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원 김영철 대표
한국에 맞는 국물 넣는 식품포장용기 최초 개발, 업계 신화 이뤄
장학금·봉사활동·후원금, 소외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 앞장서
사회적으로‘입지전적인 인물’,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곧잘 불모의 환경 혹은 무에서 유를 일구어 낸 사람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비교적 풍파 없이 순탄한 일생을 지낸 사람들은 행운이지만, 보통 사람의 인생엔 크든 작든 어떤 형태로든 역경이 있기 마련이다. 같은 역경에 직면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은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고된 시련을 겪어 본 사람은 이전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자기만의 안전한 철옹성을 쌓고 세상에 인색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한때의 힘들었던 경험이 삶의 깨달음이 되어 나 이외의 주변인, 언제든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 타인의 처지에 대한 공감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15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한 (주)지원 김영철 대표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성공한 사업가인 그는 정열적인 봉사활동가이기도 하다.
국내 대표적 식품포장용기 제조업체
사람들의 일상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복잡한 현대사회의 일과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포장음식이 성행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다. 하루에 소비되는 음식 중 아주 많은 양이‘포장’혹은‘take-out'이란 이름으로 포장 용기에 쌓여 식당이나 음식매장 밖으로 나간다.
포장 죽의 대유행을 일으킨 국내 유수의 업체인 B 매장에는 투명한 친환경 포장용기에 갖가지 죽이 담겨 손님 손에 전해진다. 하루에 소용되는 양이 엄청나다. 이 익숙한 포장용기를 만들어 내는 곳이 (주)지원이다. (주)지원은 현재 전국 약 50여 개 업체에 다양한 포장용기를 공급하며 약 2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강소기업이다.
식품포장용기에도 역사가 있다. 1990년 초반을 기준으로 이전에는 주로 일본에서 수입된 포장용기에 마른 음식만을 담아냈다면, 그 이후에는 한국인의 음식문화에 맞는 국물을 포장할 수 있는 용기가 개발되어 음식매장에서도 본격적인 사용이 이루어졌다. 그 전환점을 마련한 장본인이 바로 (주)지원의 김영철 대표다.
김영철 대표는 ‘지원’이라는 사명에 ‘땅을 튼튼하게 딛는다.’라는 의미를 두었다. 인간 세상의 근본은 땅이고, 그 근본을 지키는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주)지원을 경영하는 것 이외에 김영철 회장의 대외적인 활동을 일별만 해도 그가 얼마나 이 신념을 초지일관 잘 지켜나가는지를 알 수 있다.
“기업의 이익은 사회에서 구매를 해주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기업은 또 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돈 150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
김영철 대표의 외모는 얼핏 선대로부터 부유함을 물려받은 경영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온화함의 배경에는 굴곡 있는 인생 경험을 통해 축적된 삶을 바라보는 여유에서 비롯된 만만치 않은 저력이 있다. 시골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서울로 올라와 힘든 청소년 시절을 보낸 그였다.
김영철 대표는 우연한 계기로 포장용기 업계에 발을 디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을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이 일손을 덜어주라며 한 곳을 소개해 줬다.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와 소독저를 한 세트로 포장해 파는 곳으로 주로 아주머니들과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해로, 운 좋게도 올림픽 공식지정업체 여러 곳에 납품하면서 특수를 맞게 되었다. 김영철 대표는 내 일인 듯 좋아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돈을 벌기 시작한 사장은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운한 마음에 그곳을 나와 1년을 놀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줬는데도 돈 앞에서 의리를 배반당하고 나니 ‘내 것’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뭘 할까? 아이템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역시 배운 것을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더군요. 전세를 사글세로 돌리고 겨우 중고차 하나를 사서 직원 없이 공장에서 포장용기를 사다가 혼자서 팔러 다녔습니다. 그때 모두 투자한 돈이 150만 원이었지요.”
당시 음식포장용기를 생산하던 곳은 국내에 단 세 군데밖에 없었는데 대부분 일본식 제작을 모방한 것이었다. 김영철 대표는 도시락 용기영업을 하면서 틈새시장을 발견했다. 일본 것을 그대로 가져다 제조하는 것이 아닌 독자적인 포장용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구하는 사람에게는 통로가 열리게 마련일까. 김영철 대표는 업계가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감지했다.
“우리나라 음식은 국물이 많은데 그것을 담을 만한 포장 용기가 없었어요. 혼자 궁리를 하고 모형을 떠서 공장에 가서 만들어 달라고 해서 샘플을 찍어 내었습니다.”
차츰 도시락을 포함해 물병, 다른 필요 용기 등 금형을 찍을 일이 많아져 한 기계 공장의 2층을 빌려 제조를 시작했다. 초창기의 어려움이 많았지만, 워낙 아이템이 좋은지라 매출 성과가 꽤 빠르고 좋았다. 하지만 IMF가 닥쳤다.
“돈을 한창 벌고 있었을 때였는데 IMF가 닥친 데다가 직원이 물건을 빼돌리면서 부도를 맞았어요. 엄청난 빚을 지었지요. 부천에 있던 공장을 정리하고 지금의 경기도 광주로 내려와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도 이자까지 철저하게 갚는 정신
그런데 다시 시작하자는 그의 의지 외에 힘을 보탠 것이 있었으니, 같이 일하던 나머지 직원들이 회사와 함께하겠다며 장거리인 광주까지 따라와 일을 계속한 것이었다. 힘을 얻은 김영철 대표는 3년 만에 부도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에는 창업 당시부터 함께 해온 20년 된 직원들이 많아요. 당시 저를 따라오면서 급여도 반납하고 같이 고생해서 다시 일구자고 다짐한 직원들이 오늘의 (주)지원을 있게 해 준 장본인들입니다.”
