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음식은 많지만 새로운 맛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국의 음식도 일단 타지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그 본연의 맛과 향을 잃게 된다. 음식을 판매하는 사람은 현지의 입맛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국의 요리는 지금 이곳의 취향과 섞여 새롭게 재창조되지만 요리는 이미 고향을 잊었다. 같은 재료를 쓴다 해도 요리가 탄생한 곳의 땅의 향이 없고 같은 이름을 붙여도 그곳의 문화가 없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국적을 잃고 정체성을 잃은 수많은 유명 음식들을 먹고 있다.
한남동의 ‘티그레 세비체리아’에서는 남미 음식 중에서 페루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페루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미식 국가다. 남미 국가 중에서도 음식이 가장 맛있기로 유명하다. 각종 설문 조사와 미식 랭킹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유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날씨를 보여주는 페루의 기후적 특성처럼 이곳의 음식은 우리나라 입맛에는 잘 맞지 않다. 향이 강한 재료들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요리에 곁들이는 고수나 적양파가 종종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대신 이 낯선 맛은 분명 이국의 풍미를 전해준다.
‘티그레 세비체리아’를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연인처럼 즐거운 낯섦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메뉴의 면면을 보면 막상 익숙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각각의 요리들이 품고 있는 맛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지구 반대편의 문화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세비체>
생선회를 라임이나 레몬에 적셔 옥수수, 감자, 적양파와 곁들어 먹는 세비체(Ceviche)는 페루 요리 중 가장 유명하다. 겉모습을 보면 단순히 소스에 담긴 생선회처럼 보이지만 일단 맛을 보면 상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맛이 강해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오히려 낯선 맛이 오감을 자극한다. ‘레체 데 티그레’라는 소스가 매콤한 맛을 내는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맛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느끼면 요리에 대한 경이까지 생겨난다.
세비체는 원래 페루의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 먹던 요리다. 페루의 국토는 크게 동쪽으로 안데스 산맥의 고산지형과 서쪽으로 이어진 해변의 사막지형으로 구분된다. 서쪽의 해안은 훔볼트 한류의 영향으로 고온 건조한 바람이 내륙으로 불어와 사막이 됐다. 척박한 고산과 사막에서 안데스의 잉카인들을 먹이고 살찌운 것은 감자다. 스페인의 침략으로 서구 문명이 유입하고 나서부터 원주민들은 차별과 핍박을 받았는데 그들이 페루 하층민이 되었다. 먹을 것이 없었던 사람들은 해안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세비체는 라임과 레몬에 절여 무더위에서 보관기간을 늘린 음식이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먹었던 요리가 이제 세계 최고의 음식 중 하나가 됐다. 국민들 대부분이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해서 값싼 가격에 길거리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뽀요 아 라 브라사>
뽀요 아 라 브라사(Pollo a la brasa)는 페루의 구운 닭요리이다. 현지에서는 남미 고추인 아히(Aji) 소스만 따로 덜어주는 경우가 많지만 ‘티그레 세비체리아’에서는 돈까스처럼 소스를 듬뿍 뿌려 준다. 닭요리를 좋아하는 남미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음식이다. 남미 전역에서 아로소 꼰 뽀요(Arrozo con pollo)라는 음식을 기본 메뉴처럼 팔고 있는데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밥과 된장찌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음식이다. 소박한 요리로 밥에 튀긴 닭고기 조각과 소스를 올려 준다. 심지어 현지에서는 KFC에서도 이 메뉴를 팔고 있다. 두 요리의 성격이 유사하다. 뽀요 아 라 브라사를 먹으면 페루의 가정식을 느낄 수 있다.
<피카로네스>
엠빠나다(Empanada)와 피카로네스(Picarones)는 페루의 대표적인 간식이다. 엠빠나다는 남미식 만두로 자주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빵의 느낌에 가깝다. 속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만두의 재료다. 밀 반죽으로 만든 빵 속에 고기와 채소 등 각종 소를 넣어 채운다. 겉은 다소 퍽퍽한 느낌이 있지만 속은 뜨겁고 부드럽다. 현지에선 한 끼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음식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엠빠나다는 크기가 더 작고 식감이 좀 더 부드럽다. 피카로네스는 단호박 반죽으로 만든 도넛이다. 계피향 소스를 뿌려 먹는데 알싸한 향이 풍미를 더한다. 쫀득쫀득한 식감이 찹쌀의 느낌을 내는데 후식으로 적당하다.
<아히 데 가이나>
이밖에도 소고기 요리인 로모 살타도(Lomo satado), 아히 소스를 뿌린 닭요리 아히 데 가이나(Aji de gallina) 등 재미있는 요리가 많이 있다. 페루의 대표 칵테일 피스코 사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다만 레시피에 계란 흰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꺼림칙하다면 피스코 펀치를 마셔보길 권한다. 피스코는 페루 남부와 칠레 북부에서 생산되는 포도로 만든 증류주이다. 피스코는 무색무취에 술맛이 강하지 않으면서 도수가 강한 술이다. 보드카나 진 등과 도수는 비슷하지만 술만은 훨씬 덜하다. 가능하다면 피스코를 스트레이트로 마셔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