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양복 외길 인생을 걸어온 체스타필드의 이동만 대표는 미래지향적이며 앞을 내다 볼 줄 아는 비저너리(New Visionary)의 전형이다. 우리나라 양복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대표는 기술과 품질 특수소재로 차별화를 선언했다. 맞춤양복의 명품화를 선언한 것. 맞춤양복의 맛을 알고 양복을 즐겨 입는 사람들에게 명품을 입고 싶다는 색다른 가치를 구현해 주목을 받고 있다. 양복 장인이 만드는 맞춤양복이 순식간에 저명인사들은 물론 맞춤양복을 찾는 발길을 체스타필드로 향하게 하는 비결과 ‘전국소기업소상공인대회’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장안의 최고의 양복 명인 이동만 대표의 양복인생. 최근에 가업을 잇겠다는 아들, (사)한국맞춤양복협회 부회장으로 재임하며 세계대회에 작품 출품 등을 통해 맞춤양복의 우수성을 알리고, 대중화하는데 기여한 이대표의 복장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들어 보았다.
대기업 진출은 소상공인 밥그릇을 넘보는 것
양복이 주요 복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을 계기로 복제개혁을 단행하면서부터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서유견문, 고종시대사 등에는 관복이 아닌 일반의복으로서 양복을 입은 기록이 전해진다. 양복이 전래된 지 한 세기만에 우리나라의 양복기술은 세계기능올림픽에서 12연패를 차지할 만큼 발달했다. 세계기능올림픽 양복부문에서 우리나라가 부동의 1위를 계속 차지하다 보니 기능올림픽부문에서 양복부문이 제외되는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1960년대엔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복 재단사들이 카 퍼레이드를 하며 시내를 누빌 만큼 테일러 전성시대를 누렸다. 고객의 이름이 새겨진 맞춤양복은 기성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함과 퀄리티를 지니고 있으며, 버튼, 허리선, 깃등 모든 것이 기성복과는 너무나 다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옷이라는 자부심을 지닐 수 있는 의복이 맞춤양복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맞춤양복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맞춤양복이 사양산업이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기성복 브랜드 중 맞춤양복을 하는 곳은 아르마니, 에르메스, 키톤등 수입브랜드와 LG패션의 마에스트로, 제일모직의 갤럭시 등 국내 일부 브랜드에 국한되어있으며, 국내 장인들도 맞춤양복 사업을 접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에 삼성에서 ‘란스미어’란 브랜드로 맞춤양복을 시작해 동종의 기술자들을 스카웃 해가는 비윤리적 행위를 해 동반성장위원회로부터 제재조치가 취해지는 등 불미스런 대기업 횡포가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맞춤양복의 이미지는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다. 꼼꼼하게 장인의 손이 가지 않으면 완성할 수 없는 섬세한 디테일로 맞춤복만이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인데 일부 대기업 기성복 업체들이 맞춤양복 시장에 진출하여 장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등의 횡포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맞춤양복의 장인정신은 반드시 최고의 양복을 만든다는 자부심에서 시작해야 하며 맞춤양복의 고급화와 대중화를 위해 맞춤양복의 멋은 장인정신과 고급기술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며 진정한 명품으로 태어난다.
명품만 고집하는 뉴 비저너리(New Visionary)의 탄생
이동만 대표는 17세에 테일러와의 인연이 돼 올해 40여 년간 맞춤양복 분야에서 장인의 길을 걸었다. 따라서 오랜 경험을 가졌기에 옷을 보면 바로 진단해서 해결점을 찾는 특별함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맞춤양복은 하면 할수록 오히려 어렵다고 생각한다. 양복을 납품한 후, 다시 고객을 만났을 때,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보완했기에 오늘날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맞춤양복 분야는 고임금의 기능사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소량 생산하는 시스템이어서 급속한 변화를 도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비수기에는 제품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R&D에 매진하고 있다. 오늘날 양복의 소재는 실로 다양해 종이로 만든 의류까지 등장해 옷을 만드는 소재를 선택하는 폭이 훨씬 광범위한 편이다. 이대표는 3남1녀 중 막내로 5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 태어나 처음에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해 미션스쿨에 다녔다. 위로 두 명의 형이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 읍내 학교를 다니면서 양복기자재 심부름을 다니곤 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불량배들에게 양복 기자재 살 돈을 전부 빼앗기는 사건이 생겼다. 그이후로 이대표는 태권도를 배우게 됐고, 이후 목사의 꿈을 접었다. 당시 17세의 나이에 형이 하던 양복 일을 자연스럽게 배웠고, 이후 서울에 가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20세의 나이에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서울 명동에서 더욱 실무경력을 쌓아 수제양복의 명문 ‘체스타필드’에 입사했다. 8년간 근무하면서 체스타필드의 전통기술을 전수받아 탁월한 재단사로 거듭난다.
이동만 대표는 보수보다 남들이 갖지 못한 우수한 기술을 습득하는데 노력했으며 그 결과, 자신이 18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지난 89년 35세의 나이에 강남구 논현동에 국내 최고의 맞춤 양복점을 오픈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 체스타필드 창립자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기술을 습득해 명품 맞춤정장의 맥을 이어온 수제자가 되었다.
