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보통신네트워크사업의 1위를 향해 달음질하고 있는 (주)유리네트웍스. 인천SI업계의 선두를 지키며 나아가고 있는 (주)유리네트웍스의 쌍두마차의 1인 김시선 전무이사를 취재했다.
(주)유리네트웍스(대표 박창호)는 인천지역 최고의SI기업으로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 214 송도스마트밸리 A동 1801호에 위치하고 있다. 회사는 80평 규모에 직원은 15명이며 자본금은 2억6천만원.
이 회사는 안정적이고 편리한 정보통신에 관한 시스템통합 구축, 정확하고 안정적인 네트워크 정보제공,효율적이고 안전한 유지보수, 관리환경 조성, 원활하고 신속한 데이터흐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핵심사업은 정보통신공사, 네트워크, 시스템통합, 보안솔루션, 서버 및 스토리지 등이며, 여기에 U-city 구축, 통합 데이터센터(IDC)구축, 지능형 교통체계시스템(ITS)구축, 콜센터구축 방범용 CCTV, 정보통신 및 전산장비 유지보수, 통합관제센터구축이 포함된다. 주로 관공서를 대상으로 하는 SI사업 즉, 정보통신분야 Ucity사업과 CCTV통합관제센터 구축, 전산장비 및 통신장비 통합유지보수를 주업으로 한다. 거래처로는 인천시청,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인천도시개발공사. 인천교통공사, 10개 군구청(관제센터, 동사무소, 사업소 포함)과 관련한 정보통신분야를 맡아 하고 있다.
U-city 사업이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필요한 정보를 공공 및 민간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로는 U-교통, 방범, 시설관리, 방제, 환경, 모바일 도시민 정보제공 등이 있고, 민간서비스는 U-홈,스쿨, 헬스, 컬처, 머니 등이 포함된다.
창업 한달반 만에 얻어낸 첫 수주는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점에 네트워크장비를 납품하고 구축하는 사업이었다. 사업비는 2억3천 만원에 불과했지만 신설법인으로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이를 시작으로 지자체 방범용CCTV 사업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인천 연수구, 계양구, 남동구, 남구 CCTV 관제시스템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유리네트웍스는 인천경찰청 통합망 구축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KT 주도의 사업에 신규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회사의 인력 및 기술력
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백억원 규모의 사업일 때는 대기업과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다. 그 동안 KT, LGU+SKT와 컨소시엄으로 사업을 했다.
이 회사가 그 다음으로 뛰어든 사업은 버스인포메이션 시스템(BIS/BMS). 임직원들이BIS경험자들이라 기술력은 충분했다. 인천교통공사 BIS 유지보수는 물론이고 이 분야 전문기업인 이비(EB)社와 컨소시엄으로 보안,운영 센터 시스템구축에도 참여했다.
최근에는 인천경제자유구역 U-city 사업에도 KT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유지보수까지 한다. 인천지역 IT기업 중 U-city 사업에 운영-관리에 참여한 기업은 (주)유리네트웍스가 처음일 것이라고 김시선 전무이사는 말한다. 이후 인천시의 인천IDC 통합데이터센터의 네트워크, 보안, 통합 배선, 스토리지는 물론이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 ITS 시범사업중 설비시스템, 인천시청 통합 인터넷 전화망, 연수구 통합관제센터구축, 시청콜센터, 연수구, 남동구 IPT 구축, 남동구 관제센터이전,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 유지보수, 서울시 광진구 하수구 관내 CCTV 등을 했다.
이 회사는 박창호 대표이사(49)와 김시선 전무이사(46)가 창업한지 만 4년8개월 됐다. 지난해 년 매출액은 65억∼70억 원을 기록했다. 김 전무는 창업 당시 무엇보다 거래처 확보가 제일 어려웠고 그 다음이 현금거래 및 직원을 확보하는 문제였다고 회고한다. 거래처는 기존거래관계 내용을 재점검하여 그보다 나은 서비스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개척해갔다. 업무 아이템에 전문화-다변화라는 차별성을 더하여 기존 업체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로 공략했다.
