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 이종인 작가
살아온 인생과 그 철학으로 해석한 새로운 미감을 판각에 입힌다.
나무판을 두드릴 때마다 나는 연기가 되어 나무판 속에 들어가 돌아다니는 것 같아
지난 7월 말‘2014 광장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난 청강 이종인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아주 잠깐 판단 부재에 빠졌다. 실물을 대하기 전 팸플릿을 보면 유화 같아 보이고, 정작 실물을 대하니 금속공예인 줄 알았는데, 재료는 나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종인 작가는 나무를 소재로 금속성의 느낌이 나는 회화를 표현하는 것이다. ‘판각화’라고 명명하는 것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종인 작가는 그동안 기능 작업으로 여겨온 판각(서각)을 미술영역으로 끌어들여 입체회화의 수준으로 지위를 확고히 하겠다는 예술적 야심을 가지고 있다.
나무판 속에서 고전을 살려내고 싶다
청동으로 새겨진 글자들의 집합이 서너 살 아이의 키 만큼 한 높이로 서로 엉켜 마치 절대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겠다는 의지를 다짐하듯 단단하게 서로를 껴안고 있다. ‘사는 게 별거 있나요...’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문장들이다. 청동이 부식됐을 때 생기는 박하 색들이 글자 가장 자리에 입체감을 더한다. 누가 봐도 금속 공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나무 판각이다.
좌우로 2m쯤 되는 캔버스에 해바라기들이 활짝 핀 채로 빼곡한 물결을 이룬다. 해바라기 씨 하나하나가 진짜인 듯 정교하다. 노란 잎사귀들이 화면에 물결치듯 활력을 부여한다. 짙고 선명한 색들이 마치 유화 같다. 하지만 역시 판각화이다. ‘행복 가득’이라는 글씨가 판각돼 있는 명태는 멀리서 보면 한지에 그린 수묵화 같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뒤에 각질화 된 나무껍질이 보인다. 애초 나무 모양을 교묘히 손질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 범종각의 나무로 조각된 목어가 떠오른다. 목탁도 물고기에서 유래되었고,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듯이, 불철주야 도를 닦으라는 뜻의 목어/..이를 두드리는 것도 수행자의 잠을 쫓아 정신을 차리라는 뜻같이, 자아를 꾸짖는 듯한 작가의 불면면학(不 眠 勉 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머리가 용인 목어는, 해탈의 경지로서의 자유로움도 느껴지게 한다. 그래서 청강 이종인 작가에게 어변성룡(魚 變 成 龍)의 작품을 기대한다. 이 작품들이 각기 다른 장르의 미술을 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소재는 나무다. 모두 판각화 다.
“난 서각에서 비롯된 판각이 미술 영역에서 기능적인 답사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의 입체회화라는 확고한 지위를 획득하게 하고 싶다.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반입체 에 내가 살아온 인생과 철학의 필터로 걸러내어 새롭게 해석하고 싶다. 이건 마치 신고전주의 같은 것이다.”라고 지난 4월에 열렸던 개인전에서 이종인 작가는 진지하게 말한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이종인 작가의 궁극적인 예술적 구도가 판각에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나무에 조각을 하고 그 다음 아크릴로 채색한다. 말하자면 그의 예술 행위는 부조다. 그런데 회화 느낌이 물씬 난다.
동양에서 제일 큰 일신석재 연구실에서 미술대학으로
이종인 작가는 군을 재대하고 석재회사에 취직해서 돌조각을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80년대 초반의 시절이었는데, 석재 회사의 연구실에 취직을 해서 조각을 배웠어요. 연구실에는 홍대 조소과 대학원 출신들이 함께 있었는데, 제가 의견을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겁니다. 제가 정식으로 미술수업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은근한 불신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배워야 겠다 는 생각에 야간대학 금속공예과를 다녔지요.”
공부와 생활을 병행해야 했던 그는 낮에는 석재회사에서 조각 작업을 하고 밤에는 금속공예를 배우는 형설지공을 했다. 졸업 후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석재회사 연구실에서 18년 동안 장기근속을 했다. 그에게 조각의 기본을 알려준 곳이었다.
