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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중 대결] 경제전쟁의 시대, 이란 전쟁과 세계경제

달러·희토류·반도체·해협을 둘러싼 새로운 권력투쟁 미국은 ‘경제전쟁 매뉴얼’ 없이 파열된 세계를 항해하고 있다

[미중 대결] 경제전쟁의 시대, 이란 전쟁과 세계경제
새로운 경제질서: 세계화 이후의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의 취약성: 희토류, 의약품, 배터리, 청정기술. 
새로운 경제질서: 세계화 이후의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의 취약성: 희토류, 의약품, 배터리, 청정기술. 

세계경제가 더 이상 평화의 언어로만 설명되지 않는 시대에 들어섰다. 한때 세계화는 국가 간 상호의존을 확대하고, 교역과 투자를 통해 모두가 이익을 얻는 구조로 이해됐다. 그러나 2026년 현재 국제경제의 핵심 단어는 협력보다 압박, 통합보다 취약성, 시장보다 안보에 가까워지고 있다. 관세는 협상 수단을 넘어 정치적 강압의 무기가 되었고, 금융 인프라는 상대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적 도구가 되었으며, 공급망은 효율의 상징에서 국가안보의 약점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통상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 자체가 전쟁의 수단으로 전환되는 구조적 변화다. 에드워드 피시먼이 제시한 “경제전쟁의 현장 매뉴얼”이라는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세계는 더 이상 미국이 독점적으로 경제무기를 행사하던 일극 질서가 아니다. 중국, 러시아, 이란, 유럽연합, 중견국들까지 각자 자신이 가진 경제적 지렛대를 무기화하고 있다. 이제 경제전쟁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일상적 운영 방식이 되고 있다.

◆다보스에서 울린 경고, 세계화의 종말 선언

202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는 세계화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는 “강대국들이 경제통합을 무기로, 관세를 지렛대로, 금융 인프라를 강압 수단으로, 공급망을 공격 가능한 취약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국제경제 질서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었다. 세계화가 약속했던 상호이익의 논리는 더 이상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통합은 협력의 기반이 아니라 종속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각국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카니의 발언은 특히 중견국과 소국의 불안을 대변한다. 경제적으로 개방되어 있고 특정 강대국 시장이나 금융망, 에너지 공급망에 의존하는 국가는 언제든 압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소국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 같은 거대국조차 자신들의 취약성을 자각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지배력을 두려워하고, 중국은 달러 금융망과 미국 반도체 기술에 대한 의존을 경계한다. 경제전쟁의 시대는 약자만이 아니라 강자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시대다.

이후 미국 부통령 JD 밴스는 50개국 이상이 참여한 핵심광물 장관회의에서 중국의 희토류 독점을 깨기 위한 국제 협력을 촉구했다. 같은 시기 중국 공산당 기관지 『치우스』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을 통해 위안화가 준비통화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중국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미국 국채 매입을 줄일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핵심광물 동맹을 구축하려 하고, 중국은 달러 의존을 줄이려 한다. 이는 서로 다른 방향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양국 모두 상대방의 경제무기에서 벗어나려는 방어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경제전쟁의 두 축: 무장 경쟁과 경제안보 경쟁

오늘날 지경학 질서는 두 흐름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 하나는 경제무기 경쟁이다. 국가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시장, 기술, 금융, 자원, 물류망을 식별하고 이를 외교·안보 전략의 수단으로 전환하려 한다. 다른 하나는 경제안보 경쟁이다. 국가는 상대가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 즉, 한편으로는 무기를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요새를 쌓는 시대가 된 것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경제전쟁의 공격자였다. 9·11 이후 미국은 금융제재, 달러 결제망 차단, 수출통제 등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이란, 북한,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수많은 국가가 미국의 경제제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 미국은 자신이 보복당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고려하지 않았다. 미국이 압도적인 금융·기술·군사 우위를 가진 일극 질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세계는 상호 취약성의 질서다. 미국도 중국 희토류, 배터리, 의약품 원료, 청정에너지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도 달러, 미국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첨단 AI 칩, 항공기 엔진 등에 취약하다. 이란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도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리적 초크포인트를 통해 세계 에너지 시장을 흔들 수 있다. 경제전쟁은 더 이상 강대국만의 게임이 아니다.

