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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4 15:5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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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라인]부(富) 대물림 않고 떠난 '벤처 1세대'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사진 제공=KAIST 생전에 부(富) 대물림하지 않겠다던 정문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사장이 13일 타계했다. 정 이사장은 슬하에 2남3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KAIST에 515억원을 기부하며 결국 약속을 지키고 떠났다. KAIST는 이 돈으로 바이오·뇌공학과와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 미래·융합연구의 기반을 닦았다. 정 이사장의 이력은 매우 특이하다. 중앙정보부 출신에 전공도 종교철학이다. 그러나 혜안이 있었다. 장차 반도체와 벤처시대가 열릴 것을 간파하고 1983년 반도체장비 전문 벤처를 창업했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1999년엔 국내 최초로 나스닥에 입성했다. 정 이사장은 고 이민화 회장과 함께 대표적인 1세대 벤처인으로 불린다. 스스로 물러날 때도 알았다. IT와 인터넷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하던 2001년 정 이사장은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후임자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그의 나이가 고작 63세다. 그가 회사에 남긴 말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사진 제공=KAIST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사진 제공=KAIST

생전에 부(富) 대물림하지 않겠다던 정문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사장이 13일 타계했다. 정 이사장은 슬하에 2남3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KAIST에 515억원을 기부하며 결국 약속을 지키고 떠났다. KAIST는 이 돈으로 바이오·뇌공학과와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 미래·융합연구의 기반을 닦았다.

정 이사장의 이력은 매우 특이하다. 중앙정보부 출신에 전공도 종교철학이다. 그러나 혜안이 있었다. 장차 반도체와 벤처시대가 열릴 것을 간파하고 1983년 반도체장비 전문 벤처를 창업했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1999년엔 국내 최초로 나스닥에 입성했다. 정 이사장은 고 이민화 회장과 함께 대표적인 1세대 벤처인으로 불린다.
스스로 물러날 때도 알았다. IT와 인터넷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하던 2001년 정 이사장은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후임자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그의 나이가 고작 63세다. 그가 회사에 남긴 말도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제 전세계적으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ESG경영의 필요성을 정 이사장은 무려 23년전에 깨달은 셈이다. 고인은 이후 거의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으며 '기부왕'이란 또 하나의 타이틀을 얻었다.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정 이사장은 2014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태평양 자선가 48인’에 이름을 올렸다.
정 이사장이 예측한대로 반도체와 벤처는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핵심이 됐다. 반도체는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수 조원의 자산을 축적한 벤처기업인도 수두룩하다. 안타까운 것은 정 이사장이 사회공헌과 첨단 과학기술 육성을 위해 생전에 헌신했던 것을 흉내라도 내는 성공한 자산가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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