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AI반도체 기술을 주도하는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 두 팹리스 스타트업의 합병이 마무리됐다.
합병법인의 사명은 ‘리벨리온’이며, 대표는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그대로 맡는다. 지난 6월 합병 추진 발표 이후 약 6개월 만의 공식 출범이다.
첨단 AI반도체들의 결합으로 통합 리벨리온의 기업 가치가 약 1조 3천억원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AI 팹리스계의 첫 유니콘기업이 뜬 셈이다.
◆엔비디아 AI반도체 아성에 도전장..."엔비디아 아성 깬다"
합병 리벨리온의 출범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리벨리온이 글로벌 AI열풍의 실질적 수혜자인 미국 엔비디아의 대항마라는 다소 거창한 꿈을 안고 출발했다는 점이다.
리벨리온이 글로벌 빅테크 엔비디아에 도전하는 것은 다소 무모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가치가 수 천조에 달하는 미국의 공룡 빅테크들 조차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체 AI반도체 개발을 추진중이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되지만, 통합 리벨리온의 기술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리벨리온은 절대 계란이 아니다. 엔비디아가 설령 바위같이 탄탄한 아성을 쌓았을지라도 영원한 법은 없다.
지금까지 IT 역사에서 불멸의 기업은 없었다. 절대적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던 기업들도 결국 시장의 상당부분을 후발업체에 내주고 말았다.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낸 리벨리온이 결코 무모한 도전은 아니란 의미다.
리벨리온은 엔비디아와 같은 AI가속칩 설계업체지만, 뿌리가 좀 다르다. 합병전 리벨리온과 사피온은 모두 추론용 NPU(신경망처리자치)분야애서 강점을 지녔다. NPU란 현 GPU에 비해서 보다 AI특성에 최적화한 반도체이다.
엔비디아가 기존 GPU(그래픽처리장치)를 기반으로한 AI가속기를 만드는 반면, 두 회사는 처음부터 AI에 특화된 가속기를 기획, 설계, 개발해왔다.
2020년 설립된 리벨리온은 창업 1년 만에 AI반도체 ‘아이온’을 출시하며 주목을 받았던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5나노(nm) 공정을 이용한 ‘아톰’을 내놓으며 업계를 놀라게했다. KT가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SK텔레콤 연구 조직에서 분사한 사피온은 국내 최초로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AI반도체 ‘X220’을 개발하며 주목받았다. SK는 국내 대기업집단 중 AI부문에서 밸류체인이 잘 짜여진 AI리딩그룹이다. 사피온의 기술집약도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통신 대기업 KT(라벨리온)와 SKT(사피온)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한만큼 두 스타트업이 하나로 뭉친 합병 리벨리온의 백그라운드는 탄탄하다. 통신 라이벌의 투자기업간의 매우 이례적인 인수합병이다.
그런만큼 일단 막대한 자본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팹리스, 특히 AI칩 팹리스 입장에선 말그대로 돈 걱정없이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과 같다.
AI반도체 개발에는 수 백원 규모의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수 백억원대의 시리즈A, B 투자를 받아 칩 한 두개 개발하고 나면 남는게 별로 없다. 양사의 합병이 재정적인 측면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고, 고급인력 확보 측면에서 매우 유리해졌다고 보는 이유다.
기존 사피온 주주였던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가 리벨리온의 성장을 위한 지속적인 자금 및 인프라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SKT와 AI데이터센터 분야 글로벌 진출을 위해 힘을 모으는 한편, 리벨리온은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AI반도체 공급망 강화 기여...K팹리스 성패의 승부처
통합 리벨리온의 출범은 국내 AI반도체 전반의 밸류체인과 공급망 차원에서도 적지않이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AI가속기와 패키지로 엮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차세대 D램(DDR5)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SK하이닉스와 삼성반도체이기 때문이다.
하이닉스와 삼성으로선 미래가 촉망되는 국내 AI메모리 수요처를 확보하게된 셈이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리벨리온은 삼성전자, 사피온은 대만 TSMC에 파운드리를 의존했으나 통합 라벨리온의 출범으로 삼성전자에 의뢰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AI업계의 AI 가속기 수급에도 통합 리벨리온의 출범은 긍정적인 소식이다. 국내 빅테크업계의 대기업들은 그간 AI시스템 구축을 위해 대당 수 천만원을 호가하는 엔비디아 가속기(H시리즈)를 구매했으나, 향후 상대적으로 저렴한 라벨리온 칩 구입을 통해 원가를 크게 절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피온과 리벨리온은 이미 각자 개발한 AI반도체를 SK텔레콤과 KT 클라우드에 적용해 왔고, 차세대 칩 또한 실증 테스트를 앞두고 있다. 특히 리벨리온은 거대언어모델(LLM)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AI반도체 '리벨'을 개발 완료하고 현재 삼성 4나노 파운드리를 통해 본격 생산을 준비중이다.
합병 리벨리온의 성장은 명실상부 글로벌 시장에서 K팹리스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란 점에서도 의미를 둘 수 있다.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이지만, 사실 팹리스 분야는 열악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 지금까지 세계 시장에서 통할만한 팹리스를 배출해내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전도유망한 두 팹리스의 합병과 이로인한 팹리스 유니콘이 새 출발선에 선 것은 K팹리스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과 진배없다.
1차 관건은 뿌리가 다른 두 스타트업이 물리회학적으로 얼마나 빨리 결합하여 시너지효과를 내느냔데 있다. 두 스타트업은 우수한 반도체 전문가들이 즐비하다. 그런만큼 하나로 뭉치는데는 진통이 따를 수 있다. 만약 조기에 한 팀으로 똘똘 뭉쳐 서로의 장점을 결합하고, 개발 효율성과 속도를 내다면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리벨리온은 향후 3개월 간 PMI(Post-Merger Integration, 인수 후 통합) 초점을 둘 계획이다. 조직 통합이 먼저란 뜻이다. 기존에 리벨리온이 보유한 스타트업 특유의 민첩성과 사피온의 탄탄한 시스템을 결합해 AI 반도체 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창출을 위한 역량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는 “엔비디아의 독주와 함께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재편이 이미 시작됐다”며, “이러한 세계적 추세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NPU 기업의 합병은 대한민국 AI반도체 산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승부처가 될 것이다. 그런만큼 국가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합병법인을 이끌어가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합병 리벨리온의 성장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정말 엔비디아의 대항마로서 글로벌 AI반도체 시장에서 자리를 확고히 잡을 수 있을까. 과연 새로운 출발선에 선 통합 리벨리온이 K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높이고, 거대 시장으로 떠오른 AI반도체 시장에서 공룡 엔비디아에 맞설만한 체급으로 성장할 수 있을 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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