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에 ‘한국기술사의 날’ 5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이공계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인력
들중 국가자격시험을 걸처 기술사자격을 국가로부터 부여받고 최고고급기술자로들 활동하며 반세기를 맞은 것이다.
대한민국 산업경제발전에 이들만큼 그 공로와 족적을 큼직하게 남긴 집단도 많지 않다. 경제발전의 토대가 됐던 국토의 모든 기간산업은 이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이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자신이 할 일을 아는 것이다. 어느 한 집단이 이정도의 연륜을 가지고 있다면, 그 안의 사람은 필히 집적된 역량을 가졌을 것이다. 기술분야 최고의 명예인 ‘과학기술훈장’을 받은 (주)이산의 정춘병 부사장이 그런 인물이 아닐까. 그는 기술사 탄생 50년 세월의 귀감(龜鑑)처럼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행하는 사람이었다.
가치를 자랑하지 않고 내면화해서 더 깊어지는 사람
(주)이산의 정춘병 부사장은 32년 동안 건설전기설비분야에 종사해 온 전문가이다. 그간 거쳐 온 이력들을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그의 행동반경과 지인의 범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전기설비기술사, 전기응용기술사, 건설사업관리전문가(CMP), KCVS(Korean Certified Value Specialist) 등은 기술전문가로서 그가 획득한 자격들이다. 국방부·국토해양부 등의 정부기관과 경기도 각 지자체, 한국건설기술진흥원 등 굵직한 공식협회 등 20여 곳이 넘는 곳에서 자문위원 역할을 하고 있다.
전력·전기관련 학회에서도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기술사회 부회장의 명예도 있다. 그가 거쳐 온 굴지의 건설·토목기업들도 있다. 14년 넘게 명지대 전기공학과에서는 후학들을 가르쳐 왔다. 숨이 가쁜 이력이다.정춘병 (주)이산 부사장과 인터뷰를 가진 날은 ‘과학기술훈장 ’수훈 전날로 그의 수상 소식이 주변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의 이력에는 당연하게도 수많은 축하 전화와 수상식장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하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그래서 오히려 인터뷰가 간헐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굳이 말로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그의 인품을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걸려오는 전화마다 그는 특유의 낮고 단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별스럽게 한 일이 아니다’라는 듯이 담담하게 응대했다. 정병춘 부사장의 길지 않는 대답으로 미루어, 수상식장 참여의사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내용들이 꽤 많았다. 축하 전화에 그는 흥분하지도, 내세우지도, 그렇다고 짐짓 겸손해하는 인간적인 위선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인 (주)이산에도 그날에야 비로소 알렸다고 한다. 딱, 자신이 걸어온 길과 그것을 통해 세상이치를 깨달은 사람의 정중동(靜中動)이 있었다. 연륜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32년간의 건설 전기설비분야 종사, 가장 고생한 것이 가장 애착이 가
정춘병 (주)이산 부사장은 지난 1978년부터 업계에 종사해왔다. 첫 직장은 국제건설종합(주)였다. 중동에 한참 건설 인력이 파견돼 우리나라의 건설 능력을 대내외에 알리던 때이기도 했다.“의욕이 엄청난 때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졸업하고 첫발을 내디딘 때었고, 나라에서도 한참 해외 건설 붐이 일 때였거든요. 그중에서도 82년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하수처리시설 공사를 진행했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척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공사에 참여한 것 중 가장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예술가들의 작품이 제한된 공간이나 특정한 애호가들에게 보여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건설·토목·건축 분야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개방된다. 전문성을 가지고 참여해 특별한 하나의 형태를 창조해냈다는 면에서 기술사들도 자신들의 참여 프로젝트결과물을 ‘작품’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정춘병 부사장이 참여한 작품들을 일반이 알 수 있는 목록으로 몇 가지만 정리해보면, 63빌딩옆의 주상복합 건물인 리버타워, 목동 방송회관, 대구경찰청, 제천산업고등학교 전신인 제천광산공고 교사 등의 그가 꼽는 대표작이다.
전기설비분야 설계ㆍ시공, 신기술 개발, 설계 표준화 정착 등 기여
전기설비는 정춘병 부사장의 전문 분야다. 35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가 설계ㆍ시공한 프로젝트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공동주택․업무시설 및 산업시설 건설사업, 상하수도 개량 정비 및 신․증설사업, 도로 공항, 송전설비 및 환경․조경 조성사업’등과 같이 그가 참여한 프로젝트의 분야를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그중 특히, 건축물 3차원 설계기법인 BIM(건설정보모델) 시스템 구현을 위한 Library 개발․보급을 주도적으로 수행해 설계기술 발전과 선진화를 이룬 점은 특별한 상찬이 필요할 듯싶다.