◆초크포인트의 해부학: 무엇이 진짜 무기가 되는가

경제전쟁의 핵심 개념은 ‘초크포인트’다. 초크포인트란 상대국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병목 지점을 뜻한다. 과거에는 호르무즈 해협,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같은 지리적 병목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세계화 이후에는 경제적 초크포인트가 더 중요해졌다. 특정 국가가 장악한 금융망, 반도체 기술, 희토류 정제 능력, 클라우드 인프라, 해운 보험, 결제망, 데이터센터 등이 모두 초크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의존이 초크포인트는 아니다. 특정 국가에서 많은 물건을 수입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국가가 무기를 가진 것은 아니다. 진정한 초크포인트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특정 국가나 긴밀한 동맹권이 압도적이고 집중된 시장 지배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 단기간에 대체 공급원이 없어야 한다. 셋째, 이를 무기화할 때 상대에게는 큰 피해를 주면서 자신은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어야 한다.

미국의 달러 금융망은 이 조건을 충족한다. 달러는 전 세계 외환거래의 약 90%에 사용된다. 미국은 달러 결제망과 금융제재를 통해 특정 국가나 기업을 국제금융 시스템에서 배제할 수 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통제도 비슷하다. 엔비디아는 AI 칩 시장의 압도적 지배자이고, 미국은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와 장비, 핵심 지식재산권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정제 능력 역시 대표적 초크포인트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정제의 약 90%를 담당한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첨단 제조업, 전기차, 풍력터빈, 미사일, 항공우주 산업에서 중국 희토류에 의존한다.

반면 미국의 관세 정책은 초크포인트로서 한계가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수입국이지만 전체 세계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에 그친다. 어떤 국가가 미국 시장에서 배제되더라도 나머지 87%의 세계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고율 관세에도 중국과 브라질은 다른 시장으로 수출을 늘려 전체 수출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관세가 강력한 정치적 신호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초크포인트는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스크와 희토류의 차이: 대체 가능성이 무기의 위력을 결정한다

코로나19 초기 미국은 의료용 마스크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했다. 중국이 자국 내 수요를 이유로 수출을 제한하자 미국 병원과 약국에서는 마스크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미국 보건당국은 의료진에게 공급을 우선하기 위해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지 않는 태도까지 보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마스크는 중국이 쥔 초크포인트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스크는 오래 지속되는 초크포인트가 아니었다. 생산기술이 비교적 단순하고 자본 투입 규모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빠르게 생산을 확대했고, 1년 안에 N95 마스크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다. 반면 희토류는 다르다. 희토류 광산 개발에는 평균 9년가량이 걸리고, 정제 공정은 자본집약적이며 환경 부담도 크다. 단기간에 중국을 대체하기 어렵다. 이 차이가 경제무기의 위력을 결정한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대체 가능성을 더 낮춘다. 달러 금융망은 사용자가 많기 때문에 더 강력해진다. 모두가 달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달러가 편리하고, 달러가 편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달러를 사용한다. 이러한 구조는 대체 통화나 결제망의 성장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금융망은 단순 상품보다 훨씬 강력한 초크포인트가 된다.

◆ 캐나다 관세 사례가 보여주는 비대칭성의 중요성

미국은 캐나다에 대해서도 강력한 지리적·경제적 지렛대를 가진다. 캐나다 수출의 75% 이상이 미국으로 향한다. 송유관, 전력망, 자동차 생산망 등도 북미 단일 시장처럼 연결되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구조를 근거로 미국이 캐나다에 절대적 우위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비대칭성이 충분하지 않았다. 미국이 캐나다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캐나다는 큰 피해를 입지만 미국도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한다. 미국 가계는 더 높은 가격을 감당해야 하고, 정유·전력·자동차 산업도 캐나다 공급망에 의존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캐나다산 수입품 상당수를 관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경제전쟁에서 중요한 교훈을 준다. 상대를 아프게 할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효과적 무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함께 심하게 다치면 그 무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의 저비용 고효율 전략

