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Luxury)의 유니크함을 알아보는 타고난 안목의 소유자
“당면한 일은 굉장한 열의로 몰두하지만 일상에선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살고 싶어요”
사람의 재능이 발휘되는 분야는 수도 없이 많지만, 유난히 선천적인 감각을 보유한 사람이 있다. 감각을 타고 났다고 해서 절차탁마 없이도 두각을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어쨌든 그렇지 않은 이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 행운을 부러워할 수 밖에. 2016년 대한민국사회발전대상 브랜드대상 패션부분을 수상한 (주)브라가의 정임행 대표가 아마도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삶의 기복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일상의 풍요를 누릴 줄 아는 정 대표는 진정한 딜레탕트( dilettante)처럼 보인다.
어느 날 가구가 눈에 들어왔다
청담동 파모소(이탈리아어로 유명한(famous)의 뜻인 이 명칭은 정임해 대표가 직접 창안했다) 빌딩 자신의 사무실에서 (주)브라가의 정임행 대표는 자신의 활력으로 주변을 생기 있게 만들었다. 선선한 말투, 막힘없는 적정한 톤의 웃음소리,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선의가 그녀에게 단박 호감을 느끼게 했다.
“제게 뭐 취재거리가 있나요. 저는 그냥 직업으로서 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인데.”
상투적인 겸손의 제스처가 아니다. 정임행 대표는 진심으로 자신을 그렇게 여기는 듯하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상품이 모인 청담동에서 가구와 모피라는 럭셔리(Luxury) 브랜드를 취급하는 만큼, 다소간 나르시시즘이 섞인 오연한 태도가 있을 법도 하지만 정임행 대표에겐 편협이 없다.
(주)브라가 정임행 대표가 가진 심미안적 선구안은 어느 날 문득 확인되었다. 30대 초반의 어느 때 그녀는 유럽에 있었다. 정임행 대표의 부군은 해외 출장이 잦은 직업이었는데 자주 그녀를 동반해줬다. 여느 때와 같았던 여행길에서 정임행 대표는 이후 계속될 자신의 일과 우연히 조우했다.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프랑스 퐁텐블루 성을 방문했는데 거기에서 본 가구나 물건들이 너무나 멋져 보였어요. 세월의 더께가 묻은 낡은 것들이었지만 고풍스러움과 우아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확연한 느낌이 전해왔어요. 매혹된 거죠. 그 순간부터 유럽의 클래식 가구를 취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 경험도 없었는데 가구 수입에 뛰어들었지요.”
그 가구가 파모소에 전시돼 있는 ‘펜디 까사’다. 펜디 까사는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 펜디(FENDI)의 토털 리빙 브랜드다. 브랜드의 제왕 ‘루이뷔통 모엣 헤네시(LVMH)’에 직접 소속된 가구 브랜드다. 그러니 동양의 한 여인이 유럽의 명품 가구를 수입하기를 결정했다고 대뜸 수락해 줄 리 만무하다. 약 1년여에 걸친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고 한다. 브랜드 지속능력, 재력, 지역성 등 평가 항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1990년의 일이다.
지나가다 들른 대기업 회장이 대량 구매하다
90년대 초반은 대중의 의·식·주 패션이 지금처럼 전반적으로 아직 상향되지 않았던 때이다. ‘펜디 까사’는 88올림픽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가 막 시작된 시기여서 중산층에게는 아직 생소한 고가품이었고, 이전에도 해외여행이 가능했고 그래서 안목을 가질 수 있었던 일부 경제적 상위 층에게 주로 어필했다. 정임행 대표 스스로도 무모했다고 자인할 정도의 시작이었다.
“오픈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인데, 어느 날 점잖으신 한 신사분이 들어오셨어요. 가구를 둘러보시더니 임원들 방에 가구를 바꿔줘야 한다고 매장에 있는 것을 전부 사시더라구요. 전 아직 고객에게 말도 잘 못 붙일 때였는데 꿈만 같았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의 회장님이셨어요. 정말 힘이 났어요. 굳건한 발판이 되었지요. 나중에는 기업 연수원에도 저희 가구를 놓아 주셨어요. 지금 자제분들도 저희 가구를 사용하셔요.”
정작 정임행 대표 자신도 몰랐던 훌륭한 감식안이 그녀 내부에 있었고, 그것을 알아본 고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펜디 까사는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났다.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전통과 품격을 가진 최고급 유럽식 가구 실물을 쉽게 접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해외를 갈 수도 없었던 학생들은 정임행 대표의 매장에 와서 견학을 하고 리포트를 쓰기도 했다.
펜디 까사는 탑클래스 연예인들의 혼수품이나 집안 장식 가구로도 알려져 있다. 탤런트 김희선 씨는 이곳에서 혼수품을 모두 준비했고 고소영 씨와 배용준 씨도 애호가라고 한다. 중동의 부호들도 구입을 위해 매장에 찾아 왔었다고 하니, 정임행 대표의 직감적인 가구 셀렉션 능력을 짐작할 만하다.
“가구는 사람의 일상을 편안하게 위안해 주는 요소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족처럼 집안에서 늘 마주치는 존재이잖아요. 음식이나 옷처럼 개인의 기호와 취향과 잘 부합해야 하지요. 또 명품 가구는 대를 이어서 쓸수록 더욱 고풍스런 가치를 발휘하지요.”
