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 건설기술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매년 개최되는 <2018년 건설기술인의 날> 행사에서 ㈜간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이하 ‘간삼건축’) 김자호 회장이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김 회장은 ‘건축문화의 선진화를 선도하고 사회공헌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제고했으며,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이번 수상은 이미 세계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는 간삼건축을 더욱 빛나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간삼건축은 영국 건축전문지인 <Building Design>사에서 발표하는 ‘World Architecture 100(WA 100)’에서 2009년 43위, 2010년 36위, 2011년 40위, 2013년 57위, 2014년 37위를 달성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회사로 우뚝 자리매김했다. 영광스러운 상을 수상한 김자호 회장을 만나 그의 일 이야기, 그리고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창업이 아닌 철학의 태동
한국은행 본점(현 화폐박물관)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가는 서울의 명소 중의 명소이다. 당시 이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모인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원정수와 지순은 떨리는 가슴으로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이 설계는 당시에는 최고의 건설 프로젝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건설이 모두 끝난 후 그 위용을 드러낸 한국은행 본점은 ‘이 땅에 비로소 석조건축의 이정표를 작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건축인들의 승리이자, 대한민국 설계, 건축의 자랑이기도 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간삼건축이 태동되었다. 당시 설계에 참여했던 사람 중의 한명이 현재 간삼건축의 지순 상임고문이기 때문이다. 이후 수많은 재능있는 차세대 건축가들이 간삼에 속속 참여했으며 현재 간삼건축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자호 회장이다. 그는 간삼건축의 시작은 ‘창업’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철학의 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저희는 늘 건축의 본질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건축은 오로지 사람을 배려하고 자연을 담아내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저의 경험이자, 간삼건축이 지난 83년 설립 이래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지금까지의 결론입니다. 그동안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건축물을 짓겠다는 믿음으로 사람과 환경이 주인이 되는 건축 디자인을 지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또한 이는 우리 회사의 이름에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간삼(間三)’은 3개의 간(間)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人間)을 위해 시간(時間)을 뛰어 넘는 공간(空間)을 창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저희 회사는 창업이라는 하나의 사업적 과정을 통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철학이 태동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일반적으로 건축 설계이라고 하면 전체의 70% 정도는 주거용, 즉 아파트, 주상복합건물, 근린생활시설의 설계이며 나머지 30%가 병원, 호텔, 연구소, 미술관, 회사 빌딩 등의 상업용 설계이다. 간삼건축은 주거용은 하지 않고 상업용 설계 분야에서만 일을 해왔다. 그 중에는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대형 건물들이 꽤 많이 있다. 포항공과대학, 영풍빌딩, 동숭아트센터, 명지병원, 포스코 역사관, 잠실 갤러리아 팰리스, 부산 우동 U-TOWN(80층), WBC솔로몬타워(110층), 한화갤러리아 천안점, 여수엑스포 아쿠아리움 등등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창립부터 이제까지 지은 건물만 전국에 4천 개가 넘는다. 간삼건축의 지난 35년간의 역사는 곧 한국 건축의 역사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셈이다. 무엇보다 1995년 설계한 POSCO센터는 간삼건축의 진가를 발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제 더 이상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디자인과 기술로도 최고급 인텔리전트 빌딩을 완공할 수 있음을 확인시켰고, ‘한국 현대건축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이어 간삼건축이 진행한 프로젝트마다 역작이라는 평단의 호평과 각종 수상이 이어져왔다. 또한 주력 분야였던 오피스 빌딩뿐 아니라 휴양시설 등 새로운 분야와 프로젝트에 도전하며 활동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창의적 발상과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자호 회장은 그 원동력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희는 트렌드에 함몰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는 혁신을 감행해왔습니다. 열린 시각과 정신으로 미래 건축의 정형을 제시해온 이러한 ‘건강한 행보’는 간삼건축의 도약기도 이어졌던 것이죠. 창의성와 기술력의 조화로 건물 자체가 아니라 건물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을 우선해온 간삼건축의 정신이 대한민국 건축의 역사에 알알이 박혀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웠을 때 해고한 직원, 전원 재채용
간삼건축의 김자호 회장은 대한민국 건축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만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간 세브란스병원 우리라운지,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광희문성지 순교 헌양관, 아프리카 남수단 미션스쿨, 명동대성당 문화관 등 국내외 다양한 시설에 설계 및 CM감리 재능기부를 실천해왔다. 돈으로 따지면 적지 않은 수익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이 사회에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것이다.
또한 각종 후원기금, 발전기금도 많이 냈다. 사랑심기(장애아동 후원), 천안함 실종자 가족을 위한 성금, 중앙대 발전기금, 다문화사회진흥원 후원, 재단법인 행복세상 후원 등 취약계층 지원과 후학 양성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자 현재에도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부라는 것은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도 이런 기부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발전에 대한 김 회장의 간절한 염원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헌법보다 더 중요한 것, 헌법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느 것이 바로 ‘윤리와 도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위에 또 하나의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헌법보다 더 강하고, 헌법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한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윤리와 도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개개인들이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윤리와 도덕의식으로 무장을 해야합니다. 미국이 지난 200년간 헌법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도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개개인의 삶에 스며들어 있던 청교도적인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삶이 얼마나 윤리와 도덕으로 무장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기득권층에게 더 많은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확산되었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저 건축설계를 하는 한명의 기능인이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가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전파하는 진정한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의 경영에 있어서도 이렇게 약자를 배려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회사 세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체의 주식을 후배 임원들에게 이양함으로써 임직원 모두가 회사의 주주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간삼건축만의 기업문화를 창출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이런 경영은 2017년 7월, SBS 스페셜(479회) <회사를 바꾼 괴짜 사장>편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회사가 어려울 때에도 직원들과의 의리를 잊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까지 간삼건축이 제일 어려웠을 때에는 1997년의 IMF 당시였다. 직원이 200명이었지만, 건축경기가 급격하게 얼어 붙는 바람이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다. 전 직원에게 일괄 사표를 받은 후 그 중에서 80명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김 회장은 “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전원을 다시 채용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은 실제 2003년에 지켜졌다. 그때 그만 둔 80명에게 모두 재취업 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러한 믿음과 신뢰의 경영을 해온 결과, 지금은 직원 600명의 대형 건축 사무소가 되었다.
스키와 아이스하키에 담긴 인생철학
더불어 그는 해외진출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건축 기술을 전 세계로 전파하기도 했다. 단순한 사업가가 아닌, 대한국민의 발전된 모습과 기술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도 했다는 이야기다.
그간 김 회장은 아부다비, 하노이, 호치민, 카자흐스탄에 지사를 설립해 운영해왔다. 이곳에서 지역을 빛내는 큰 건물들을 숱하게 설계하고 건축해왔다. 대표적으로 힘람그룹 호치민 호텔(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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