기념비적 불상 만들려다 힘들었던 시절
이종인 작가는 불교미술에 몰입했던 적이 있다. 그 유명한 ‘국보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같은 크기로 조각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실물 앞에 수십 번을 가서 관찰했다. 반가사유상 조각은 지금도 그가 제일 아끼는 작품이라고 한다. 지인과 알고 지내던 스님이 반가사유상을 보고 매혹되어 불사를 하는데 대웅전 불상을 조성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석굴암 부조가 뒷배경 으로 들어가고 석가모니불좌상이 2미터50에 달하고, 좌우 입상 작업을 디자인하여 야심찬 기획을 하여 흙작업(모형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종인 작가는 이 작품을 문화재적 모뉴멘트(monunent)의 완성도를 가지겠다는 야망을 가졌다. 그런데 스님이 입적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생겼다. 조각을 계속하기 위한 기반은 물론 생활자체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자신의 작업실을 가지는 것이 당시 가장 큰 꿈이었는데 작업실을 잃어버리는 때이기도 하다. 그때의 여파일까. 이종인 작가의 판각화 작품 중에는 불교적 색채가 보이는 작품들도 꽤 있다.
이종인 작가는 자신이 작업에 몰두하는 자세를 ‘연기’에 비유한다. ‘지금 매순간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에 행복하자...그리고 사라져버리자.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하지만 그 순간까지는 순수와 아름다움을 잃지 않게 다듬고 깎자. 나무판을 두드릴 때마다 난 연기다, 나는 나무판 속에 들어가 판 속을 돌아다닌다.’라고 그는 읊조린다.
수십 번의 아크릴 물감을 칠한 후에야 비로소 나오는 색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종인 작가의 판각화 는 회화 같은 느낌을 준다. 채색이 진하고 두터운 느낌을 준다. 그가 판각한 해바라기2(515mm×1,000mm )에는 이종인 작가의 독특한 작업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배경의 짙푸른 남청색이며 주황과 노랑이 섞여 출렁이는 해바라기 잎, 그리고 알갱이들의 질감이 선명한 해바라기 씨들. 이런 색감과 도드라진 생생함을 얻기 위해 그는 부조로 조각한 목각 그림에 인내심을 가지고 수십 번에 걸쳐 자신이 원하는 색감이 나올 때까지 간격을 두고 칠을 한다. 그러면 아크릴 물감이 나무에 서서히 배어들면서 유화 같은 느낌의 판각화 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처음 이종인 작가는 작품의 소재를 돌에서 나무로 옮겨갈 때 서각부터 시작했다.
“부조작업은 저부조, 중부조, 고부조 등 각도의 변화에 의해 입체감이 교묘하게 나타납니다.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지요. 글씨만 새기는 작업에는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표현의 확장을 위해 판각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종인 작가의 판각 작품에는 고구려 수렵도,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도 있다.
“기존의 작품을 모아 판각한 것을 보고 지인들이 왜 이런 것을 하느냐, 네가 디자인을 해야 독창성이 살지 않느냐, 라고 많이 질타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도 저의 판각화의 예술적 지평을 넓히는 일종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업들은 판각화 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체험을 시킬 때도 유용한 모사품도 되구요.”
독일로 작품 활동 떠나
청강 이종인 작가는 8월 19일부터 한 달간 군립청송야송미술관에서 초대개인전을 연다. 내년 4월쯤 2015 광장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한 후에는 독일로 작품 활동 겸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스페인을 무대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조각가 황대렬 작가와 3년 정도 의기투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판각화 세계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한 여행이다. 그리고 나서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깊어졌는지 주목할 일이다.
“창칼로 망치로 두드리며 작업하다 보면 몰입이 돼서 다른 것은 모두 잊게 돼죠. 집중한 만큼 작품에 대한 애착도 느끼고 그만큼 내 것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이종인 작가가 원하는 색감을 내기 위해 수십 번의 아크릴 물감을 나무에 칠하듯 그의 작품 세계도 그러한 경지로 오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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