경기침체의 탈출구를 모피에서 찾다
경제적 능력이 상당한 사람들이 주 구매층이기 때문에 펜디 까사의 경영은 순조로웠다. 정임행 대표가 고른 가구들은 희소한 가치를 선호하는 그들에게 항상 환영 받았다. 하지만 세상의 일은 홀로 갈 수 없었다. 2000년대 초반 건설경기가 무너져 경제 전반이 침체기를 맞을 때 불황을 알지 못했던 펜디 까사에도 영향이 미쳤다. 경기가 안 좋으니 건물 세입자들에게서 돈이 안 들어오고 가구 사업도 과도기를 맞게 되었어요.
“평생 업이라 여기며 즐겁게 일했지요. 남편이 있으니 부양의 부담도 없이 정말 여유 있게 저의 취향과 의지대로 운영했어요. 생활은 무리 없이 했지만 비축한 돈이 없어서 아득한 마음이었어요. 처음 겪는 어려움이라 너무 걱정이 되니까 누워 있는데 손발이 안 움직여질 정도였어요. 한창 공부 중인 아이들 걱정이 태산 같고... 집을 쳐다보면서 그냥 여기서 살 정도만 되면 좋겠다 하고 기도만 했어요.”
활로를 찾기 위해 정임행 대표의 감각적인 촉수가 다시 움직였다. 가구는 부피나 소비자 사이클링이 빨리 순환되는 품목이 아니었다. 그래서 옷을 병행하기로 했다. 애초 그녀의 안목이 하이-레벨이었던 만큼 옷 중에서도 ‘모피’를 선택했다. 가구를 수입하면서 인연을 맺은 이태리 친구들이 도움이 되었다.
“줄리아나테조는 70년 정도 된 이태리 명품 모피입니다. 여담이지만 클린턴 힐러리와도 친해 전용기를 보내줬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국제적인 교분을 가진 브랜드이니 믿음이 가더군요.”
펜디 까사가 그렇듯 ‘줄리아니테조’ 또한 대중적인 제품은 아니다. 구매층이 한정돼 있는 고가품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선택일 뿐이다. 갤러리아 명품관 입점을 거쳐 현재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느낌 때문에 생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현재 파모소에서는 가구보다는 모피에 치중하는 편이다.
강남상공회의소에서 CEO과정 공부 중
타고난 긍정성과 삶을 천진하게 향유하는 자세도 있었지만 정임행 대표는 한 번의 위기를 겪고 난 후 주어진 나날을 더욱 소중하게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요즘 강남상공회의소 CEO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수강생이지만 훨씬 이전부터 회원이었고 현재 부회장을 맡고 있다. CEO과정에서는 회장직을 맡고 있다니 이번 기수들의 상호관계성의 시너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업을 시작한지 한 40년 되었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그냥 제 직업이니 열심히 한다는 소박한 마음가짐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제대로 잘 해보고 싶다는 사업적 욕심이 슬며시 생기고 있어요. 제가 일이 주어지면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타입이거든요.”
자신의 장점을 스스로 말하는 것조차 정임행 대표는 쑥스러워하지 않고 정직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말한다. 대화자가 그녀의 아우라에 흡입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임행 대표는 이제부터는 좀 더 체계있게 사업을 진행하면서 CEO로서 장안에 이름도 날리고 싶다는 당연한 욕구를 내비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성향과 기질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의 자기 판단에도 신중하다.
“조심스레 욕심을 키워가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제 자신의 역량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고가품을 취급하니 엄청난 욕망을 갖고 있으시라 짐작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 앞의 것에 만족하며 사는 성향이 있어요. 사업가로서는 비 진취적이고 할 수 있겠지만 내면을 스스로 들여다보면 자신 없는 부분에서는 헛된 욕망을 꿈꾸지 않고 살아왔거든요.”
정임행 대표는 그동안 매체 인터뷰를 모두 정중히 거절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업도 전성이 생긴 후로는 홍보를 충분히 해놓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다. 그래서 요즘 홍보 트렌드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아프리카에 학교 지어주고 싶어
파모소 실장인 김현주 씨는 정임행 대표를 가리켜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분이라고 말한다. 수입할 가구나 모피를 선택할 때도 일반 직원들과 안목이 달라 우려하지만 결국 제일 먼저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정임행 대표가 고른 물건이라고 한다. 열 가지의 화려함 속에 묻혀버릴 사소한 하나를 집어낼 수 있는 타고난 센스의 소유자가 정임행 대표다.
정임행 대표는 요즘 파모소 빌딩 옥상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다.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신세 진 지인들에게 파티 장소로 빌려주거나 작은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섹소폰을 연주하는 남편(이홍노)을 위해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지만 재즈를 부르기도 한다. 일상의 행복들을 흘려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저는 신세를 지면 꼭 갚아야 해요. 빵 하나를 얻으면 그 열배를 갚아야 돼요. 제가 특별히 괜찮은 사람은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왔어요. 별거 아니잖아 하는 마음으로 물질에 큰 욕심내지 않고 살아 가려구요.” 이런 마음은 그녀가 독실한 크리스찬이기 때문에 우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여건이 무르익으면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것이 바람이라는 끝맺음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