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대북 문제 핵심 참모들과 동행했다. 폼페이오를 따라 나서 이들은 성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와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 코리아임무센터장,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슈라이버 국방부 아태 차관보 등이다.
특히 김 대사는 6‧12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지기까지 북한 측과 실무 조율을 전담한 인물이다. 정상회담 준비 당시 필리핀 대사직을 유지하며 투입된 것을 고려하면 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신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비핵화 협상 전면에 나선 김 대사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어에 능통하다는 점이다. 14살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던 그는 1970년대 중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들어갔다. 이후 펜실베니아 대학을 졸업, 로율라 로스쿨과 런던 전경대 법학석사 학위를 받아 로스앤젤레스에서 검사가 된 그의 이력은 미국 내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재들에 밀리지 않는다.
1988년 외교관으로 이직한 이후 다양한 국가에서 미 대사관 실무를 맡아 국제적 감각을 쌓기 시작했다. 홍콩과 일본, 말레이시아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한 그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주한 미 대사관 정무참사를 맡으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 문화에 익숙하고 언어적으로 능통해 한미 외교업무에 특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5년에는 6자회담에서 미국 대표단으로 참석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미 국무부 한국과장에 임명됐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자 6자회담 특사로 북한과의 협상을 전담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한미 수교 이래 첫 한국계 주한 미국 대사가 됐다.
3년 후 2014년 10월에는 북한 핵 문제를 총괄하는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겸 한일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에 임명됐고 2016년 필리핀 대사로 부임했다. 지난 2월 한국계 최초로 미국 외교관 최고위직인 경력 대사로 승진하면서 김 대사는 명실공히 '한국통' 인재로 인정받게 됐다.
존 케리 미국 전 국무장관은 김 대사에 대해 "합리적 판단과 열심히 일하는 자세, 뛰어난 지능, 겸손함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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