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현실 외면한 탁상행정"…농지 전수조사에 농민 반발 확산, "식량안보 위해서라도 제도 손질 시급"
정부가 농지 투기 근절과 경자유전 원칙 확립을 목표로 전국 농지 전수조사를 본격 추진하면서 농촌 현장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투기 목적의 농지 소유를 차단하고 농지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현장 농민들은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 오히려 농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제도의 전면적인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제도 시행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계층은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농지를 상속 또는 증여받은 농지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지역 농민들과 함께 형성된 영농 시스템 속에서 농지를 유지해 왔다.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 경우에는 지역 농민이나 인근 영농인들이 농사를 이어왔고, 이러한 방식은 오랜 기간 농촌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정착된 운영 방식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와 농지법을 강화하면서 이러한 기존 영농 시스템이 사실상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부모가 남긴 농지가 하루아침에 부담이됐다 "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후반의 직장인 김모 씨는 부모가 별세하면서 고향의 농지를 상속받았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그는 현실적으로 농사를 직접 지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부모가 평생 일궈온 농지를 쉽게 처분할 수도 없었다.
김 씨는 "투기를 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인데 갑자기 법이 바뀌면서 농지가 오히려 짐이 되어버렸다"며 "수십 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유지되던 농장 운영 방식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는 것 같아 허탈하다"고 말했다.
그는 농지은행을 통한 수탁 임대도 검토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활용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제도는 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수탁 대상 기준이 까다롭고, 규모가 크거나 조건이 좋은 농지가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소규모 농지나 여건이 불리한 농지는 사실상 활용이 쉽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 이어온 농촌 시스템을 무시한 행정"
농민들은 농촌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법 집행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 농촌은 심각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겪고 있으며, 상당수 지역에서는 농사를 지을 노동력을 구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가족 간 상속농지나 부재지주 농지는 지역의 전문 농업인들이 경작하는 형태가 일반화되어 왔다.
농민들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법률만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투기 목적과는 무관한 선의의 상속인과 실제 농사를 짓는 영농인들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한다.
일부 농민들은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영농 시스템이 정부 정책 하나로 하루아침에 흔들리고 있다"며 "현장의 현실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식량안보 취지와 충돌"
현장에서는 이번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식량안보라는 정책 목표와도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농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실제 경작이 계속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식량안보의 핵심인데, 상속인들이 농지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영농 체계가 흔들리면 결과적으로 농업 기반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제도 시행 이후 농지 거래가 위축되고, 농지 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농민들은 재산 가치에 대한 불안과 제도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현장의 반발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투기는 막되 현실은 살려야"
농민들은 투기성 농지 보유를 막아야 한다는 정책 방향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부모와 친척으로부터 농지를 상속·증여받은 경우,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지역 영농 시스템, 농촌의 심각한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그리고 실제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까지 함께 고려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장에서는 "농업은 법 조항만으로 운영되는 산업이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가 유지해 온 생업"이라며 "투기 근절과 식량안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현실적인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상훈 | 데일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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