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을 놓고 벌이는 북미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의 방북 의사를 밝혔으며 북한 쪽에서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양측 모두 정확한 목표와 의사를 갖고 있지만 핵무기 리스트 신고와 종전선언을 두고 벌이는 첨예한 공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미국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회의적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에 혜택을 주고 국제사회의 제재 이행 의지가 약해진다. 문 대통령은 추가적인 경제적 개입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학자연맹(FAS) 군사분석가 애덤 마운트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 대해 완고한 태도를 보여왔다. 어느 쪽에서도 돌파구가 있을 것 같지 않다”며 비관적 의견을 전했다.
완고한 것은 북한 뿐만은 아니다. 미국 측에서도 비핵화 단계에서 핵무기 리스트 신고 등의 일련의 절차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3일 한국 국민에게 보내는 73주년 광복절 축하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에 대해 긴밀하게 공조해나가기를 계속해나가는 가운데 철통같은 동맹에 헌신하고 있다”고 말하며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북미 양국이 이처럼 치열하게 우위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은 양쪽 모두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 종전선언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만약 미국 측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얻어내고 대북제재 해제와 경제적 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선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더 이상 협상이 불가능해진다. 핵무기와 핵시설이 북한에게는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그 끝에는 중국도 참여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 측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 체제 보장과 경제 개방·성장에 지원을 받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중국도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사를 표현했다. 지난 12일 중국은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당사자이자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로서 이를 위해 마땅한 역할을 발휘하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까지 4자가 매달려 있는 줄다리기에 북한이 패배할 경우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반면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국 내 다른 세력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정상회담을 열고 협상을 시작한 이후로 꾸준히 ‘북한에 끌려 다니고 있다’거나 ‘속고 있다’는 언론 반응을 받아왔으며 반트럼프 세력들에 의해 정권 자체에 대한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명명백백한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 현재로선 이 성과는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와 ‘핵 신고’라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 문제 역시 북한에 종전선언을 쉽사리 내줄 수 없는 이유이다. 한국 정부와 미국 측은 반복해서 주한미군이 북한 관계 개선과 관련 없는 독립된 사항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 측에서는 주한미군에 대해 자국 체제에 대한 위협이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중국과 패권다툼을 벌이는 현 상황에서 주한미군은 아시아에 대한 미국 통제력의 거점 역할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북한 군사 충돌에 대한 억지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에서의 미국 패권 전략의 하나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에 밀착돼 정치·군사적으로 공동의 목표 아래 행동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미국 입장에서 주한 미군 철수나 군축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종전선언이 실현되면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도 줄어들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분명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지 않고는 종전선언을 내어 주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사고의 전환이 아니면 문제가 풀리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미국과 북한이 결과적으로 선언 대 선언 교환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핵무기 및 핵시설 리스트를 신고하고 이와 동시에 미국은 종전선언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타협하는 것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역시 동시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문 특보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은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는 것에서부터 구체적인 행보를 보여야 하고 미국은 당연히 종전선언에 응해야 한다”며 “미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미사일 전체 리스트를 신고하기 보다는 북한이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중단하고 신고·사찰을 허용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게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양국이 모두 한 발씩 동시에 접근해야 현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타협은 구체적 사안에 대해 합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뤄질 수 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은 이 같은 문제를 상당부분 구체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해결의 단서는 우리 정부에 있다.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는 한국이 북미 양국의 협상 지점을 설정해 주고 설득할 수 있는 외교력을 발휘한다면 양측의 극적 타협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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