이란은 경제전쟁의 논리를 군사 충돌과 결합한 사례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초크포인트다.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대체 경로도 제한적이다. 과거 전문가들은 이란이 해협을 전면 봉쇄하려면 대규모 기뢰 부설과 군사 충돌을 감수해야 하므로 쉽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란은 전면 봉쇄 대신 저비용 공격을 선택했다. 드론과 미사일로 소수의 선박만 공격해도 보험료와 운송 리스크가 급등한다. 민간 해운사와 에너지 기업은 위험을 회피한다. 이란산 석유를 싣는 선박은 계속 통과하지만 걸프 국가들의 석유를 실은 선박은 주저하게 된다. 이란은 제한된 군사 행동만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을 흔들었다. 이는 경제전쟁의 핵심이 반드시 국가 명령이나 법률 조치가 아니라, 민간 기업의 위험 계산을 바꾸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 중국 희토류 무기의 압도적 비대칭성

중국 희토류는 경제전쟁에서 가장 명확한 무기 중 하나다. 중국이 희토류 원소와 자석 수출로 얻는 수익은 수십억 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이 네오디뮴 등 핵심 희토류 공급에서 30%만 차질을 빚어도 GDP 손실은 수천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 중국은 몇십억 달러의 수출 수익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 경제에 수백 배의 피해를 줄 수 있다.

이 비대칭성이 중국의 힘이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풍력발전기, 스마트폰, 미사일, 항공기, 레이더, 정밀유도무기 등에 필수적이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접근을 막으면 중국은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 2025년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를 강화하자 미국 자동차와 방산 공급망은 즉각 흔들렸다. 포드가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방산업체들이 미사일 생산에 필요한 광물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 경제제재의 세 가지 목적: 낙인, 약화, 강제

경제전쟁의 도구는 목적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첫째는 낙인찍기다. 부패한 독재자, 인권 침해자, 전쟁범죄 관련자에게 제재를 가해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다. 이는 상징적 효과가 크지만 실제 정책 변화를 이끌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둘째는 약화 전략이다. 상대국의 기술, 자본, 시장 접근을 차단해 장기적 역량을 줄이는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는 대표적 사례다. 목적은 중국이 당장 특정 행동을 중단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AI와 첨단 반도체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셋째는 강제 전략이다. 상대국의 정책을 바꾸기 위해 경제적 고통을 가하는 방식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한 제재 경고는 억지 목적이었고,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대리세력 지원을 줄이려는 최대 압박 전략은 강제 목적이었다.

문제는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이 세 목적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목적이 불분명하면 수단도 흔들린다. 중국의 대만 침공을 억지하려는 목적이라면 미국은 중국이 미국 기술에 더 의존하도록 만들어 위협의 효과를 키워야 한다. 반대로 중국의 군사·기술 능력을 사전에 약화하려는 목적이라면 지금 당장 수출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두 전략은 정반대다. 목표가 불분명하면 정책은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 점진적 압박의 한계: 상대도 적응한다

미국은 종종 제재를 단계적으로 강화한다. 처음에는 약한 조치를 취하고, 효과를 본 뒤 더 강한 조치로 나아간다. 이는 신중한 접근처럼 보이지만 경제전쟁에서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제재가 시작되는 순간 상대국은 적응을 시작한다. 우회망을 만들고, 대체 공급자를 찾고, 자체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제재의 효과는 줄어든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 이후 제재 회피 기술을 제도화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제재 회피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과정까지 등장했다. 중국도 미국 수출통제에 맞서 자체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압박의 시점과 목적, 지속 가능성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 경제무기의 역설: 많이 쓸수록 약해진다

경제무기는 사용할수록 상대의 의존을 줄이게 만든다. 미국이 달러 금융망을 무기로 사용할 때마다 중국, 러시아, 이란, 심지어 미국의 동맹국들까지 달러 의존을 줄일 방법을 찾는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미국이 러시아 기업들을 금융망에서 차단하자 중국은 분명한 교훈을 얻었다. 오늘은 러시아지만 내일은 중국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5년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인 CIPS를 출범시켰다. 이는 서방 금융 중개망에 의존하지 않고 위안화 거래를 처리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이후 디지털 위안화와 중앙은행 간 직접 결제 플랫폼인 mBridge도 추진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아직 달러를 대체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목표는 당장 달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위기 때 빠르게 확장 가능한 병렬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다. 일종의 금융 보험이다.