소규모업체가 살아남으려면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사고를 전환 했던 것이다. 직원채용 때도 특화된 자격증보유자 위주로 선발하고 입사 후에는 교육부분에 많은 역점을 두어 향후에 필요 시 되는 신규기술을 많이 가르쳤다.
CCTV분야의 경우, 기존 아날로그방식에서 디지털방식으로 바뀌면서 네트워크 구성이나 저장 스토리지에 관련한 부분을 특화 시켰다. 특히 방범용 소프트웨어에 있어서는 다른 업체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전문기술 확보 및 활용하는 고객화(커스터마이징)을 했다. 보안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는 보안전문가를 채용해서 보안기술 교육을 특화 시켰다.
이 역시 자격증보유자로 채용된 직원들을 전문화시켜 경쟁력을 갖췄다. 인천지역에 정보통신 면허를 갖고 있는 업체는 3백여개로 파악하지만 이 회사와 실질적 경쟁을 하는 업체는 10개 내외로 꼽힌다. 다시 말해 이 회사가 인천관공서 정보통신분야 사업물량을 50%이상 확보하고, 나머지 10개 업체가 50%를 나눠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기술력에 있어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이 회사의 창업시 자본금은 1억6천만원이었으나 3년 후 증자해서 현재 자본금은 2억6천 만원이다. 창업 초에는 박 대표이사 및 김 전무 2명으로 시작했으나 2개월 후 5명으로 늘었다. 또 다른 어려움이었던 현금거래 문제는 거래사를 찾아가서 회사실정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영업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시키고 물건을 받아왔다. 그래서 각종 벤더제품을 총판을 통해 미리 돈을 지불 않고도 받을 수 있었다.
직원은 처음부터 먼 훗날을 내다보고 동고동락을 같이 할수 있는 사람으로 뽑았다. 노사간에 그러한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직원들이 고생이 되더라도 헌신할 수 있었다. 김 전무는 고객서비스에 제일 먼저 초점을 맞추고 對고객 신뢰성제고를 중시하기에 항상 기술력 선두를 지향할 수 밖에 없다.관공서 민원이 발생하면 즉시 현장투입이 가능하도록 서비스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다. 예를 들어 버스정류장에 안내판에 정보가 표출되지 않는 경우 사고장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30분내에 출동해 수리가 가능하도록 해놓았다.
CCTV 같은 경우에는 즉시 복구할 수 있다. 이는 사건, 사고와 관련이 많은데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신속한 수리로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이제는 대기업들이 컨소시엄 지역업체를 찾기 위해 인천지역에 오면 제일 먼저 이 회사를 찾는다. 인청 시청 IDC(통합데이터센터)를 KT에서 구축했을 때도 네트워크 및 보안에 관련된 것은 이 회사가 맡았다.
연수구 통합관제센터(CCTV 통합관제센터)를 엘지U플러스가 회선부분을 했을 때도 전반적인 구축부분은 도맡아서 했다. 이제 (주)유리네트웍스는 송도, 청라, 영종지역의 Ucity사업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 사업이 성공리에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해외진출도 노리고 있다. 지금은 CCTV가 점차 지능화되는 추세이기에 거기에 맞춰서 교육 및 인력을 투자하고 있다.
김 전무는 지금 당장 해외로 나간다 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기술축적이 돼있는 상태라고 자신한다.
애로점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기술력 가진 직원을 확보하는데 있다. 유능한 직원을 영입하려 해도 임금수준이 결코 낮지 않은데 지방근무라는 이유로 입사를 꺼린다는 것이다.