한국전기설계협의회의장과 한국건축전기설비기술사회장으로 재임할 때 이룬 쾌거다. 건축물 설계를 할때 2D 캐드에서 구현되는 정보를 3D 입체설계로 전환해서 가상세계에서 미리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해 봄으로써 실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기술이다. 견적․공기․공정 등 전 과정의 모든 정보를 Data로 제공함으로써 공기단축, 원가절감 및 공사품질 향상 등의 효과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3차원 설계기법인 BIM(건설정보모델) 시스템이다.
그가 수장으로 있던 양 단체 전문가와 한국전력기술인협회가 공동으로 시스템구현에 필요한 Library를 개발해서 보급할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우리나라 건축전기설계기술을 한 단계 선진화하는데 전기적 역할을 했다. 원가절감과 공사품질향상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이번 포상에 앞서 지난 2005년 정춘병 부사장에게 산업자원부 장관 표창장이 수여된 것은 이런 중요한 활동에 대한 정부의 작은 치하였다.
산업발전하려면 현장의 기술사들 간과하면 안 돼
정춘병 부사장이 한창 현장에서 직업적 열정을 불태우던 때는, 바야흐로 대한민국이 경제선진국을 목표로 국내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와 건설이 대규모로 일던 시기였다. 자신들이 일군 국토의 터전을 회상하는 건설·토목분야 원로들은 의욕과 패기로 일했던 그때를 종종 아쉬워한다. 정춘병 부사장도 그때의 투지와 호황을 살짝 되돌아보았다.“70년대는 경제개발이 한창인 시기였지요. 그때 기술사들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직접 오찬을 나누며 의견을 나누고 건의를 할 정도로 대우를 받기도 했고 그만큼 중요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작금의 달라진 풍토에 정춘병 부사장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요즘은 현장에서 정밀한 기술을 발휘하는 사람들보다 이론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더 우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같은 기술사 경력이 오래된 사람보다 교수직에 있는 사람을 더 선호합니다. 기술사들이 소외되고 있는 감이 있어요.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기술사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학교의 이론과 현장 기술간의 조화로운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학문적 이론과 현장에서의 실제가 어느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평소의 가치관은 정춘병 부사장의 자기완성 노력에 큰몫을 했다. 그는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문적 성취가 이면서 현장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기술사이다. 이 둘을 겸비한 기술사들은 많지 않다. 자연히 기술사와 관련한 공적 이슈가 생길때마다 그가 의견을 개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춘병 부사장은 ‘기술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지금 국회에 기술사법 개정안이 오랫동안 계류 중입니다. 2월 임시국회에서도 처리하지 못했으며 4월이 되면 분과위원들이 바뀐다고 합니다. 6월 정기국회로 넘어가야 할 판인데 또 지자체 선거가 있어 또 뒤로 밀릴까 걱정입니다. 기술사들이 몇 날 며칠 밤을 새며 준비한 입법안들인데 안타깝지요.”기술사들의 올바른 대우와 권익, 그리고 그들이 공헌할 산업분야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많아보였다. 자신이 인생을 건 분야에 대한 짙은 애정으로 보였다.
14 년간 명지전문대 전기공학과 겸임 교수로 후학 배출
정춘병 (주)이산 부사장은 명지전문대 전기공학과에서 98년부터 최근까지 후학들을 가르쳤다. 현장에서 전문적인 종사와 병행하면서 겸임 교수로서 꾸준한 강의를 한다는 것은 보통 자기관리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겸임 교수는 말 그대로 학교에서 권리보장이 안되는 자리입니다. 댓가를 생각하면 오래 할 수 없는 자리죠. 보람입니다. 후배들에게 저의 지식을 전수하고 그들이 다시 현장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는 흐뭇함이지요.”
그동안 워낙 많은 학생들을 배출해서 잘 기억하지 못하는 수도 있는데, 현장에서 같이 일을 하다 자신이 정춘병 부사장에게 배운 몇 학번이다, 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제자들을 가끔 만난다고 한다.그는 깐깐한 교수는 아니지만 세 가지는 철저하게 지킨다고 한다.“강의에 불성실하게 출석하는 학생들은 학점 안 준다고 공표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요즘 학생들이 정말 싫어하는 일일 텐데 리포트는 반드시 자필로 쓰게 합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절대 자신의 지식이 되지 못합니다.
자필 리포트를 받아보면 요즘 학생들의 글씨체가 정말 엉망입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에서 자판만 두드렸지 손 글씨를 쓸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리포트를 베껴오는 것도 절대 용납 안 합니다. 그러면 절대 자신의 지식이 되지 못합니다.”스스로의 신분과 할 일을 인식하고 그것의 기본에 따르는 원칙은 정춘병 부사장이 걸어온 길과 매우 유사해보였다.
배운 것이 이것뿐이고 계속 일한다
건설전기분야의 모든 일을 섭렵한 정춘병 부사장이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족적을 남기고 싶은 작품이 있느냐고 물었다.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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