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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30 17:40 (일)
종합

진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진도군협의회 김승이 고문

조직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을 양보할 줄 아는 지도자로서의 겸허한 리더십은 오랜 세월 지역 발전을 위해 정진해 온 김 고문의 면면을 짐작케 한다.

진도 토박이…지역사회 일군으로 평생 공헌

2천 여 점의 각종 수석 소장, 수석전시관 건립의 꿈

지난해 12월 22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2016년 국민훈장 수여식'에서 김승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진도군협의회 고문은 통일ㆍ안보에 관한 국론분열ㆍ갈등해소 활동에 헌신하며 국민의 통일 의식을 제고하고 미래통일 준비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의 수훈인‘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김승이 고문은 진도민주평화통일협의회 16-17기 회장을 역임한 인물로 나라사랑에 대한 열정과 봉사로 점철된 삶을 걸어 왔다.

진도의 발전 위해 헌신

“후배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후배들에게 많은 부분을 양보하고 밀어 준다” 김 고문은 모란장 수훈 소감을 묻자 자신이 받을 줄 몰랐다며 겸손해했다. 진도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4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김 고문은 남과 북이 통일이 되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통일에 대한 신념을 밝혔다.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 선생과 경제발전을 이룬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은 김 고문은 정치계의 굵직한 거목인 윤00 의원,박00 의원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서로가 의견이 다르지 않나? 의견을 모아야 더 좋은 방안이 나온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조직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을 양보할 줄 아는 지도자로서의 겸허한 리더십은 오랜 세월 지역 발전을 위해 정진해 온 김 고문의 면면을 짐작케 한다. 스스로를 농사꾼이라고 말하는 김 고문은 1969년 진도로 내려와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성실함이 몸에 배인 그는 1971년 특별전형으로 진도 내 농협에 들어가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택시사업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결국 김 고문이 선택한 업은 농사였다. 농사로 바쁜 중에도 김 고문은 지역 사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진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진도군협의회 고문, 대한수석인 총연합회 고문, 수총전남연합회 고문, 진도동진농협조합장(전), 진도군 군의회 의장(전), 진도동부라이온스 회장(전) 등 고향 진도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각별하다.

지난 90년 제3대 민선 동진농협조합장에 당선된 김 고문은 3선을 할 정도로 탁월한 리더십을 인정받기도 했다. 동진농협은 진도지역 일곱 개 단위조합과 공동으로 40억 원을 출자해 미곡처리장, 청과물처리장, 구기자가공공장을 설립해 진도의 우수한 쌀을 비롯한 농산물을 전국 각지에 공급함으로써 조합원들의 살림살이를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진도 특산품인 구기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맛과 뛰어난 약효를 바탕으로 캔 음료를 만들고 김 고문 자신이 직접 CF모델로 출연해 판촉에 나서기도 했었다.

자식처럼 품은 사랑, 생명을 불어 넣으며 수집한 수석

농군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 고문은 7살에 어머니를 여의는 슬픔을 겪었다. 어린 소년은 동생들을 살피는 가장의 역할을 해내며 목포에서 고교를 마친 후 한양대 연극영화과 합격의 꿈을 이룬다. 하지만 동생들에 대한 가장의 역할을 외면할 수 없었던 김 고문은 대한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고교시절 연극반을 했을 정도로 끼가 많았던 그는 지금도 연예인들과 호형호제의 친분을 쌓고 있다.

76세 고희를 훌쩍 넘긴 김 고문은 농사를 짓는 중에도 특별한 취미를 가져왔다. 바로 수석 모으기다. 30여 년 전 우연히 도로공사장에서 버려지는 판석에서 숨은 보물들을 발견했다는 김 고문. “편편한 돌로 돌을 깨뜨리면 한 가운데 빼어난 한국화를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박혀 있었다. 그것이 신기해 하나둘 모으기 시작해 어느새 1천 여 점 가량 된다.”

김 고문은 수림석의 모태가 되는 판석은 구들장 취급을 받았지만 그 속에 한국명화 같은 아름다운 그림들이 들어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수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김 고문이 소장하고 있는 판석들은 수림석, 알석과 함께 바닷가에서 볼 법한 돌들이지만 산수경치가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다. 정겨운 한 폭의 수채화나 동양화를 보는 듯하고 소담스런 정감을 전해주는 풍경화도 만날 수 있다. 수석들이 더욱 특별한 것은 사람의 손길이 아닌 자연과 세월이 만든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김 고문은 수림석을 확보하기 위해 조그만 산을 하나 통째로 사 버릴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지금까지 모은 돌을 진열하기 위해 만든 좌대 값만 수천 만 원에 이른다” 김 고문에게 수석 수집은 단순히 돌을 모으는 행위가 아니다. 돌 하나하나를 자식처럼 여기며 이름을 지어주고 생명을 불어넣는 교감의 흔적들이다.

멋과 예향의 진도, 또 하나의 관광 자원 탄생 예고

고향지킴이로 살아 온 김 고문이 고향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꿈이 또 하나 있다. 지금까지 수집한 수석을 한 곳에 모아 전시할 수 있는 전시관을 건립하는 것이다.“진도의 경관 좋은 곳을 골라 수석전시관을 건립하는 것이 꿈이다. 2천 여 점을 진열하려면 부대시설 포함 전시관 규모가 500 평 정도가 되어야 한다”김 고문은 수석전시관을 건립하는 것은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고 또 하나의 지역 명물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진도는 우리 가락의 정서와 향토색 짙은 민속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수석전시관을 만들면 고향사람에게나 외지인에게 멋진 볼거리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전시관은 단순히 수석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 평생을 고향과 함께 해 온 김 고문의 고향 사랑으로 완성 될 수석전시관은 진도의 멋과 예향의 정취가 어우러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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