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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6:3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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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카루소 장광효 대표

대한민국 남성복 패션의 개척자

카루소 장광효 대표

카루소 장광효 대표


대한민국 남성복 패션의 개척자

시대와 교감하며 시대를 선도하는 독보적 경쟁력

디자인을 통해 삶을 디자인하다

트렌드의 소비 주체로서 남성들도 멋을 알고 자신의 스타일로 멋을 낼 줄 아는 시대다.

그만큼 남성복에 대한 위상이 높아지고 관심도 커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척박했던 남성복 패션분야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키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낸 대한민국 남성복 패션의 대부가 있다. 바로 브랜드 카루소의 대표 장광효 디자이너다

한국 디자인의 품질력이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에 그는 당당히 해외시장을 개척했고 한국 남성복 시장을 확대하며 남성복 패션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패션계의 거장 장광효 대표의 인생은 여전히 담백한 수묵화처럼 더 깊은 향기를 수놓고 있다.

창조적인 패션문화를 탄생시키다

불모지와도 같던 대한민국 남성복 패션의 개척자로 들어 선 지 어느덧 30년.

장광효 대표는 지난 30년간 남성복 브랜드를 선도하며 창조적인 패션문화를 탄생시켜왔다.

화려함과 강렬함으로 때로는 은은한 클래식으로 그의 패션은 시대와 교감했고 예술의 깊이를 더했다. 주먹구구식으로 복장학원을 거쳐 패션계에 입문하던 시절, 패션 전공으로 프랑스 퐁텐블루 예술학교 유학까지 마친 장광효 대표는 귀국 후 국내 유명 기성복업체에 들어갔지만 똑같은 형식의 옷을 짓는 익숙함에 안주하기보다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펼칠 수 있는 개인 숍‘카루소’를 열게 된다. 성악을 전공한 아내의 제안에 따라 지은 브랜드 이름은 이탈리아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의 이름에서 따온 것.

장광효 대표는 1987년 '카루소' 설립 후 남성복 디자이너 최초로 '88년 서울올림픽 기념' 디자이너 컬렉션(제1회 뉴웨이브인서울)을 개최하며 한국 남성복 시장에 파격적인 디자인과 비전을 제시했다. 또한 1993년에는 국내 최초로 '파리 남성복 컬렉션'에 6회 참가하여 한국의 남성복을 세계에 알리는 일등공신이었다. 2012년에는 베이징 '차이나패션위크' 한중일 특별 패션쇼를 개최하여 중국에 한국의 남성복을 알리는 등 한국 디자이너의 중국시장 개척에도 힘쓰고 있다.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마케팅에 힘을 실어 10년간 백화점 입점의 결실을 거두기도 했던 장광효 대표는 지금의 서울 패션위크의 전신인 쇼를 처음 선보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스파(SFAA) 컬렉션부터 서울 컬렉션, 현재의 서울 패션위크까지 약 50회 이상의 컬렉션을 개최하며 한국 남성복 성장에 기틀을 다졌다. 시대를 계승하는 남성복의 전통성과 무게감 있는 성장의 뿌리가 그에게서 태동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원천

30년 패션과 인연을 맺어 온 장광효 대표는 지나온 세월이 엊그제 같다며 소회를 전했다.

“앞 만 보며 한길만을 달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하니까 그만큼 지치지 않고

대중에게도 사랑받는 영역으로 키워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온화한 표정 속에 그만의 남다른 카리스마가 풍겨난다. 그것은 바로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자로서의 기개(氣槪)다. 실험적인 옷과 화려한 옷을 선보이는데도 거침없었던 장광효 대표는 2000년대 초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자신의 브랜드에 빗장을 풀고 대중과의 호흡에 한발 더 다가섰다. 홈쇼핑에 진출한 디자이너 1호가 된 것이다. 냉소적인 주위 시선도 있었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후로 다른 디자이너들도 홈쇼핑 진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남이 안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편견을 개의치 않는 장광효 대표의 자유분방함은 당시 양복과 넥타이로 통하던 남성 정장의 통념을 깨고 편안한 멋스러움으로 개성 넘치는 남성미를 연출하며 남성정장의 변화를 예고했다. 먹고 사는 일에 쫒긴 채 패션은 사치스러운 동경으로 치부되던 때에 희망과 꿈을 담아 낸 그의 패션은 새 시대를 갈망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탈출구였으며 뜨거운 열정의 향연이었다.

“30년간 컬렉션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해왔다. 직접 디자인한 옷을 모델에게 입히고 조화로운 음악을 선정해 수많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15분간의 쇼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한 편의 드라마다. 내 혼을 다 쏟아 부어서 하기 때문이다. 쇼를 마친 후 박수 받을 때의 기분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벅차다”그의 컬렉션이 감동을 주는 축제의 장인 이유다. 수많은 패셔니스타와 유명 인사들이 컬렉션에 함께 했고 앞 다투어 그의 옷을 찾았다.

대구,부산,광주 등 전국에서 원하는 곳마다 그의 컬렉션이 개최됐다.

