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3일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호텔에서는 ‘2020년 제15회 장애경제인대회’가 개최됐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고 한국장애경제인협회,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이 대회는 장애 경제인들에 대한 사기진작과 장애인의 창업, 장애인 기업의 경제활동 확산을 촉진하고자 마련된 행사이다. 이날 행사에서 디자인 및 인쇄 기업인 애드모아 박한진 대표가 벤처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대전에 위치한 애드모아는 1994년에 사업을 시작, 지금까지 ‘고객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다’라는 신념으로 꾸준히 사세를 확장해왔으며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작지만 알찬 기업, 거래처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애드모아 박한진 대표를 만나 그 비결을 알아보았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매출 변화 크게 없어
애드모아는 디자인, 인쇄기업으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비스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디자인 기획, 카탈록, 팜플렛, 책자, 홍보물, 포스터 등 각종 인쇄물을 제작하면서 이른바 ‘원스톱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상담에서부터 시작해 결과물까지 모두 한 곳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또한 고품질의 인쇄 및 최상의 서비스, 빠른 납기를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거래처라면 크든 적든 모든 곳을 소중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고객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한다. 고객이 원하면 거리에 상관없이 방문해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거래처들의 재방문율이 매우 높은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11년에 중소기업청장상은 한번 받은 일이 있고, 기타 여러기관의 표창은 있었지만, ‘장관상’은 처음으로 받아봅니다. 사실 저는 능력도 별로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데 이런 상을 받게 되어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사업을 잘하라는 채찍질이자 터닝포인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차별화된 제품 제작과 서비스를 통해 국내 디자인 인쇄업체의 위상 향상을 위해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5명의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으며 직원들을 위해 경영현황을 공유하고 재무재표를 공개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연구를 통해 품질을 높인 결과 코로나19 시대에도 과거와 비슷한 평균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한진 대표는 사회공헌 활동도 매우 열심이다. 그는 대전동부경찰서 보안자문협의회 수석부위원장으로 활약하며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매년 안보견학 및 장학금 지급과 후원물품 지원등의 활동과 대한효충의연합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바른 효행과 나라사랑을 일깨워주는 다양한 행사도 갖고 있다. 또 전국 지체장애인단체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장애우들의 합동결혼식 바자회등 다양한 봉사활동과 정기 후원활동도 10년 이상 계속해 나가고 있다. 1997년부터 한국재향봉사단에 가입해 마을정화활동, 경로당 소독 봉사도 하고 있다. 박 대표가 이렇게 사회공헌에 헌신적인 것은 그 자신 장애인으로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심정과 경제적인 어려움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닥친 불운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박 대표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다 28살의 젊은 나이에 창업을 했다. 그 후 2년 뒤에 결혼까지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문제는 몇 건의 사고가 터지면서 극심한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IMF시절인 1998년 봄에 1천 700만 원 정도 하는 새 인쇄 기계를 구입하였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도둑을 맞았고, 지인의 가계수표를 도와주다 문제가 생겨 그 돈을 또 떠안게 되기도 하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주요 거래처의 어음이 부도가 나서 총 떠안게 된 빚이 5천만 원에 이르렀다. 당시 아내에게 일주일 생활비를 5만 원 주던 시절이었으니 그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이 아닐 수 없었다. 약 한 달 동안 세 번의 역경을 격을때 아내는 성경에 욥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욥은 건강과 모든 재산과 열 명의 자식까지 한꺼번에 잃었지만 아직 우리는 젊고 건강하고 첫 아이 주영이도 건강하니 감사하며 이겨내자고 오히려 저에게 위로 해 주었다.
신앙으로 이겨내는 아내가 너무너무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한 달 정도 후인 1998년 9월에 둘째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는데, 퇴원할 때 퇴원비가 없었습니다. 결국 일수돈 100만원을 얻어 67만원의 병원비를 내고 산모와 수술해서 낳은 아이를 퇴원시킨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저의 신념은 확고했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전에 영업을 나서서 하루 종일 대전 전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대전을 한 바퀴 다 돌려면 대략 1주 정도가 걸립니다. 하지만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고 생각해 열심히 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독하게 영업을 하자 서서히 성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특별히 ‘마무리’를 신경쓰는 그의 성격 탓에 서비스가 좋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박 대표는 첫 거래를 하는 업체라면 인쇄물을 본인이 직접 들고가 납품을 하고 인사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것. 이렇게 하자 애드모아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 지금까지 100여 개의 거래처를 소개해준 사람도 있고, 자신의 친구가 애드모아가 아닌 다른 업체에 인쇄물을 의뢰하면 애드모아에서 인쇄를 안했다고 화를 내는 거래처 사장님도 있었다고 한다.
“제가 가장 많이 신경쓰는 것은 서비스의 차별화입니다. 사실 인쇄 품질은 이제 평준화가 되어 있어 크게 차별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친절하게 인사하고 정성드려 납품하고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이 없게 합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그냥 가져가라고 던져 놓는 것과 마지막까지 세밀한 관심으로 대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렇게 편안함을 느낀 고객이라면 반드시 다음에 저희 회사를 찾게 됩니다.”
사실 ‘애드모아’라는 디자인 회사 이름은 전국에 수십여개가 된다. 하지만 상표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바로 대전 애드모아 박한진 대표이다. 세종시의 직영점과 충대 서문의 관계회사를 제외한 다른 곳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짝뚱 애드모아인 셈이다. 현재 박한진 대표는 또다른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산업디자인전문회사란 이름에 걸맞게 이미 새로운 상품개발로 특허를 받는등 타업체와의 차별화도 꾀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시대에 맞게 캐릭터를 만들어 디자인에 활용하고 있고 벤쳐기업인증을 비롯해 ISO14001 인증을 받아 고객의 신뢰도를 더욱 높이려는 시도 등 그에 대한 디자인전문회사로써의 도전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의 삶은 비장애인들도 본받아야할 점이 많다. 애드모아가 지금의 단계를 뛰어 넘어 더 차별화되고 신뢰받는 기업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