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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2: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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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퇴직후 지역봉사 앞장서는 전직공무원

남동경찰서 경우회 문경주 회장

퇴직후 지역봉사 앞장서는 전직공무원

23년 공무원생활을 정년퇴직하고 사업가로 변신한 전직 경찰간부가 지역사회를 위해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인천남동소방서 의용소방대장 외에 인천남동경찰서 경우회장도 겸하고 있는 문경주씨(63). 재직중 내무부장관 표창 등48회의 표창을 받은 바 있는 문 회장 이름에 붙는 직함은 이루 셀 수가 없다.

구월3동 동정자문위원, 남동구바르게살기협의회 부회장, 대한행정사인천지부장, 前인천광역시환경연합회장에 남동농협 대의원, 구월동상가번영회장, 호남향우회 부회장까지 맡고 있다. 취재기자가 사무실(경우회 및 의용소방대)을 방문했을 때 각종 봉사활동으로 받은 인천시장 표창장 및 감사장, 감사패 등 30여개가 문 회장이 걸어온 발자취를 증언하면서 방안을 빛내고 있었다.

문 회장은 전북 김제출신으로 1990년 인하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군제대 후인 1977년 순경 공채시험을 거쳐 경찰에 투신했는데 첫 발령지는 인천 부평경찰서기동대였다. 그는 바쁜 경찰 근무 중에도 틈틈이 유도를 수련해 2단을 획득했고 태권도 초단은 군복무중 땄다. 부평경찰서 기동대 3년 근무 후 경인고속도로순찰대로배속돼 2년만에 근무성적 우수한 모범경찰관으로 뽑혀 경장으로 승진했고, 고속도로 순찰업무 5년 끝에 경사로 진급하면서 다시 인천지방경찰청 기동대로 돌아와 근무했다. 문 회장은 경찰관생활 23년을 주로 고속도로순찰대 및 기동대, 파출소에서보냈는데 고속도로순찰대 근무시 보람있었던 일이 많았다고 한다.

1982년경 산곡파출소 차석으로 근무할 때는 연탄불에 화상입고 쓰러진 독거노인을 발견하고 즉시 관내 병원, 산곡약국 등에 가서 약을 구해와 완벽하게 치료해준적이 있었다. 이런 사실이 신문에 보도돼 경찰청장 표창장을 받았다. 1983년 늦가을 밤거리를 배회하는 행려병자를 시립병원으로 긴급수송 했으나 문 회장이 일단보증을 서고 치료비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맡겨둔 신분증을 찾기도 있다. 새벽 2시쯤 부평톨게이트입구에 쓰러진 사망 직전 행려병자를 발견하고 순찰차로 긴급히 인천시립병원으로 수송했다. 병원 측에서 재정보증인이 있어야 한다며 환자받기를 거부해 사람살리는게 우선이었기에 경찰관 신분증을 맡기고 입원부터 시켰다.

그 후 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 치료비를 놓고 부평구청과 인천시가 서로 떠미는 바람에, 문 회장이 부평구를 직접 찾아가 환자의 딱한 처지를 호소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받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행려병자가 청와대에 고마운 경찰관 때문에 살아났다고 편지를 보내는 바람에 청와대 암행비서관이 알아본 뒤 표창을 내리라고 지시함으로써 문 회장은 내무부장관 표창을 받게 됐다.

1985년 8월 11일에는 순찰근무중 양다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신음하는 28세 청년에게 약을 사주고 인천시립병원에서 무료치료 받게 해줘 봉사경찰상 확립에 기여했다고 경찰청장 표창을 받았고, 1989년 부평서 역전파출소 근무때는 연말에 독거무의탁노인 4세대에 고향 김제에서 가져온 쌀 40킬로 1포대 및 사과 1상자를 전달함으로써“대민봉사에 앞장선 지역파수꾼”이라고 지역신문에 보도됐다. 이 사연이 훈훈한 미담거리로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칭찬으로 이야기되자 인천지방경찰청은 장례장을 수여했다. 이렇게 문 회장이 재직시 받은 상은 외근성적 1위, 근무우수자 표창등 무려 48개의 표창에 이른다.