비록 당시 패션업계의 상황은 열악했지만 장광효 대표의 입지는 독보적이었다. 그 때의 파워는 지금까지도 디자이너 장광효 대표의 아성을 대변하는 한 축이 되고 있다.

성실함과 자기관리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다

“보여 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깨끗이 해야 한다고 여긴다.”신념과 도전으로 남성복 산업의 새로운 스토리를 펼쳐 오기까지 외도 없는 성실함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자신을 담금질 해 온 장광효 대표.

“연출은 해야 한다. 공식석상에 가게 되면 하루 전부터 준비를 한다. 나를 단정히 하고 호감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은 대우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품격 있는 옷을 입은 것처럼 사람에 대한 지혜와 예의는 장광효 대표가 늘 입고 있는 인격의 미덕이다.

“나 역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디자인을 통해 옷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도 디자인하게 된 것 같다. 유혹도 있었지만 한번뿐인 인생을 보다 의미 있게 살자는 마음가짐으로 순간순간을 달려왔다”

술·담배를 일절 하지 않으며 오직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바른생활 사나이로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다스려 온 장광효 대표. 디자이너들에게 있을 법한 잡기와는 무관한 대신 옷을 만드는 창조적인 끼는 누구보다 왕성한 그는 30년 지기 길동무가 되어 준 아내를 향해 늘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아내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그의 고백처럼 아내와 함께 여행을 즐기고 영화를 보며 독서의 사색에 빠져드는 평화로운 일상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창조적 본능은 숨결처럼 스며든다.

패션계의 어른은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 될 수 있어

“과거의 지나온 일은 하나도 내가 한 것 같지가 않다. 마음을 비우게 된다. 내 것이 아니다”척박한 대한민국 패션산업의 토양에 무수한 가능성의 씨앗을 뿌려 거목을 만든 장광효 대표는 오히려 자신이 한 일들에 대한 주위의 찬사에 대해 겸손해했다.

고인이 된 앙드레김 디자이너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아내와 함께 미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앙드레김 선생님과 만나 8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베일에 가려 있던 선생님의 진솔한 모습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고인의 빈소를 가장 먼저 찾았을 정도로 패션계의 큰 별을 잃은 장광효 대표의 슬픔은 컸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말하는 장광효 대표.

후배들과도 격의 없이 편안한 친구 같은 스승이 되고 싶다며 조언을 잊지 않았다. “남성복 분야에서는 선배가 없었다. 좋은 선배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임해왔다.

지금의 후배들은 정보도 많아서 내가 후배들을 위해 특별히 해줄 것은 없지만 열심히 하면그들이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해나가고 있다.”

장광효 대표는 디자인을 인터넷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성을 지적했다. 대신 음악도 듣고 여행도 다니면서 주위와의 교감을 통해 지식을 쌓을 것을 당부했다.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진짜 실력이 되어야 한다”본인이 제대로 알아야 그것이 진정한 경쟁력이 된다는 의미다.

또한 대가족이 불편하지만 가풍이 있고 문화도 있어서 어디에서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며 패션계도 어른들이 있고 선배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면 후배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며 선·후배간의 관계가 소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현대에서의 강함은 부드러움이다. 열심히 재밌게 열정적으로 살아라”

많은 꿈들, 옷을 디자인하며 해소

“내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저장되어 있어서 요리를 한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콘셉트로 할 것인가를 고민해 멋진 요리를 해내는 것이다.”

장광효 대표는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창조적으로 일하라고 권면한다. 또한 디자이너로서 실력 못지 않게 더 중요한 것은 인격임을 재차 강조했다.“사람을 본다. 작품이 좋다 해도 인격이 갖춰져야 성공도 할 수 있다”

장광효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히 여긴다고 말했다.“의사나 판·검사를 하고 있다면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의 많은 꿈들을 옷을 통해 해소하기 때문에 늙지 않는 것 같다”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다. 자신이 소장한 옷과 기증받을 수 있는 시대별 옷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상 등 대한민국 남성복을 정통으로 선보일 수 있는 의상박물관을 설립하는 꿈이다.

장광효 대표는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없는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또 흠 없이 그 명예를 지켜왔다. 이제 그가 남기고 싶은 박물관은 그의 존재를 오래도록 우리 안에서 기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흔적이 될 것이다.

예술로 삶과 소통해 온 남자 장광효 대표. 자신을 비워냄으로 더 아름다운 창조의 결실을 맺어가는 그의 행보가 패션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고 있다.

He is...

1989 서울지하철공사 유니폼 디자인

2003 한국패션브랜드 대상 수상

2006 ~ 2015 외환은행, 해양관리공단,

농협, 한국공항공사, 강원랜드 유니폼 디자인

2007한국섬유패션 대상 수상

2010 서울특별시 10인의 헌정디자이너 선정

2012 삼우당패션디자이너 대상 수상

2014 청와대 경호실 유니폼 디자인

2015 대한민국 섬유패션인 대상 수상, 코리아패션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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