또한 맞춤정장 체스타필드의 맥을 잇는다는 자부심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며, 장인정신의 혼이 느껴졌다.
그는 지난 98년 8월 한국남성복기술경진대회에 처음 출전하여 영광의 노동부 장관 대상을 받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신을 다한 결과 이룬 쾌거였다.
이대표는 “성경말씀에 나오는 ‘게으른 종’이 되지 않도록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모든 사람들에게로 더욱 넓혀 베풀겠다는 일념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맞춤양복과 넥타이, 그리고 드레스셔츠 등 토탈 패션을 추구한다.
고객이 원하는 계열의 양복에 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를 해 주고 있다.
특수소재 R&D로 매출증대, 협회 기술전수로 대중화, 지식경제부장관상 수상
지난달 일산 킨텍스에서 전국소기업소상공인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40여 년동안 현업에 종사하며 양모 뿐 아니라 특수소재로 만든 양복 및 봄. 가을철 가볍게 착용할 수 있는 체스타필드 코트를 개발. 보급하여 업계의 매출증대를 이끌었으며, (사)한국맞춤양복협회 부회장으로 재임하며 대만양복협회에 기술전수, 제 22, 23차 아시아주문양복연맹총회 한국대표단으로 참가, 한국맞춤양복패션쇼 작품(총6회)등을 통해 맞춤양복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대중화하는데 큰 공로를 인정받아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을 받은 이 대표의 그동안의 공적에 빛을 더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 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소상공인들은 우리경제활동의 주역이며 중심기둥입니다. 안심하고 행복하게 사업할 수 있는 좋은 환경 만들기에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배은희 국회의원 또한 소상공인들에게 카드수수료를 부담시키는 것은 불합리한 행위라고 했으며 단합과 공정을 통해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문화 만들기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대표는 자신의 작품 모티브는 잡지나 각종 행사, 아시아대회, 세계대회, 그리고 갤러니아 명품관의 양복들과 고객들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어 하나하나 작품에 반영한다고 한다. 길거리에 건물을 보면서도 디자인을 생각한다는 이대표에게서 열정과 섬세한 장인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고객이 만족한 양복,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평가받은 작품 이여야만 한다는 그에게서 소비자와 각계 전문가들의 좋은 평가와 좋은 작품이라는 품평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분명함 또한 느낄 수 있다.
이대표는 자신의 작품은 선천적이거나 뛰어난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후천적이며 노력에서 나왔다고 겸손함을 표하기도 했다. 또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지켜보면서 직원. 가정. 업계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그에게서 강한 인간애 마저 느껴졌다.
수년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것을 지켜온 많은 장인들의 혼을 져버리고 국내의 기능경기대회를 없앤 정책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외국은 이런 대회를 유치하고자 정부에서 협조해주며 공직자들이 격려하지만 우리의 현 실정은 옛것을 버리는 형태라며 마치 조강지처( 糟糠之妻)를 버린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정책의 무관심속에서도 지난달, 협회 강남서초지부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센터 5층 오크룸에서 조찬 세미나을 개최했다. ‘스마트시대 홍보마케팅 교육’을 주제로 양복점 홍보마케팅 교육을 진행했다.
홍보대행사 출신의 홍보전문가인 박영만 소장이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소통전략, 온라인 뉴스 기사화 위한 보도자료 기획과 작성법, 인터넷마케팅 온라인홍보, 검색상위 노출전략, 블로그와 동영상 UCC 제작 및 홍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소셜미디어, 트위터 및 페이스북 홍보마케팅, SNS 및 소셜미디어 홍보마케팅, 스마트폰 및 모바일 홍보마케팅, 링크나우 온라인 인맥사이트 활용법, QR코드 홍보마케팅 및 QR코드 제작법 등을 강의했다.
이렇게 협회는 회원들의 위상적립과 회원들의 맞춤양복업계의 경영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왜 이일을 하고 있는지? 범사에 감사하라!
직접 재단을 하며 25년이상 함께 해 온 6명의 직원들에게 늘 “내가 왜 이일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고 이곳은 우리 후손들이 꿈을 이루는 모태다!”라며 범사에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기를 주문한다. 서울교회 안수집사이기도한 이대표는 CBMC(기독실업인모임), 라이온스클럽(삼성), 로타리클럽(장원)등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 소외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에도 한 축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대표의 그림자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부인(이은자)이 있었기에 이 자리가 가능했다며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게 오늘의 수상을 돌리기도 했다.
최근에 또 하나의 행복한 일이 있다고 했다. 늦둥이 고3 수험생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겠다는 것. 평소에 아버지를 존경해 온 아들에 대한 평가!
이대표가 살아온 지난 세월은 아들의 평가만으로도 가히 짐작이 간다.
맞춤양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체스타필드,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두 부자가 이끌어갈 체스타필드 호(?)에 또 다른 미래 비저너리의 창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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