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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천절에 문득 '광야'의 소리 이육사를 기억하며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종철 글 참조

개천절에 문득 '광야'의 소리 이육사를 기억하며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딘가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게 할 것이다.”

이육사의 사진
이육사의 사진

이육사(李陸史, 1904~1944)의 '광야'는 지사적이면서도 예언적인 어조로 조국광복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민족시의 걸작이다. 이 시는 역사에 대한 깊은 의식과 함께, 국조 단군의 상징성을 떠올리게 한다.

10월 3일은 개천절로, 단군이 이 땅에 고조선을 세운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단군의 건국 이념은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로 요약된다. 이는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이상을 담고 있으며, 세상을 이치에 맞게 다스리자는 지혜를 담고 있다.

‘단군정신’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단군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상징이자 독립운동의 원동력으로 여겨졌다. 개천절은 이러한 정신을 회고하며, 홍익인간의 정신을 바탕으로 국민통합과 국가번영을 생각하는 소중한 계기가 된다.

이육사는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시기에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그의 출신지는 경북 안동이며, 노래와 항거 정신은 퇴계 이황의 풍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육사는 어려서부터 고전을 통달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수감되기도 했다. 그는 번호 264로 투옥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자신의 이름을 육사로 정하게 되었다.

그는 중국과 일본에서 학문을 공부하고 국내에 귀국한 후, 민족시와 함께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다. 그의 시는 식민지의 압박과 민족적인 역경을 소재로 하며, 강렬한 저항의 의지와 광복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다.

이육사는 짧은 생애 동안 17차례에 걸쳐 수감되었고, 1944년에 북경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의 광대한 상상력과 강렬한 정신은 그가 끝내 보지 못한 광복을 아련하게 노래한 유작으로 남아 있다. 1946년에는 그의 시집'육사시집'이 출간되었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단기 4355주년 개천절을 맞이하며 우리 민족에게 한없는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 이육사를 다시 한번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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