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 : 2026-08-25 05:40 (화)
🇰🇷🇺🇸
종합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희만사) - 김희철 대표

빚은 질병과 같고 희만사 역할은 의사와 같아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희만사) - 김희철 대표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희만사) 김희철 대표

‘돈’ 경제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같이 봐야 한다

자본주의 첨단인 금융권 임원에서 부채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지원자로 나서다

세상에는 타고난 삶의 유복함을 당연하게 누리다가 어떤 전기로 인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 이들은 그때까지 자신을 지켜주던 호의적 환경이 결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 얼마든지 추락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곤 인생의 방향을 선회하고 행동한다. 감당할 수 없는 부채에 짓눌려 정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서민들의 마지막 구원처이자 상담자 역할을 하고 있는 희만사(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의 김희철 대표는 전형적인 엘리트 계층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그는 그렇게 살았던 자신의 삶의 가장 먼 대척점에서 근근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는 다른 출구를 열어주고 있다.

나라님이 못 구하는 가난에서 탈출시키는 사람

우리나라 속담에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고 신분에 따라 경제적 분배가 전혀 달랐던 옛 시절에는 그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경쟁이 보장돼 있다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나라님은 가난을 구제하지 못한다. 오히려 양극화는 기승을 부리며 갈수록 공평한 경쟁이 어렵고, 모두 100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는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의 처진 목을 더욱 짓누른다. 나라에서는 몇몇 구제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실질성은 없는 듯하다.

김희철 대표가 이끄는 ‘희만사’는 이러한 사회적, 국가적으로 암담한 현실을 민간에서 어떤 방법으로 타개해 나갈 수 있는지를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2008년 대구은행의 부행장이던 시절,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운영하던 ‘저소득층 부채 클리닉’과 연계하면서 그는 부채문제의 어려운 일면을 보았다.

“부채에 시달려 내몰리는 사람들의 상담업무를 하다보니 단순한 1차 상담으로는 해결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3~40대의 평범한 직장인들도 자칫 한 번의 가계곤란으로 인해 빚의 나락으로 떨어지며 가정불화를 겪는 경우들도 많았습니다. 일시적 재무 상담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조언과 관리와 방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지요. 미국발 금융버블이 있던 시기였고, 우리나라도 서민의 부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차 국가적인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에 미치면서 내가 한번 이를 타파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계획에까지 다다랐습니다.”

그때까지 엘리트 금융인으로 살아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나은행이 PB(Private Ban. 자산가들을 위한 개인금융관리업무)영업을 구축할 당시 이를 주도했었고, 그 전후로도 그는 VVIP 전담 뱅커(Banker)였다.

김희철 대표는 자신과 문제의 방향을 같이 공유하고 해결점을 찾고자 하는 동조자들과 만나 십시일반의 자본금 7억을 모아 2009년 희만사를 설립했다. 희만사의 주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금융설계를 해주던 사회운동가, 전 금융관료, 학원교육계 인사, 변호사, 회계사 등 사회적 성공의 결실을 누리면서도 사회적 그늘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빚은 질병과 같고 희만사 역할은 의사와 같아

희만사의 역할을 금용 용어로 표현하자면 'Financial Planning' 이다. 하지만 김희철 대표는 보다 이해가 선명하게 병원의 질병과 의사의 관계로 비유해 설명한다.

“병원 체계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사람이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질병에 걸리면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의사가 진료를 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잖아요.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혈액검사나 방사선 촬영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하는 사람도 있고, 장기간 입원을 해야 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저희를 찾아온 채무자들은 대부분 한두 시간의 상담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줄지 본인은 어떻게 해야할지 처방하지만 당장 고금리에 시달리는 시급한 사람들에게는 긴급처방용 대출을 해주기도 합니다. 응급처치와 마찬가지죠. 장기적으로 재무 플래닝을 해야 하는 사람은 한 달에 한번 정도씩 1년에 걸쳐 계획을 세우고 같이 진행을 확인합니다. 장기 외래환자라고 할까요.”