흔히 부도가 나면 사정을 호소해 금액을 탕감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영철 대표는 원금은 물론 상환할 때까지 이자 한번 빠뜨리지 않았다. 자신이 사업을 해오면서 소기업을 운영하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보아왔고, 자신이 제대로 갚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 또한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마음이었다.
김영철 대표의 그러한 정신은 (주)지원을 경영하면서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 상생의 신조다. 관련된 사람들의 생계가 달려있는 만큼 자신이 세금을 낼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이익이 안 남아도 좋다는 기업관을 가지고 있다. 돈은 못 벌어도 기본적으로 모두가 밥은 먹을 수 있도록 살아가자는 그의 태도가 가진 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하는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린다.
“요즘 우리나라에 돈 많은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교류를 해봐도 그런 사람들한테는 국 한 그릇 얻어먹은 적이 없어요. 오히려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돕습니다. 잘 버는 사람들이 돈을 써줘야지요. 그래야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겠어요.”
품질과 환경이 최우선 그리고 납기일 준수
김영철 대표가 기업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온정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기업이 저절로 잘 될 리는 없다. 당연히 (주)지원은 제조회사로서의 기술력 향상에 무엇보다 힘쓴다.
“거래처에 항상 물건이 안 좋으면 우리가 손해를 감수할 테니 모두 반품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납기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꼭 지켜 줍니다. 우리 회사는 생산 용기가 다양해 금형을 바꾸어 제작하려면 납기일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주)지원의 포장용기는 다른 업체들에 비해 조금 가격이 비싼 편이라고 한다. 품질에 대해 철저해질수록 단가가 올라가는 것은 정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업계 선두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그 품질과 납품에 대한 신용 때문이다.
현재 (주)지원은 일반 포장용기부터 밀폐형 덮밥도시락, 얼음빙수용기, 반찬용기 등 다양한 종류의 용기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현장에서 김영철 대표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품질력과 청결한 작업환경이다. 품질경영시스템인 ISO9001, 환경경영시스템인 ISO14001을 인증받음은 물론 클린사업장인증 및 위험성평가 인정, 클린룸 설치 환경개선 등의 노력과 생분해되는 환경친화적 용기를 개발해 상용화하고 있다.
제조 경쟁력을 높이고 불량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직원교육은 물론 협력업체 직원들에게까지 정기적으로 경쟁력 프로그램을 교육하고 있다. 임직원들에게는 조직관리 프로그램인 카네기 CEO클럽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생명 존속력은 정직한 기술력과 신용임을 알기에 김영철 대표는 한때 생산량이 줄자 당시 협력업체들이 힘들어 할 것을 염려해 자신의 공장 가동을 대신 멈추기도 하는 자기희생을 보이기도 한 것이다.
사업 이익은 해당 사업에 재투자해야 안전
부도를 딛고 20년간 안정적으로 운영해온 회사 경영의 원동력을 묻자 김영철 대표는 가장 기본이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해법을 내놓았다.
“어떤 사업에서 이익이 나면 다시 그 사업에 투자하면 안전합니다. 욕심을 부려 다른 사업에 무리해서 투자하니 어려워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영철 대표는 궁극적인 매출액을 1,000억 원 정도로 목표하고 있다. 현재 이천에 제조공장을 신축하기 위한 부지를 마련하고 4층 규모의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운송비 절감과 제반 부대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장에는 협력업체들도 입주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음식을 담는 용기를 제조하고 있지만, 저희는 사람들이 먹을 식품을 만든다는 자세로 일합니다. 깨끗하게 최선을 다해 생산하자는 마음을 항상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구매 고객에게서 불만사항이 접수돼 한밤중에 강원도까지 몸소 달려가 상대를 놀라게 한 전력이 있는 김영철 대표에게는 당연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렇게 달려간 강원도에서는 결국 구매고객의 잘못으로 판명돼 사과 막걸리를 받아 마셨다고 한다.
김영철 대표는 현재 자녀들이 사업을 돕고 있기는 하지만 능력이 확실하지 않다면 굳이 회사를 물려줘 위태롭게 만들 생각이 없다고 한다. 대신 같이 일하는 임직원들에게 배당금을 늘려 50%까지 나눠줄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업만큼 열정적인 봉사활동
국제로타리 3600지구 광주클럽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광주시부회장, 광주시 충북향우회장, 경기광주하남카네기 CEO클럽 11기 초대 회장, 경화여자EB고등학교 지역운영위원회부의장 등을 역임하거나 수행 중인 김영철 대표의 지역사회에서의 이력은 지면에 적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을 정도다. 김영철 대표는 지역의 많은 단체에 적을 두고 활동하면서 장학금지급, 결식아동 돕기, 이재민 돕기 수시지원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국제로타리 3600지구 광주로타리클럽회장을 역임했던 작년에는 3600지구가 전 세계 220개 국가에서(회원수 대비) 개인 기부 부분에서 세계1등을 하였고 지구에서 40년차 최우수 대상을 수상하였다
“요즘은 봉사도 경쟁처럼 남들에게 보여주면서 해야 돼요. 그래야 본보기를 만들 수 있고 더 많은 동참자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김영철 대표는 추후 개인의 기부를 넘어 회사 차원에서 장학재단을 만들어 연간 이익의 일정 정도를, 더욱 많은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여담으로, 김영철 대표의 부인 이옥순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이수자다. 최근에 광주아리랑을 신곡으로 발표하기도 한 이 명창은 부군인 김영철 대표와 함께 로타리클럽 영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각종 행사에서 공연한 수익금을 역시 봉사활동에 보태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최초로 광주로타리클럽 영부인회에서 전 회원 100% EREY를 기부하여 RI회장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그들에게서 정직하게 성공한 사람들의 진정한 모범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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