김시선 전무이사는 전북 부안 출신으로 인천 정석항공과학고 졸업 후 인천대, 인천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고교 졸업한 1987년 한화그룹 산하 고려시스템 입사를 시작으로 사회에 진출했으며, 7∼8년 후 인천소재 우정시스템으로 옮겨 근무하면서 야간대학에 진학해 학교를 다니면서, 인청시청, 부평구청의 전산장비 유지보수 업무를 5년간 하다가 영업부로 발령나 부장까지 진급했다.
그 후 사장이 무리한 투자로 그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30살 나이로 유비텍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사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때 거래처도 관공서 전산장비 유지보수를 하는 일이었다. 사업역시 역부족으로 부도를 맞고 전전하고 있던 중 인천 서구청 담당 주 무관이었던 박창호 대표이사와 5년전에 다시 만나 (주)유리네트웍스를 창업한 것이다.
박 대표이사와는 15년 전에 담당 주무관과 용역사업자로 처음 만났던 것이다. 5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 신뢰가 쌓여 이제는 회사를 꾸려가는 동지가 된 것이다.이 회사는 2008년 6월에 창업해서 첫해 매출액이 5억원이었지만, 해가 갈수록 26억원, 50억원으로 늘면서 2012년에는 64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액 목표는 65∼70억원선.
김 전무는 현재 국제로타리 3690지구 인천동남로타리클럽 회장을 맡고 있다. 30대중반이었던 12∼13년전 행정대학원 원우가 김 전무가 사무총장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알고 권유하는 바람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어 탈퇴도 생각했었다. 회원들 대부분이 여유 있는 사람들이었고 회비는 물론 주 1회 정기회의 참석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장애인봉사를 나갔다가 자신의 도움을 받은 장애인의 밝아진 모습을 보고 봉사활동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 로타리 활동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제대로 성장 못해 키가 작은 30대 여성지체장애인이 김 전무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는데 마음이 찡해진 것이다. 차량 이동시 여자라서 안고 옮기는 것을 주저하자 여성장애인이 먼저 이렇게 안으라고 손을 내밀어줘 승용차에 태우고 다시 버스로 이동해서 전쟁기념관 관람 등 봉사활동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30대 여성지체장애인의 환해진 모습을 보고 영원히 봉사인의 길을 걷으리라 다짐했다.
그 후 로타리클럽에서 임원, 총무, 부회장 거치면서 현재의 회장까지 이르렀다.
로타리클럽에서는 그 밖에도 남동구 독거노인 생필품봉사, 조손 가정 생필품 전달을 할 뿐 아니라 연수구 평화의 집(뇌성마비로 거동 못해 도와주지 않으면 밥도 못 먹고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 수용시설)에 20년간 생필품을 제공하고 청소년후원봉사, 집수리봉사 등도 한다. 클럽차원에서 고교생(인터렉트)후원 35명에게 년 1천만 원, 대학생 1명에게 3백만 원을 장학금으로 전달하고, 이외에 다른 고교생 2명에게 각각 1백만 원씩을 지원한다.
회장으로 있으면서 용현동 거주 독거노인 집수리를 해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김치를 필요로 하는 뇌성마비협회 회원들에게 김장봉사를 하려고 했으나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후임 회장들이 할 때는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김 전무는 사람은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돈은 살아가는데 수단일 뿐이며 너무 돈에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는 요즘 시대를 보면서 더욱더 돈에 마음을 내려놓고 봉사를 하고 나면 항상 자부심이 생긴다고 후배들에게 경험담을 지겹도록 말해준다. 지금은 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서 봉사하게 된다고 한다.
김 전무는 인천대 행정대학원 총동문회 제 7. 9. 10대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학교발전기금 음악회도 개최해 4억∼5억 원을 모금한 적도 있고, 행정대학원 동문회 사무실이 없었던 7대 사무
총장 때 전달수 총동문회장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사무실을 마련한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생활신조라면 봉사와 더불어 사는 삶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에서나 봉사활동에서나 항상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김 전무이사의 삶에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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