1991년 경사승진 1~2년후 다시 고속도로순찰대 반장으로 배치돼 경인고속도로

책임자로 근무하게 됐다. 당시는 인천경찰청 관내 고속도로가 경인고속도로, 서해

안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등 3개였고 반장은 1년에 한번 씩 고속도로를 꿔가면

서 근무했다. 다시 1994년 인천지방경찰청 제3기동중대 소대장으로 옮겨서 5년 근무하다가 23년간 정들었던 경찰제복을 벗고 퇴직하면서 간부로 승진했다고 한다. 문 회장은 경찰관으로 재직하면서 국민에게 봉사하고 어려운 불우이웃을 도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있었다고 기억한다.

지금도 등산모임 및 회의에서 경우회원들을 만나면 재직시의 겪은 일을 회고담으로 말한다. 지난날을 되돌아 볼 때, 동료가 자기 잘못을 떠넘기는 바람에 혼자서 몽땅 책임을 뒤집어쓰고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지만 굳이 변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던 일이나, 현직에 있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봉사할 걸 하는 아쉬움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문 회장은 그 아쉬움을 털어보고자 지금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필요로 하는 자리라면 어디든 마다 않는다.

퇴직후 사업한다고 하니 친척 및 친구들이 경찰관 하던 사람이 사업하면 실패한다

고 하면서 모두가 말렸다. 퇴직당시 손에 쥔 돈은 퇴직금 7천만원과 재형저축으로 모은 2천만원 등 9천만원이 전부였다. 고향친구가 4천만원을 빌려가서는 이자 2번 주고 달아났고, 아는 후배는 5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해서 줬더니 이자 두세번 주고는 소식이 없었다. 경찰공무원 23년 봉직한 댓가로 받은 보상을 두 달만에 모두 없어진 것이다.

할 수 없이 집을 저당 잡히고 3천만원을 대출받아 식당을 차렸지만 그마저 1년만에 날렸다. 마지막으로 부인이 따놓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으로 무보증금, 월세 50만원에 구월3동에서 조그마한 사무실을 얻어 부동산소개업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다행히 부동산업은 5년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먹고 살 만큼 벌었다. 이때부터 문 회장은 자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입 일부는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활동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상가분양만 했으나 나중에는 아예 건설회사를 만들어 상가

를 전문적으로 건설- 분양하는 것으로 사업범위를 확대했다. 그 건설회사가 대신

종합건설인데 지금은 아들 문종관 대표(38)가 거의 맡아서 경영하고 있다.

문 회장은 남동경찰서 경우회장을 1~3대까지(임기 3년) 7년째 맡고 있다. 경우

회는 그동안 명예직으로 경찰서 건물 한 켠만 차지했지만 문 회장이 사비를 들여

비품 등 내부시설을 갖춰 그럴듯하게 꾸몄다.

전국의 경우회원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구재태 전국중앙경우회장을 불러 <아동지킴이> <배움터 지킴이> 활동을 치하하며 애로점을 물어와 크게 고무돼있다. <아동지킴이>는 학교주변 우범지역 폭력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배움터지킴이>는 교내에서 발생하는 폭력, 절도, 비행사건을 적절히 근절하도록 하며 선도, 훈육하는 활동이다.

문 회장은 2007년12월 그동안 남동소방서에 없었던 의용소방대 본대를 창설했

다. 의용소방대 본대는 여자 30명, 남자 50명으로 지역4개 대원 포함한 2백 명으

로 구성돼 소방공무원 보조를 하며 의용봉공 정신으로 초기진화를 맡는다. 또 자

연재해 및 산불발생 때는 자발적으로 초기진화, 자연보호, 산불예방 캠페인을 한

다. 재작년 여름 수해로 간석4동 저지대 및 인천대공원 지하도가 침수될 때는 주

거지역 사전순찰 등으로 피해를 미리 막을 수 있었다.

또한 의용소방대원들은 연말에 경로당, 지체장애인 시설을 방문하여 위문품을 전달하거나, 학교앞 횡단보도 등하교 길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수호천사활동도 하고 있다. 2007년 삼성조선 예인선-유조선충돌로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가 나자 남동소방서 의용소방대 50명은 즉각 버스 1대, 봉고차 1대로 현지로 달려가 기름제거작업에 나섰다. 새벽 6시 인천을 출발해 해안가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고 쓰레기를 마대에 담아 트럭에 실었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파도에 떠밀려 해변모래 밑으로 묻힌 기름덩어리를 파내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때 여성대원들은 라면 및 간단한 식사 등으로 다른 자원봉사자들을 지원했다. 문 회장은 그 후에도 회원 6명과 함께 태안반도 현장을 찾아 쓰레기를 경운기에 싣는 작업을 도왔다.

