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사진보다 훨씬 더 실물에 가까운 그림이 있다. 얼핏 보면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때로는 실물을 보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 만큼 사진 같은 그림이다. 수퍼 리얼리즘(Super realism), 포토 리얼리즘(Photo realism)과 같은 다른 용어로 불리기도 하는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극 사실주의)이 바로 그것이다.
실재하는 사물들을 아무리 생생하게 묘사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허구적 이미지일 뿐, 근본적으로 이미지는 실물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하이퍼리즘은 실물을 극도로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이미지도 결국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토포하우스에서 8번째 전시회를 가진 여류화가 김의숙 화가는 여성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건축물을 소재로 하이퍼 리얼리즘에서 더욱 진화해가는 작품세계를 구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미 하나인 직선적인 현대건축물의 이미지에 반사체와 같은 왜곡된 형태를 새롭게 추가하고 개념적인 선분이나, 글자와 기호들을 등장시켜 현대인들의 아픔이나 애환을 담을 수 있는 깊이 있는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김의숙 화가는 일회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존재성에 대한 원초적 질문에 도전해오고 있다.
존재에 대한 내밀한 성찰로 풀어내는 작품세상
김의숙의 화가의 신작 (Hide & Seek)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해 박기웅 교수(홍익대 교수,미술학박사)는 현대도시의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스치며 지나가는 상황에서 포착한 내용들 혹은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과정에서 문득 문득 느끼는 감정들이 포함된 우리 시대의 삶의 편린들 혹은 우리의 시각 속에서 포착된 이미지들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은 건물의 외형에 비쳐진 이미지들을 주로 포착하여 표현하는 것인데, 거대한 건물들의 외형적인 모습에서부터 일렁이는 창문에 비친 다양한 일루전을 새로운 이미지들로 재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장 보들리야르가 생각하는 우리시대의 시뮬라크르라 할 수 있으며, 거대한 물질문명을 함축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들로 풀어볼 수 있다.
허상을 좇는 삶의 진실에 대한 시선을 담다
“나의 작업은 유리표면에 비치는 세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대한 에세이다. 유리의 표면의 상태에 따라 왜곡되거나 굴절되는 세상의 모습은 일상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는 기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유리창에 비쳐지는 왜곡된 이미지는 어떠한 공식에도 따르지 않는다. 유리표면 상태는 물론이요, 유리가 건물에 정착되는 각도의 창에 의해서도 왜곡되는 이미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김의숙 화가는 이미지들을 통해서 현대인의 삶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조망할 뿐만 아니라, 멀리서 바라볼 때엔 매우 찬란하나 근접해서 관찰할 때는 이전에 느꼈던 느낌이 사라지고, 물질 문명의 화려한 현실에 가려진 실상을 표현하고 있다. 도시 속의 숨겨진 이미지들, 찬란함과 황량함의 동시적인 상황을 빛의 이미지들과 교차시킴으로써, 그것을 담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의 형상 혹은 마천루의 이미지들이 환각적으로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
굴절된 이미지 형상 표현
김의숙 화가는 소재의 모티브를 건물에서 찾는다. “건물디자인들이 독특하다. 밤에 조명사이에서 빛나는 건물의 화려함과 달리 낮에 보면 황량하다. 낮과 밤에 보는 건물이미지가 너무 틀리다.” 하나의 건물이지만 이들의 상반된 이미지들은 김의숙 화가의 캔버스에서 인간의 욕망과 점철되 굴절된 이미지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눈으로 보여지지만 보여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깊은 사유는 김의숙 화가만의 힘 있는 작품세계를 구현해 내는 지지대와도 같다. “건물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속에 들어가서 살고 건물을 가지기 위해 희구하지만 다른 이면에는 이것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도 있다.” 건물을 정상적으로 그리지만 상대방의 거울에 비친 일그러진 형상을 그려내 비교하기도 한다. 외형의 반사체에 비쳐진 굴절된 이미지가 주는 상징성에 대해 김의숙 화가는 “ 첫째로, 인간이 가진 욕망의 모습이다. 인간이 드러낼 수 있는 여러 가지의 희망과 욕심 혹은 갈망과 자만심의 덩어리들이 한데 뭉쳐져 있으며, 굴절된 형상으로 왜곡되게 비쳐지는 것이다. 둘째로는, 찰나 혹은 순간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있으나 없는 것과도 같은 허상임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비쳐진 잡히지 않는 현실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헛된 야심과 같은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영원의 시간에 비쳐질 때 아무것도 아닌 순간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
김의숙 화가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굴절된 반사체의 모습은 곧 이 시대의 현대성이다. 물질 환경을 대변하는 현대성이 리드미컬한 유선형과 규칙적인 격자형태의 이미지들로 현대문명의 이미지들을 드러내고 자유스럽게 유영하는 현대과학의 발전상황 속에 펼쳐진 삶의 현장을 표현한다. 흔들리며 드러나는 이미지와 그것에 비쳐진 색상들은 현대인의 불안기호를 상징하고 있다.
