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스의 명물은 황야다. 마을 서쪽으로 시작되는 무어랜드는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드넓게 펼쳐진다. 광풍에 쓰러지는 잡풀과 히스
꽃만이 이곳을 물들이고 있다. 무인지경의 거칠고 가혹한 풍경은 먼저 무자비한 자연의 잔인성으로 다가온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쓸쓸함과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어오는 광풍과 아득함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브론테 자매는 이곳에서 성장하고 글을 지었다.
태생부터 외로운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날 때부터 파도였던
사람이, 날 때부터 폭풍이었던 사람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안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 그리고 캐서린이 그렇다. 그리고 하워스에서 짧은 삶을 살다간 브론테 가(家)가 그렇다.
하워스
역에서 내려 역 앞 오른쪽으로 연결된 구름다리를 넘어 표지판을 따라가다보면 브론테 가족들의 생가 하워스 사제관이 나온다. 사제관
정면에는 성당이 있고 그 가운데 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생가 박물관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쫓아보니 이러한 어색한 풍경이
이상하게도 수긍이 간다.
브론테 자매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영국 국교회 목사로 1820년 하워스 교구로
지명되어 이곳에 정착했다.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죽고 패트릭은 처제와 함께 여섯 아이들을 키웠다. 불행은 계속 됐다.
목회자 자녀를 위한 학교에 첫째 딸 마리아와 둘째 딸 엘리자베스를 보냈고 혹독하고 엄격한 학교 생활이 아이들의 병을 키웠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돌아온 두 딸이 각각 11세, 10세의 나이로 죽게 된다. 이때부터 나머지 아이들 샬롯, 에밀리, 앤,
브란웰은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어머니와 두 언니의 죽음은 그들에게 평생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런 불행의
그림자는 하워스의 황야와 만나 샬롯, 에밀리, 앤의 작품 속에서 정념적이고 비틀린 인물들을 만들어 냈다. 가족의 죽음과 집 안에
갇힌 브론테 자매의 삶의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황야에 맞닿은 시골 마을의 작은 목사관에서 그들은 고립되어 자라났다.
죽음과 불행이 이들을 비관과 낙담으로 이끌었으리라 예상한다면 안온한 사람들의 편견일 것이다. 아이들은 불행에
가위눌리지 않고 좁은 사제관 안에서 즐길 거리를 찾아냈다. 남매는 막내 브란웰을 위해 아버지가 장만한 장난감 병정으로 연대기를
만들고 그들의 역사를 미니어처로 만들었다. 이야기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하나의 놀이였다. 그림 카드를 만들어 여러 순서대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놀이 중 하나였다. 모든 일들이 지루해지면 황야로 산책을 나갔다. 브론테 가족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기 보다
오히려 행복하고 풍성했던 것 같다.
시간은 흘렀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 했다. 그 당시
영국에서 여자들은 보통 가정부로 일하거나 교사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몇 번의 가정부 경험이 뜻에 맞지 않았던지 샬롯과 에밀리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자신들의 힘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품게 된다. 둘은 함께 벨기에 브뤼셀로 가서 공부했다. 하지만 샬롯은
그곳에서 기혼남 선생님을 짝사랑하게 되고 에밀리는 이모의 죽음을 듣고 얼마 되지 않아 하워스로 다시 돌아 오게 된다. 샬롯이
돌아왔을 때 학교 설립 계획은 현실적 문제들로 무산되고 날카로웠던 짝사랑의 기억만이 여전히 살아 함께 했을 뿐이다.
화가가
되고자 수년간 노력했던 막내 브란웰은 가정교사로 직업을 얻었지만 집 주인 로빈슨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고 이 일은 결국 부부의
이혼으로 이어졌다. 작은 마을에 소문이 퍼졌다. 그런데 막상 이혼한 그녀는 브란웰과의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브란웰은
알콜에 중독되어 하워스 집 앞의 블랙 불에서 매일 술을 마시다가 31살에 돌연사 하게 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시
찾아온 걸까. 곧이어 둘째 에밀리와 셋째 앤이 결핵에 걸렸다. 얼마 가지 않아 에밀리가 죽었다. 이때가 <폭풍의
언덕>이 출판된지 1년이 지난 때였다. 1년 후에 셋째 앤이 죽고 샬롯은 5년 후에 결혼하지만 이듬해 임신 초기에 죽었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모든 가족을 먼저 보내고 혼자 6년을 더 살았다.
사제관에는 그들의 삶의 흔적이 빼곡히 가득
차있다. 가족의 방들이 여전히 그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남아 있고 살아 생전 그들이 쓰던 물건들이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브란웰이 그린 세 자매의 초상화도 계단 층계참에 걸려 내려다보고 있다. 너무나 세심하게 보존해 놓아 마치 여전히 브론테
자매가 살아 있을 것만 같다.
사제관에서 나와 앞 마당 너머에 있는 무덤을 둘러보고 성당 쪽으로 빠져 나왔다.
마을을 걷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오래된 건물들이 여전히 살아 남아 있는 이곳은 황야에 서
있는 작은 장난감 마을 같다. 브론테 가는 불행한 운명에 박제된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상상 속에서 그녀들은 무어랜드의 산책을
즐기고 있다. 황야는 고독과 불모를 말하지만 그곳에서도 몇몇의 종은 살아남는다. 히스는 이곳에서 가장 강하게 살아남았다. 벌판의
히스는 잡풀만이 나부끼는 죽은 풍경 속에서 선명하게 보라색 꽃을 피웠다.
<제인 에어>를 떠올리면 운명
앞에서도 강인한 성정을 가지 제인의 모습이 선명하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들은 외롭고 광기에 휩싸여 있지만 막상
기억에 남는 것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황야를 뛰어놀던 모습이고 그들의 사랑을 완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2세, 캐시와 헤어턴의
모습이다. 불행이 행복을 키우는 것이 아닌 것처럼 황야가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 것이다. 천진난만 해보일 지 모르는 브론테
자매의 성정과 정념 속에서도 살아남은 순수의 감정이 그들의 삶과 작품을 키워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은 무어랜드의
들판만큼이나 아득한 공간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어 놓았다.
브론테 자매는 소설을 출판할 때 벨이라는 성을 가진
가명을 썼다. 그 당시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작품에 편견을 낳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제인 에어>는 출판되자
마자 화제가 되었다.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와일드 펠의 세입자>가 나왔을 때는 온 영국이
들썩였다. 온 마을의 카페에서 벨이 누구인지가 화제에 올랐다. 영국은 심각했지만 세 자매에게는 재미있는 일이 었을 것이다. 하워스
작은 사제관에서 세상의 반응을 보며 키득거리는 세 자매의 웃음이 보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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