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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 그녀에게 다가오는 선택의 시간(2)

특별기획 격동의 동아시아 리더십 탐구 ②

전편: 특별기획 격동의 동아시아 리더십 탐구 ①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 ‘철의 여인’인가? ‘권력에 취한 독재자’인가?
전편: 특별기획 격동의 동아시아 리더십 탐구 ①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 ‘철의 여인’인가? ‘권력에 취한 독재자’인가?

(제1편 링크)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 ‘철의 여인’인가? ‘권력에 취한 독재자’인가?

[1편에 이어] 어려서부터 똑똑했던 그녀는 승승장구하는 학창생활에 이어 공직 생활에서도 잘 나가는 여성이었다. 홍콩의 명문대라고 할 수 있는 홍콩대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녀는 1980년도 홍콩행정청에 들어가서 공직을 시작했다. 다만 그녀는 사회적인 활동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했다. 대학 1학년을 마친 그녀는 사회복지에서 사회학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이는 그녀 자신이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를 원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콩의 정부에 들어간 그녀는 요직을 두루 거치기 시작했다. 예산, 재무, 사회 복지부를 거쳤으며 개발국장에 이어 정무사장을 역임했다. 그녀의 활동은 초기부터 주변의 큰 인정을 받았다. 그 결과 영국의 명문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에 파견되어 개발 정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과 캐리 람 자료=데일리뉴스DB (그래픽 : 이가영 기자)
시진핑 주석과 캐리 람 자료=데일리뉴스DB (그래픽 : 이가영 기자)

그녀가 중국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바로 우산혁명 때였다. 2014년에 발생한 홍콩의 민주화시위인 우산혁명 때에 캐리 람은 시종 일관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시위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시위대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중국은 캐리 람의 모습을 보면서 애무 흡족해했다. 특히 이 우산혁명의 진압과정에서 그녀는 매우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시위대의 대표와 면담을 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동의할 수 없다는 점에만 동의한다.”

홍콩 우산혁명 당시 등장한 시위대의 포스터. ‘햇볕이 더 강하게 내리쬔다면, 마땅히 우산을 펼쳐 햇볕을 막을 것이다’라며 자신들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자료=데일리뉴스DB
홍콩 우산혁명 당시 등장한 시위대의 포스터. ‘햇볕이 더 강하게 내리쬔다면, 마땅히 우산을 펼쳐 햇볕을 막을 것이다’라며 자신들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자료=데일리뉴스DB

이 놀랍도록 강력한 적대적 사고와 정책은 지금까지로 캐리 람 장관을 규정짓는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당연히 중국의 ‘일국양제’ 체제를 지지한다. 홍콩과 중국은 하나의 국가지만 두 개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중국과의 협력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의 지지는 얻었지만, 홍콩 시민들에게 ‘원수’가 되어 버렸다.

어릴 때부터 승승장구했던 캐리 람 행정장관. 하지만 계속해서 시민들의 피를 흘리게 할 수 없음은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녀가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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