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친구 커피, 아시나요!
움직일 수 없는 식물, 곤충으로부터 보호위해 카페인 생성
6세기경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지역에 살던 '칼디'라는 양치기는 가뭄이 계속되자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그런데 얼마 후 칼디는 한 무리의 염소들이 평소와는 달리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염소들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입 속에 빨간색 열매를 넣고 아작아작 씹는 것을 발견했다. 궁금해진 칼디는 염소들이 먹는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았다. 잠시 후 칼디는 자신도 마구 춤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인류가 처음으로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커피는 아랍으로 전파되면서 본격적인 음료로 개발됐다. 아랍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먹기 시작한 사람은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인 수피교도들이었다. 그들은 길고 긴 밤, 기도를 하는 시간동안에 졸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이후 커피는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다. 특히 르네상스시대 유럽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커피의 효과에 열광했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면 졸지 않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이유는 카페인이란 성분 덕분이다. 카페인은 뇌에서 피곤한 신경을 쉬게 하는 아데노신의 작용을 방해하여 이 같은 각성 효과를 일으킨다.
그런데 커피나무와 같은 식물이 카페인 성분을 만들어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카페인을 만든다는 학설이 바로 그것. 즉, 카페인은 박테리아나 곰팡이를 죽이고 몇몇 해충을 불임이 되게 만들며, 곤충과 유충의 행동 및 성장에 장애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커피는 소량으로 볶아 그때그때 즐기세요!
한 잔의 커피가 소비자에게 전해지기 위해선 여러 차례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커피 열매인 체리에는 두 개의 씨앗이 있는데, 불필요한 과육을 제거해서 말린 씨앗을 생두라고 한다.
생두는 '로스팅'이라는 2차 가공을 거쳐 원두로 만들어진다. 로스팅이란 간단히 말해 생두에 열을 가해서 볶는 공정이다. 적게 볶으면 신맛이 강하고 많이 볶으면 쓴맛이 증가하는데, 볶음 정도는 커피 품종에 따라 다르다. 또한 지역별로 로스팅의 강약에 따른 선호도가 다르다. 흔히 유럽인은 강하게 볶은 것을 선호하며, 한국인은 엷게 볶은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의 향미는 로스팅을 한 지 2주일이 되면 거의 사라지므로 소량으로 볶아서 그때그때 마시는 것이 좋다.
아라비카종 중에서도 최고급인 스페셜티 커피를 판매하는 커피전문점의 경우 주로 종이필터를 이용한 '드립 추출' 방식으로 커피를 뽑는다. 드립 추출은 속도는 느리지만 더욱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에스프레소
뜨거운 물을 부어 필터에 내려 마시는 드립 방식의 커피외에,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소량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하여 마시는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의 대유행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이 ‘에스프레소 커피‘이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유래는 유럽에서 기인한다. 유럽 사람들이 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내게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자면 ’드립보다 에스프레소가 조금 더 빨리 커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계가 발명되기 전에는 오히려 더 번거로웠을 것 같기 때문에 100% 동의하기가 힘들다. 에스프레소 기계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좀 더 빨리‘ 보다는 ’좀 더 강한 압력으로‘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방식으로 더 맛있는 커피를 즐기고 싶다는 유럽인들의 욕구가 에스프레소 라는 커피 스타일을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모카 포트
에스프레소 기계의 모체인 ‘모카 포트’에 대해 알아보자. 모카 포트는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상부와 하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부(A)에는 물을 넣고, 중앙(B)에는 커피를 갈아서 넣고 끓인다. 그러면 물이 증기 상태로 중앙부의 커피 가루를 지나서 상부(C)로 커피가 추출된다. 중요한 것은 물의 상태가 아닌 증기의 상태로 커피 분말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큰 압력으로 커피를 추출한다는 것이다. 더 큰 ‘압력’, 이것이 모카 포트의 핵심이다.
모카 포트가 만들어내는 압력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 더 큰 압력으로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가장 쉽게 고려해볼 수 있었던 것이 끓는 물에서 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출구를 막고 계속 가열하여 원하는 정도의 압력이 발생한 이후에 출구를 열어 강력한 힘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충분한 압력은 얻을 수 있지만 적정 온도보다 물이 더 뜨거워져서 커피의 맛이 좋지 않은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이 적정한 온도의 물을 기계적 힘을 빌어 더 큰 압력으로 커피 분말쪽으로 미는 방식이다. 바로 에스프레소 기계의 원리인 것이다. 현재의 에스프레소 기계들은 90℃ 정도로 가열된 물을 9기압으로 밀어낸다.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커피는 10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170년 정도 빠르게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 황제다. 아관파천,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한 사건이다. 한 나라의 황제가 남의 나라 공관에 가서 안전을 보장 받았던 슬픈 역사의 장면에 커피가 등장한다. 러시아 공사였던 위베르가 고종 황제에게 커피를 소개하였고, 1년 동안의 러시아 공사관 생활 동안 고종 황제는 커피 애호가가 된다. 보드카가 아니라 커피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국운이 기울어 심사가 많이 복잡하셨을텐데.., 그 때 그 커피가 황제의 마음을 잘 달래 주었기를 빌 뿐이다.
1년간의 러시아 공관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고종 황제는 덕수궁 내에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건물을 짓고 그곳에서 대신들 혹은 다른 나라의 사신들과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커피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1930년대에 다방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당시 다방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영화 배우, 영화 감독, 시인 등의 예술가들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특히나 영화로도 소개되었던 시인 이상과 그의 연인 금홍이 문을 열었던 다방도 있었다. 예술가들이 사장이었으니 이러한 다방들이 문인과 화가, 영화인 등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음악을 감상하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그러한 비밀장소와 같은 역할을 했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이 때 참전한 미군들이 마시던 인스턴트 커피가 우리 사회에 알려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논하면서 인스턴트 커피를 빼 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현재도 우리 나라 커피 문화의 상당 부분은 인스턴트 커피가 담당하고 있다. 1968년 동서식품이 설립되고, 국산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 하기 시작하였다.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드립 방식으로 추출하는 원두 커피에 대한 수요가 있기는 했지만, 인스턴트 커피에 대한 일반 대중의 선호가 강해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인스턴트 커피의 꾸준한 수요와 함께 1999년, 미국의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의 국내 진출을 필두로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들의 성공적인 안착이 이어졌다. 이후 인스턴트 커피와 더불어 에스프레소 커피의 인기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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