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일대가 국내 최초로 '세계유산지구'로 공식 지정됐다.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의 고층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번 지정으로 세계유산 보존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향후 사업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2일 정부 관보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종묘 일대 19만4089.6㎡(약 5만8712평) 범위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했다. 지난달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세계유산지구 지정 안건이 통과한 데 이어 관보를 통해 고시함으로써 행정 절차를 마무리한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지정 사유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체계적인 보존·관리 및 활용을 위해 세계유산지구를 지정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종묘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실의 제례 공간이다.
현행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약칭 '세계유산법')은 국가유산청장이 필요한 경우 세계유산지구를 지정해 관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계유산지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유산 구역'과 유산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세계유산 완충구역'으로 구분된다. 이번에 지정된 범위는 현재 종묘 사적 면적과 같은 규모로, 종묘 담장 안쪽이 해당된다.
세계유산지구로 지정되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건축물 또는 시설물을 설치·증설하는 사업'을 할 때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실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는 해당 사업이 세계유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예측·평가하고 예상되는 부정적 영향을 사전에 막거나 제거 또는 감소시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절차다.
현행법은 특히 세계유산지구 밖이라도 세계유산의 특성, 입지 여건 등을 고려했을 때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하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지정으로 종묘 세계유산영향평가의 공간적 범위 대상이 설정돼 국가유산청장은 종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영향평가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논란의 중심인 세운4구역은 종묘 세계유산지구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세운4구역은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진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문화재 외곽 경계에서 100m) 밖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국가유산청은 이번 지정으로 세운4구역의 고층 건물 계획에 대해 영향평가를 요청할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종묘 맞은편에 최고 145m 높이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당장 막을 수는 없겠지만, 서울시나 사업 시행자에게 영향평가를 받으라고 요청할 근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서울시보에 고시했다. 재개발 후 구역 내 건물 최고 높이 기준을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에서 종로변 101m, 청계천변 145m로 대폭 변경하는 내용이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에 있어 문화재보호법상 현상변경 허가 대상이 아니므로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유네스코는 올해 4월 서울시에 "재정비사업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체 계획에 대한 유산영향평가를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서울시로부터 공식적인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국가유산청은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5월과 9월에도 서울시에 관련 공문을 보냈으나 회신을 받지 못한 상태다.
지난 11월 6일 대법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개정조례안 의결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서울시가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서울시가 관련 조항을 삭제한 것은 적법한 조례 재·개정 권한의 행사"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영향평가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법·제도 보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평가 대상 사업의 범위와 절차를 구체화하는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년 3월까지 공포할 계획이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영향평가 권고를 반영한 시행령은 국토교통부와의 협의를 거쳐 12일부터 4주간 재입법 예고될 예정이었으나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와 관련 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한국고고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등 27개 학회와 6개 협회는 공동 성명을 내고 "종묘의 하늘과 시야를 가리는 고층 개발 시도는 유산의 가치와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서울시의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세계유산은 건물 자체뿐 아니라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전체적인 경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서울시는 세운4구역을 포함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가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 97%에 달하는 등 재개발 사업이 필요한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에 면적 1만3100㎡의 개방형 녹지 조성과 함께 주변 상가군의 단계적 공원화를 통해 약 13만6000㎡ 규모의 녹지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18일 서울시의회 정례회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그렇게 압도적으로 눈 가리고 숨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를 정도의 압도적 경관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종묘의 경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앙각 기준(27도)을 세운지구까지 확대 적용했으며, 단계적으로 높아지는 형태로 경관 영향이 저감되도록 높이를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세계유산지구 지정으로 종묘 보존 체계는 한층 강화됐지만,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은 향후 영향평가와 제도 보완 과정에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시는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국가유산청과 협의해 내년 착공에 들어가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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