미국은 이 흐름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달러 패권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지만, 위기 대응용 대체망이 커질수록 미국 제재의 위력은 줄어든다. 미국이 금융제재를 남용할수록 다른 국가들은 대체 결제망을 더 진지하게 구축한다. 이것이 경제무기의 자기소모성이다.

◆ 유로화와 디지털 유로, 또 다른 도전

달러에 대한 도전은 중국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유로화는 위안화보다 더 강력한 잠재적 대안이다. 유럽연합은 민주주의 제도, 법치, 통화 전환성, 금융시장 안정성을 갖추고 있다. 현재 유로화는 외환거래와 중앙은행 준비자산에서 달러 다음으로 중요한 통화다.

유럽중앙은행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디지털 유로를 “유럽 주권에 관한 정치적 선언”이라고 표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디지털 유로와 유럽 자본시장 통합은 단순한 금융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달러 의존을 줄이고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다. 미국이 달러를 지나치게 정치화하면 유럽조차 달러 리스크를 줄이려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제재를 가능하면 유럽연합, 일본, 영국 등 주요 동맹과 조율해야 한다. 제재의 효과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 단독 제재가 반복되면 달러만 지정학적 리스크를 떠안는 통화로 인식될 수 있다. 반면 G7 전체가 함께 제재하면 달러만 특별히 위험한 통화로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 동결 이후에도 달러 사용이 오히려 늘어난 것은 미국과 유럽, 일본, 영국이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 클라우드와 디지털 주권: 아직 쓰지 않은 무기까지 의심받는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아직 무기화하지 않은 영역까지 의심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클라우드 서비스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오라클 등 미국 기업은 세계 클라우드 시장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유럽 정부들은 미국이 언젠가 이 지배력을 무기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 결과 유럽은 자체 기술 스택, 공공기관용 독립 소프트웨어, 주권 클라우드 구축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제재를 남용한 결과다. 미국이 “무엇이든 무기화할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되면 동맹국조차 미국 기술 의존을 줄이려 한다. 미국 정부가 “제재를 남용하지 않겠다”고 말해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21세기 들어 미국 대통령들은 거의 모두 전임자보다 더 많은 제재를 부과했다. 말은 절제였지만 행동은 확대였다.

따라서 피시먼은 제재 남용을 막기 위한 입법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식품, 의약품, 정보자료 등에 대한 제재 제한은 존재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여전히 매우 넓은 제재 권한을 갖는다. 특정 외국 사법부 인사, 국제형사재판소 판사, 동맹국 지도자, 심지어 조약 동맹국까지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자의적 사용은 미국 경제력의 기반을 갉아먹는다.

◆ 미국의 취약성: 희토류, 의약품, 배터리, 청정기술

미국이 방어해야 할 경제안보 영역은 많지만 모든 것을 자국 내로 되돌릴 수는 없다. 무차별적 리쇼어링은 비용이 너무 크고 효율성도 낮다. 따라서 미국은 진짜 초크포인트를 식별해야 한다. 중국이 의미 있는 지렛대를 가진 분야는 희토류, 의약품 원료, 배터리, 청정에너지 기술 등이다.

특히 배터리는 미래 경제권력의 핵심이다. 중국은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에서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기업 BYD는 테슬라를 넘어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으로 부상했다. 세계가 전기화될수록 배터리 공급망은 석유 못지않은 전략 자산이 된다. 미국이 청정기술 시장을 중국에 내준다면 단순히 산업 경쟁에서 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계경제의 지렛대를 중국에 넘겨주는 셈이다.

