협의회의 진보미술 도약시키겠다

자생성과 주체성 갖춘 뜨거운 영혼으로

1985년 7월‘서울미술공동체’가 군사 독재와 맞서 싸우던 암울한 시기에‘힘전(展)’사태는 한국민족미술의중대한 분수령이었다. 당시의 군사정부는 젊은 민족미술가들이 아랍미술관에서 개최한‘한국 미술 20대의힘’전을 좌경용공 사상으로 몰아갔다. 전시회는 강제로 중단됐고 작품은 발로 밟히거나 압수 당했다. 힘전사태는 민족미술이 독재세력에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재기시키게 되니, 이렇게 만들어진 공식적인 저항미술단체가‘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이다.

이 때 연행당한 20여명의 학생 중 한 사람인 민미협박진화 신임회장은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구심점을 관통해온 인물이다. 지난 2월 16일, 민미협의 새로운 수장으로 선출된 박진화 회장을 만났다.

미술의 살아있는 정체성, 민미협의 정신 일깨울 것 전남 장흥에서 중, 고교를 졸업한 박진화 신임 회장은 1981년 홍익대를 졸업하고 1985년 서울미술공동체

를 조직해 민중미술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미술공동체대표, 민족미술협회 서울대표, 민족미술협회 상임이사 등의 이력에서 살펴볼 수 있듯 민족미술가로서의

그의 내공은 깊다. 오윤, 김정헌, 임옥상 등을 민미협 1세대로 꼽는다면 박진화 회장은 1.5~2세대에 속하는민족미술가다. 박진화 회장은“2세대로서는 처음으로

민미협 회장을 맡은 책임감이 큽니다.”라며“민미협의자존감 회복, 민미협의 정체성 복귀에 활동의 초점을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까지 1,500여명의 회원이 민미협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오늘날 민미협 회원수는 800여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우리 미술이 상업

화되었다는 뜻이고 작가들이 작품적인 평가를 받을 기 회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박 신임회장은“우선 회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적

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전시회 및 세미나, 강연회도적극적으로 개최할 예정입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싸워내는 민족미술은 한국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 해 왔다. 1980년대의 어두운 역사적 현실에 맞선 <신촌의 겨울전>, <해방40년역사전>,

고(故) 박종철군을 추모한 <반 고문전>등은 미술이 인권회복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나를 여실히 보여준 발자취이다. 그러나 2000년대를 기점으로 위축된 진보

및 민족미술계는 민미협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했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 사실상 끊겼다고 봐야하는 지난 정부는 민족미술계의 발전과는 무관한

문화정책을 시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획전이나 상설전시회 등 모든 전시회는 상업적으로 흘렀고 외국의 유명작가만 초대해 작품을 걸었다. 민족미술화가들의 작 품활동에 비해 전무하다시피한 전시공간은작품 활동 자체를 축소시켰고 민족미술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진화 회장은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선배들이 붓을 내려놓았

지만 전업작가로 평생을 살아오고 있는 것은 민족미술만이 자신의 갈 길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면서부터다.

민족미술의 명맥이어 꾸준한 작품활동박 회장은 1989년부터 <분열-생성>, <철

책-꽃>등의 개인전 16회, 단체전 50여회의 전시회를 비롯해, 1995년부터 강화도에 본인의 작업실인 박진화미술관에서 지속적인작업을 하고 있다. 민통선 마을인 강화읍 대산리 작업실(사북헌)에서 북을 마주한 채 매진 중인 작품의 주요모티프는 연민, 씻김,분단, 생명이다.

지속적인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는 그는한 때“화가는 별 볼 일이 없어야 해. 그래야힘이 빠지고 그림다워져”라는 말로 민족미술화가들이 나아갈 길을 넌지시 알려주었 다. 2004년작 <철책에 걸린 도깨비I. II. III. IV>, <낮꿈 I. II. III. IV> 등 연작 위주로 진행되는 그의 작업은 반추상 쪽에 힘을 실어내면서 반추상과 추상 사이의

스펙트럼을 오가고 있다. 초현실적인 상상과 상징 속에서 애잔하고 묵직한데다

활달하기 그지없는 박진화 회장의 그림은 그를 닮아 우직하고 순수하다.

박 회장은“제 그림은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소재를 좀처럼 그리

지 않아 초창기에는 크게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변함없이 작품을 그

려왔고 앞으로도 그려갈 것이기에 많은 선, 후배님들이 저에게 중책을 맡겨주신

것 같습니다.”라며 겸손히 웃었다. 국제전이나 기획전시회에서도 좀처럼 초청받

기어려워진 민족미술이지만 박진화회장의 작품활동은 부단하다.

‘ 분단작가’라는 의미심장한 타이틀과 함께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과 우리네 이웃의 삶을 질박하게 그려내는 그의 작품은 사람의 모습을 닮아 더욱 아름답다.

박 회장의 그림은 2009년 10월 27일부터 2010년 10월 24일, 약 1년간 포항공

과대학 전관에 postech초대전인‘발밑과 눈’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된 바 있으며,

‘내 붓의 바탕과 자세’라는 주제로 포항공대 내에서 강연회를 가지기도 했다.

500호 대작 2점을 포항공과대학에 기증한 박진화 회장은 대학측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으며, 과학과 더불어 예술을 이해하고소통하는 장을 마련한 공로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민족문화 진영의 중심 잡기 위한 활발한 활동 진행할 것이제 박진화 회장은 민미협 본연의 정신에 다시 한번 힘을 실어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박진화 회장은 민미협 회장 취임 수락 연설에서“1985년 창립 이래 28년을 이어온 민미협의 정체

성을 다시 확인하고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따른 우리 문화진영의 중심을 찾고 그 중심 잡기를 위해 활발한 토론의 자리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2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민족미술협의회가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견인해내지 못했던 자취를 반추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온 생각이다. 박진화 회장은 민족미술이 우리 민족만의 자생적인 미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궁극적인 미학을 추구하면서 서양 미술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적 미술 색채를 이루어야 한다는 얘기다. 앞세대와는 조금 다른 컬러를 가져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어려운 시기에 맡게 된 중요한 직책에 대해 시종일관 그는 긍정적이고 밝은 전망을 전개했다.

박진화 회장의 그림에 넘치는 붓의 에너지만큼 민미협에도 새로운 생명력이 넘치는 3년이 기다리고 있다. 박진화 회장은‘역사성이 민족화가에게 부여한 소명을 놓치면 안 된다.’는 정신으로“대한민국 화가로서의 붓의 소명을 살려내는 일이 자신의 길”임을 이야기하며 북을 마주한 민통선마을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살아있는 작가들’.‘ 힘차게 살아있는 민미협’.‘ 민미협의 자존심과 발전’을 위해 뛰겠다는 박진화 회장. 박 회장에게서 민미협의 힘이 다시 한번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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