현대적인 기법들로 무장한 특징적인 표현방식
김의숙 화가는 단순히 캔버스 위에 붓으로 그리기보다는 화학적인 소재인 폴리 카보네이트 위에, 혹은 금속성을 갖고 있는 알루미늄 판과 같은 반사체에 드러난 물질성을 역으로 이용하여 일루전을 잡는다. 채색의 방식은 아크릴과 오일을 사용하거나 Air brush를 사용해 스피디한 속성을 드러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연필과 붓을 사용하여 밑 작업을 행하며, 이 과정에서 흔들리는 거울에서의 마천루의 이미지들을 개성있게 담아낸다.
김의숙 화가는 주로 붉은색 계열과 보라, 청색의 계열 색을 사용하는데 이는 현대인의 정열적인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직선적인 모티브와 기하학적인 형태가 담겨 있는 선분들의 구성방식으로 그것은 평행한 이미지들을 담으며 부드러운 곡선들의 나열형을 휘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사이버틱한 선분의 이미지들이 도시의 허상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연출되며 결국 사각의 틀을 깨고 비쳐진 온갖 허상적인 이미지들로 다시 우리들의 눈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가장 나다운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로서의 행보
김의숙 화가의 건물을 모티브로 한 일그러진 사회상 그 이면, 도시와 사람들 간의 불가분의 관계, 사람의 여러 내면을 도시로 넣어서 포함해 그려내는 독특한 회화스타일을 고집한다.
언어가 아닌 시각과 감각으로서 느끼는 만큼 보는 이 의 관점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원래 이야기 하고자 한 내용이 다른 포장이나 덧붙임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한단다.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과학문명에 힘입어 빠르게 변하는 생활패턴에 창의적 사고를 할수 있어야한다. 김의숙 화가는 예술가라면 작가의식을 갖고 숨겨진 또다른 문을 찾아 세계를 찾아 열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고도의 정신놀이”이고 “유희” 라고 작가는 말한다.
행복을 나누며 걸어가는 화가의 길
법학과를 졸업 후, 30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다시 시작한 김의숙 화가는 대학원과정까지 밟으며 예술에 대한 더 깊은 안목과 깨달음을 얻었다.
그림에 대한 식지 않는 그녀의 열정은 작품전시와 함께 화실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도 정성을 쏟게 만들었다. 시청과 문화교실에서 무료강좌를 맡아 재능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김의숙 화가는 “그림은 자신이 체험하고 아는 만큼 그려낸다. 그림을 통해 마음이 치료된다.”며 그림이 아이들의 심리치료에도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그림 그릴 때 마음이 편하다. 화실에 오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욱 신경을 써 주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유치부에서 성인까지 김의숙 화가의 화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림에 대한 갈증을 채워가며 자신들만의 행복을 그려가고 있다. 김의숙 화가는 그림을 그리려는 후배들에게 중도에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림은 테크닉보다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라고 한다. 그리는 것을 통해 테크닉은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전시전에 대한 구상과 관련해 “전시를 열고 싶을 만큼 절박함이 느껴질 때가 되면 전시전을 가질 것”이라고 답한다. “그림 전시를 하면 늘 초심에 서있다는 생각을 한다. 매번 제 그림이 어떤 그림으로 바뀔지 몰라 어떤 그림으로 발전될지에 대한 호기심도 생긴다. 지금은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그저 그려 나가고 있다. 어떤 결정체가 될지는 모르지만 결론이 안 주어져 있는 미지의 세계를 그려 나가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 같다.”
그림에 대한 깊은 열정과 진지한 성찰로 관계소통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부요하게 채워나가는 김의숙 화가. 우리 앞에 존재의 실존적 가치를 되물으며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그녀의 작품 세상에 많은 이들이 흠뻑 젖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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