미국 일부에서는 풍부한 화석연료를 근거로 청정에너지 산업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한다. 그러나 세계는 빠르게 전기화되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교란처럼 석유 공급망 리스크가 커질수록 전기차, 배터리, 재생에너지의 전략적 가치는 더 커진다. 미국이 이 시장을 포기하면 중국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 완전한 탈중국이 아니라 ‘충분한 대체’가 필요하다

미국이 중국 제품을 모두 대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비용도 크고 현실성도 낮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강압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중국 공급이 끊겨도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는 병렬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희토류의 경우 미국, 호주, 캐나다, 유럽, 일본이 광산 개발과 정제시설, 재활용 기술, 전략비축을 함께 추진하면 중국의 독점은 약화될 수 있다.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아도 된다. 중국이 “공급을 끊으면 너희는 무너진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이것이 경제안보의 현실적 목표다.

그러나 각국이 독자적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면 문제가 생긴다. 미국은 ‘바이 아메리칸’, 유럽은 ‘바이 유러피언’, 일본은 자국 우선 정책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면 동맹국끼리도 시장을 쪼개고 중복투자를 하게 된다. 이는 ‘분절화의 악순환’을 낳는다. 모두가 안전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더 비싸고 비효율적인 경제에 갇힌다.

따라서 미국은 동맹 기반의 경제안보 블록을 구축해야 한다. 핵심광물 무역지대, 공동 가격하한제, 공동 금융지원, 안정적 장기구매 계약 등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희토류에서 성공한다면 의약품, 배터리, 청정기술, 반도체 소재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

◆ 중국은 경제전쟁에서 우위에 있는가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보다 경제전쟁에서 ‘확전 우위’를 가진다고 본다. 미국이 어떤 제재를 가하든 중국은 희토류와 핵심 공급망을 통해 더 강한 반격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25년 희토류 위기 이후 워싱턴에서는 중국과의 경제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그러나 이 평가는 미국의 지렛대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 미국이 가진 초크포인트는 중국보다 더 깊고 대체하기 어렵다. 달러 금융망, 첨단 반도체 기술, 항공기 엔진, AI 모델, 클라우드 인프라,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 희토류 정제는 어렵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다. 반면 세계적 수준의 AI 반도체 생태계와 금융 네트워크는 훨씬 오랜 시간과 신뢰를 필요로 한다.

2018년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 기업 ZTE에 수출통제를 가했을 때, ZTE는 핵심 부품 접근을 잃고 사실상 영업 중단 상태에 빠졌다. 결국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완화를 요청했고, 미국은 제재를 풀어주었다. 이 사건은 미국이 여전히 강력한 경제무기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무기의 존재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다. 미국은 시장이 흔들리거나 유가가 오르거나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 경제전쟁에서 쉽게 물러서는 경향을 보였다. 중국은 이를 관찰하고 있다. 베이징이 보기에 미국의 약점은 무기의 부족이 아니라 고통 감내 능력의 부족이다.

◆ 경제전쟁의 승패는 고통을 견디는 능력에 달려 있다

경제전쟁은 단순히 상대 GDP에 얼마나 큰 손실을 입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오래 견딜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물가 상승, 유가 급등, 주가 하락, 실업 증가가 곧 정치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대통령은 여론과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이란 제재에서 유가 문제는 반복적으로 미국 전략을 제약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교란하자 미국은 유가 안정을 위해 러시아와 이란 관련 제재를 완화하는 선택을 했다. 이는 전략적 모순이다. 적대국을 압박하기 위해 제재를 사용하다가, 국내 기름값 상승을 우려해 다시 적대국에 수익을 안겨주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경제전쟁을 지속 가능하게 수행하려면 국내 취약성을 줄여야 한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전략비축을 강화하며, 핵심 산업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은 국민에게 경제적 희생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미국 시민은 명분이 정당하고 전략이 설득력 있다고 느낄 때 비용을 감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미국인 다수가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 높은 연료비를 감수할 수 있다고 응답한 것은 이를 보여준다.