의용소방대에 대한 정부보조는 월 1회 교육비로 4만5천원이 나오는 게 전부이

다. 그래서 교육이외의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자연히 문 회장 부담으로 돌아간

다. 의용소방대 본대를 창설한 공로로 국민포장 상신을 제안 받았을 때도 훈장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기에 후배에게 양보했다. 올해 63세인 문 회장은 의용소방

대 정년이 62세라 더 이상 훈장받을 기회가 없게 된 지금에서는 다소 섭섭한 감

도 든다고 한다.

회원 3백명인 남동경찰서 경우회를 유지하는데도 년 4백만원이 들어간다. 퇴직경찰관 가운데는 나이들어 투병생활 혹은 사업실패로 어럽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남동경찰서 경우회는 경찰관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독거미망인들을 찾아가 위로도 한다. 안보단체 중앙회 결의대회 및 국가행사 참석자를 수송할 때 드는 비용도 늘 문 회장이 도맡았다. 문 회장은 경우회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지역을 선도하는 중심적 단체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다.

문 회장은 퇴직후 남동구 구월3동 1347-6 대신종합건설을 설립했다. 또 송내코아(주)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709-1 송내남부역 앞에 있는 6층상가

로 문 회장이 직접 신축해 임대하는 건물이다. 문회장은 같은 사업가라도 공무원출신과 처음부터 사업으로 출발한 사람들과는 사고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공무원출신은 머릿속에 철저한 국가관이 박혀있기에 사업을 해도 항상 국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 회장은 파출소 차석할 때도 조석조회를 하면서 주민이 불편하지 않도록 항상 친절하게 봉사해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교육시켰기에 그것이 골수에 박혔다고 한다. 경찰관생활을 그만둔 지금에도 머리 속에 철저한 국가관이 새겨져 처음부터 사업으로 출발한 사람들과는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1999년 가족과 함께 고향 김제를 가는 서해안고속도로 3차선 중 1차선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중년여성이 겁에 질린채 두 아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어쩔 줄 모르며 건너오지 못하자 교통경찰관으로 숙달된 수신호로 뒤에 오는 차량을 정지시키고 세모자를 안전하게 갓길로 대피시킨 적이 있다. 전직 경찰관으로 당연히 시민에게 할 일을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뿌듯했다.

문 회장이 112신고를 해주면서 뒷수습 해주는 것을 보던 옆자리 부인이“당신의 마음자세는 여전히 현직이네요”라고 했다. 그 교통사고 여성은 그 후문 회장에게 몇차레 전화를 걸어 사고 뒷처리를 잘 해달라고 신신부탁 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게 재직시 봉사하는 경찰상이 돼야한다고 반복해서 주입받아 머릿속에 각인됐기 때문이리라.

아들 문종관 대신종합건설 대표(38)는 민주당에서 정당활동을 하면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의원 출마를 꿈꾸고 있다. 문종관 대표는 동인천고-관동대 경찰행정학과를 나온 뒤 인하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문종관씨는 국회의원 비서를 지낸 후 이노필유치원 이사장을 거쳐 인천시 민주당 남동갑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역일꾼으로 일해보고 싶은 포부를 품고 있다.

현재 통일민주협의회 재정위원이고 민주통합당 인천시당 중소기업특별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인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문경주 회장은“종관이가 내 자식이지만 정말 어릴 때부터 착해 어려운 사람을 보면 나서서 돕는 성품”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가정 어려운 학급친구가 상(喪)를 당하면 물품도 갖다주며 위로하고, 고교 1∼2학년 때는 우체국에 근무하는 문 회장 친구가 연말연시에 우편물이 평소보다 8∼10배 넘치는 것을 알고 아무런 댓가도 없이 부친 친구의 일을 돕기도 했다.

문 회장의 부인은 1950년생 동갑내기로 슬하에 2녀1남을 두고 있다. 큰사

위는 의학박사로 성형외과병원을 경영하고, 둘째 딸과 사위도 의사로 소아

과병원을 경영하는데 모두가 성업중이다. 문종관 대표의 부인도 약대출신으

로 약국을 경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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