한 달에 150건에서 180건 정도의 상담이 발생한다고 한다. 현재까지 약 3,000여 가정 정도를 채무 상담을 했는데 대부분은 이를 통해 재기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일부 있다. 대부분 시간이 걸리는 일이거니와 채무자 스스로도 부채에서 헤어나기위한 고통을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각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다스리기 위해 의사가 내린 처방을 철저히 지키는 자기통제를 해야 병세가 호전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단 나락을 경험하고 좌절한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가족관계와 얽힌 채무사정들

빚에 시달리며 쫓기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와 판단력을 소주 2병을 마신 정도와 같다고 한다. 그들은 채무에서 헤어날 방법을 찾을 수 없고 벼랑에 내몰렸다는 생각이 들면 자칫 자살과 같은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경우에 맞닥뜨릴 수 있다.

“보통 채무가 있어도 연봉의 두 배 정도까지는 돌려막기 하면서 버팁니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게 되면 무너지는 것이죠. 위기가 닥친 초반에 미리 상담을 받고 돌파구를 찾으면 훨씬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지만, 채무상담도 마치 치과에 가는 것과 같아서 통증이 발생할 때까지 미룹니다. 그러다 너무 아프면 치료조차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요.”

채무자들이 그런 지경까지 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무수하다. 대부분이 채무 당사자 혼자만의 책임이나 문제가 아니라 가족관계와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임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에게는 어느 날 닥친 질병이나 갑자기 가족에게 필요해진 몫돈, 우연한 사고 등은 일거에 일상적 삶을 파괴시킵니다. 생활은 해야겠고, 연체금은 갚지 못하고, 게다가 직장마저 비정규직이거나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채무자 당사자만 해결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집안에 부채가 생기면 불화는 마치 세트처럼 따라오기 마련이다. 곧 부부의 이혼이나 가족 내의 폭력이 지배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그래서 희만사에서는 단순히 재무상담이 주 업무이지만, 오히려 이곳을 마지막 구원처로 선택한 채무자들의 심리 상담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채무자의 처지를 공감해줘야 하는 심리·재무상담

김희철 대표가 지방 라디오에 나온 인터뷰를 듣고는 채무에 허덕이다 자살을 결심하고 강가에서 핸드폰으로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에게 희만사를 먼저 방문하도록 설득했다. 부인이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몰랐다가 추심이 돌아온 후에야 발각된 후 남편이 오히려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당하는 부인도 있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봐 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한 단계씩 처리해 나가자고 설득하기도 한다.

이렇듯 채무상담자들에게는 빚과 함께 당사자를 내몬 ‘어떤 형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표시를 하는 심리 상담이 먼저 선행되어야 제대로 된 부채 해결 컨설팅을 해줄 수가 있다.

“부채는 당사자의 기본 상황을 먼저 직시해야 합니다. 사람을 이해해야 문제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가치관, 가족관계, 생활태도, 빚을 진 이유, 소비습관, 금융지식의 정도 등고려할 것들이 무수히 많은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희만사에서 일하는 6명의 직원들은 재무설계 분야에서 일해 온 전문가들이지만, 채무당사자들의 온갖 사연에 대한 공감 능력과 그들의 절박한 심정에 동조해주어야 하는 심리상담의 재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감정노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전에 제가 했던 PB가 일종의 성형수술이라면, 채무상담은 치료가 늦으면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하는 것과도 같은 긴급하고도 엄중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운영 모델 개발이 관건

희만사에서의 처방은 저렴한 금리의 긴급대출이나 정부나 금융권에 있는 서민대출 금융을 소개, 장기간에 걸친 채무가이드라 할 수 있다. 채무상담의 80%는 무료처방에 가깝다. 그럴것이 컨설팅 비용 지불능력이 없는 채무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긴급 대출을 해준 채무자들 중에는 회수하지 못한 자금도 꽤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의 수익구조는 나머지 20%에게서 받는 컨설팅 수수료라고 한다. 그나마도 많을 리 없다.

“저희는 그저 도와주는 자선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이 구제될 수 있도록 하는 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는 주식회사지만 당분간은 주주들이 배당금을 염두에 두지 않은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동안은 자본금을 소모하면서 열심히 자생 모델을 마련했고 이제는 안정된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어떤 형태로든 전국망을 추진해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담모델, 교육자료, 컨설팅 프로세스 등의 매뉴얼이 완성돼 있어요.”