◆ 대만 위기와 경제억지의 신뢰성

미중 경제전쟁의 최대 시험대는 대만일 수 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려 한다면 미국은 군사적 억지뿐 아니라 경제적 억지도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베이징이 미국의 위협을 믿느냐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달러 금융망 차단, 반도체 접근 봉쇄, 항공·소프트웨어 제재 등을 위협하더라도 중국은 “미국이 그 경제적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물을 것이다.

최근 미국의 정책 후퇴는 중국에 의심할 근거를 주었다. 시장이 흔들리면 관세를 완화하고, 유가가 오르면 제재를 늦추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경제무기는 종이 위에서는 강력하지만 실제 사용 의지가 없으면 억지력이 떨어진다. 대만 문제에서 미국이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미리 동맹과 제재 패키지를 조율하고, 국내 경제충격 완화책을 마련하며, 국민에게 전략적 중요성을 설명해야 한다.

◆ 새로운 경제질서: 세계화 이후의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질서는 브레턴우즈, 관세무역일반협정, 세계무역기구를 통해 제도적으로 구축되었다. 규칙, 협정, 다자주의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새 질서는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제재 하나, 관세 하나, 수출통제 하나, 산업보조금 하나가 쌓이면서 비공식적이고 불균형한 새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세계경제가 블록으로 분열될 위험을 경고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더 위험한 것은 질서 있는 블록화가 아니라 무질서한 각자도생이다. 1930년대 세계경제는 보호주의와 경쟁적 평가절하, 무역장벽으로 무너졌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반면 냉전기 서방 블록은 내부적으로 깊은 경제통합을 유지하며 높은 성장을 달성했다.

따라서 핵심은 분열을 피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분열을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조율된 경제안보 블록을 구축한다면 번영과 안보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각국이 독자적으로 장벽을 세우면 세계경제는 비효율과 불신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

◆ 미국이 제시해야 할 긍정적 비전

미국은 1990년대 세계화를 주도했듯이 이제 새로운 경제질서의 긍정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중국을 배제하거나 관세를 올리는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국이 만들어야 할 것은 경제안보 동맹이다. 이 동맹은 의약품, 핵심광물, 청정에너지, 반도체, 디지털 인프라 등 전략 부문에서 공동 취약성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 동맹은 폐쇄적 자급자족 체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규모의 경제와 시장 효율을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 같은 경쟁국이 특정 병목을 이용해 동맹국을 강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조율된 분절화’의 핵심이다. 완전한 세계화도 아니고 무질서한 보호주의도 아닌, 신뢰 가능한 국가들 사이의 깊은 통합이다.

경제전쟁의 시대, 미국은 더 신중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

미국은 경제전쟁의 시대를 열었다. 달러 금융망, 수출통제, 제재, 기술 봉쇄를 통해 미국은 오랫동안 상대국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제 다른 국가들도 같은 논리를 배웠다. 중국은 희토류와 배터리를 무기화하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교란하며, 유럽은 디지털 주권을 강화하고, 중견국들은 탈달러·탈미국 의존을 모색한다.

미국의 우위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달러, AI 반도체, 금융시장, 기술기업, 동맹 네트워크는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나 그 우위는 무한하지 않다. 남용하면 줄어들고, 오판하면 반격당하며, 동맹 없이 사용하면 고립된다.

새로운 시대의 경제전쟁 매뉴얼은 세 가지 원칙으로 요약된다. 첫째, 진짜 초크포인트와 가짜 초크포인트를 구분해야 한다. 둘째, 경제무기를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동맹과 함께 방어망과 공격전략을 조율해야 한다.

경제전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혼돈과 붕괴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전략 없는 무기화는 세계경제를 파편화하고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동시에 약화시킬 것이다. 반면 절제된 사용, 동맹 기반 협력, 핵심 취약성 완화, 국민적 설득이 결합된다면 미국은 여전히 새 질서를 주도할 수 있다.

세계화의 시대가 끝났다면, 다음 시대는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그것이 경제 블록 간 안정적 경쟁의 시대가 될지, 무질서한 경제전쟁의 시대가 될지는 지금 각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미국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경제력은 무기이지만, 동시에 신뢰 위에 세워진 기반이다. 무기를 휘두르는 법만큼이나, 그 기반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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