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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31 00:26 (월)
종합

[Colunm]어른의 의미


  글쓴이 / 정인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 양명학회 회장

우리는 나이 많은 사람을 어르신네라고 부른다. 이것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그것은 한문의 '장(長)'이란 글자를 어른이라고 풀이한 데서 생긴 것이다. '장'에는 3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훌륭한 덕이 있는 성숙한 사람, 둘째는 직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자리에 있는 인물, 예를 들어 장관이나 총장 등, 셋째는 나이 많은 사람이다. 우리는 세 번째 의미로 '장'자를 많이 풀이하고 있다.

유가의 오륜(五倫) 중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흔히 노소(老少有序)로 잘못 알고 있다. 어른과 어린이(長幼)의 관계는 늙은이와 젊은이(老少)의 관계와 같지 않다. 후자의 '老'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반하여 전자의 '長'은 부단히 인위적인 노력과 땀이 어린 어려운 장벽을 넘지 않고는 달성할 수가 없다. 서(序)자의 뜻은 매우 많다. 첫째, 담벼락[牆]을 뜻한다. 즉 집[堂]의 동서(東西)의 담을 사이에 두고 안팎(內外)을 구별하는 것이다. 둘째, 동서의 곁채인 상(廂)을 뜻한다. 셋째, 중국 고대(하·은·주)의 학교를 뜻한다. 넷째, 차례[敍]를 뜻한다. 순서, 차서를 말하며 여기서 장유의 순서, 앞뒤의 순서, 자리의 순서 등이 다 포함된다. 다섯째, 차례를 매기는 것을 뜻한다.

이 글자의 뜻에서 우리는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는 넘을 수 없는 담장이 가로 놓여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에 의하면 앞-뒤, 위-아래의 현격한 차이가 생겨나고, 이에 따라서 순서가 매겨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앞뒤(先後), 위아래(上下)의 서열(序列)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장유유서의 앞뒤 위아래의 질서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동양 사회에서 어른[長]이라 함은 단순히 '나이'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덕망(德望)과 자리[位]와 나이[歲] 방면에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어른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덕망 있는 인물을 어른으로 모시고 대접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주희는 《대학》을 대인지학(大人之學), 즉 어른의 배움, 또는 위대한 인물의 학문이라 해석하였다. 어른은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자기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명덕을 밝혀, 감각적인 욕구에 끌려가지 않도록 부단히 자신을 수양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른과 어린이는 이처럼 넘기 어려운 장벽인 서(序)가 있는 것이다. 현대 산업 사회의 진입과 더불어 우리는 너무도 자기의 작은 이익만을 챙기려고 경쟁하며 사회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 우리 자신을 어른으로 성숙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미투(me too)'를 보면 알 수 있다.

예(禮)란 원래 거룩함(聖)과 세속(俗)을 구분하는 의식에서 나온 것인 만큼, 자기수양을 통한 내면의 성화(聖化)가 반드시 뒤따라야 어른[사회 지도자] 노릇을 할 수 있고 백성과 가까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른[大人]이 되려면 마음속에서 그 덕성의 싹을 잘 간직하고 길러내어야 된다[存心養性]는 것이다. 유가의 윤리는 이론적인 앎[知]과 더불어 반드시 실천적 행위[行]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知行合一]. 유가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는 도덕적, 정치적 이상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자기를 괴롭힘[修己]은 언제나 남을 편안히 함[安人]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유가의 이상적 인간상은 성숙한 사람[聖人]이며 이는 어른 중의 어른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표와 모델은 항상 이 성숙한 사람이 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교는 비현실적이며 우원(迂遠)하다는 비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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