당연히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예산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희만사에서는 사회적 봉사정신을 가진 퇴직 지점장들에게 취지를 알리고, 소액활동비만을 지급하고 이들이 지닌 전문가적 자산을 활용할 방안을 가지고 있다. 현재 다수가 교육을 받고 있고 이것이 성공하면 사회적 기업의 한 성공적 모델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김희철 대표의 설명에 의하면, 정부정책에서 실시하고 있는 서민금융이 있지만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일괄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실질성에서 간과된 부분들이 많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제도에 의탁하려 간 사람들이 경직된 제도의 한계 때문에 구제를 받지 못하면, 오히려 더 이상의 희망을 가지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공적 기관에서는 개인회생 등의 단순 조언만 해주고 별다른 역할을 못하는 경우들도 있다. 또는 정부자금으로 도와주니까 너는 파산자다, 하면서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는 형식이 되기 때문에 재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래서 채무 당사자들의 개별적 상황을 이해하고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민간부분에서 서민금융의 성공적 모델이 나와야 하고 확산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 신념의 저변에는 ‘금융 인본주의’ ‘노예금융에서의 해방’이라는 김희철 대표의 금융 전문가적 가치관이 깔려있다.

“빚에 시달리는 사람은 누구하고도 자신의 처지를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합니다. 치료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대통령 선거초기에는 서민부채에 대한 세미나 등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생색이 안나는 분야기도 하고 정부 홍보성이 없기 때문에 유야무야 되곤 합니다.”

그래서 김희철 대표는 정부 자금에 기대려고 하지 않는다. 예산이 중단되면 자생력도 같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희만사는 제도의 경직성에 갇혀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지 못하였다. 부득이한 사유이지만 대부업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 등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만사는 미국 국제인증제도인 ‘비코프(B-Corp)’로부터 국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권위 있는 인증기관이기 때문에 오히려 희만사의 사회적 성격을 더 뒷받침 해준다.

돈의 사회학으로 눈을 돌릴 때

김희철 대표는 요즘 대학교에서 '부자학' 강의를 한다. 하지만 그 강의실에서 들을 수 있는 내용은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행동, 태도, 마음가짐 등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김희철 대표는 세간의 소비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잘못된 부자마케팅이 평범한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비현실적으로 높여 놓았다고 진단한다. 능력이 안되는데 큰 평수의 집을 사고 소비를 하고 물건을 구입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저소득층의 채무문제도 심각하지만 ‘하우스 푸어’ 등 점점 확산되고 있는 중산층의 부채 문제도 심각하게 사회적 문제로 조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저는 자본주의의 첨단에서 활동 해 온 사람입니다. 대학원 전공도 파생상품이었지요. 자본주의의 선두에서 돈에 대한 경제적 기능에만 몰두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계기에 의해 돈의 사회적 기능에 눈뜨게 됐습니다. 사회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행태에 대한 반성도 많이 알았구요. 자본론이나 사회복지 공부를 다시 차근히 하면서 진정으로 내가 할 일은 이쪽이구나, 라는 의지가 더욱 강력해 집니다.”

그는 뛰어난 금융전문가들이면서도 사회적 출세를 보류하고 희만사에서 뜻을 같이 해주는 6명의 아들 같은 젊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평소의 애교와 썰렁 개그로 상쇄한다고 한다. 경복고등학교 출신인 그 자신은 동창들과 결성한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면서 주말마다 장애인 시설이나 아파트 등을 찾아 연주하는 것이 일상의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빚의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에 우선할 수 없고 빚의 악순환적인 구조때문에 인간성이 말살되서는 안됩니다. 해결 안되는 빚은 없습니다. 사람이 평생 돈의 노예로 사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사회정의가 아닙니다.”

기업이 사회적 가치창출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가 기업의 존재성과도 밀접해지고 있는

이즈음, 성격은 다르지만 ‘희만사’가 방글라데시의 마이크로크레디트 뱅크인 그라민은행과 같은 사회 선구적 역할로 일정한 변혁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희 기자 ( miyego@naver.com )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